이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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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소위 자기 계발이나 봉사 활동 등 다른 건전한 방법들을 통하여 자신을 발전시키는 부인들을 모델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얼마나 잘못했는지와는 관계없이 말씀드리는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재촉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편하도록 그 사람이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를 바라고, 그를 통해서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은 욕구가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남편이나 내 자녀가 나를 실망시키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 삶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설령 때때로 다투게 되더라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훈련은 나아가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젠가 닥쳐올 홀로서기를 해야 할 상황에 대한 준비도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제 말이 "남편은 반쯤 남이라고 생각해."라는 항간의 속설과 같은 말로 이해되신다면 그건 제 의도와는 다릅니다.

저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술적인 면에서 당신이 할 역할에 대해서 조언하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밤늦도록 연락 없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라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당연히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당신이 확인 전화를 하는 것보다 남편이 먼저 알려오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편이 늦는다는 전화를 해 왔을 때에는 “뭐 하느라고 들어오지는 않고 연락만 하고 있는 거야? 한 시간 내로 오지 않으면 문 잠글 거니까 그리 알아!”라는 식으로 위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 많은 남편들은 귀가를 서두르기보다는 전화기를 꺼 놓는 쪽을 선택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대신 “걱정했는데 연락 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제는 왔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 보고 싶으니까”라는 식으로 상대가 듣기 좋게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래야 다음에 또 늦더라도 먼저 전화하는 것을 꺼리지는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당신의 마음에는 차지 않을 줄 알지만 우선은 그 정도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봐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허구한 날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고요? 당신의 억울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혹시 이런 설명을 덧붙이면 좀 받아들일 만해질까요? 성경에는 ‘네게 잘못한 사람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정말 잘못을 뉘우칠까요?

우리 예상과 다르게 ​성경에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을 조르지 않는 것은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이 남편에게 매달리지 않게 되는 것, 즉 심리적인 어린이 상태에서 어른으로 성숙해 가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숙해가는 당신을 보면서 당신의 남편도 조금은 더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그 남편은 당신이 졸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 삼아 덧붙이자면 모든 남자와 여자가 위의 설명처럼 나눠지지는 않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원하는 아내도 있고, 가정적인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남편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데에 정상적이니 비정상적이니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원래 사람에게는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가 공존하는데 대부분의 남편에게는 남성적 요소가, 그리고 아내들에게는 여성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많을 뿐입니다. ​제가 강조하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해서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과 염려하는 것이 대단히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부부 싸움으로 자주 나타나는데 그저 싸우는 것으로는 이런 차이를 좁히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만성적인 불화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부부 간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하면 적어도 치명적인 불화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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