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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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부부 상담 사례 중에는 다음과 같은 하소연이 상당히 많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일하다 들어와서 집안일하기도 힘든 데 그이는 일 때문에 바쁘다면서도 퇴근 후에는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들어와요. 또 주말이면 운동한다며 혼자 나가 버려서 얼굴을 마주칠 시간이 없어요. 저는 주말만이라도 남편이랑 같이 오붓하rp 지내고 싶은데 그 사람은 마치 나와 같이 있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 같아요. 벌써 권태기일까요?”

“결혼하고 한동안은 정신이 없어서 친구들도 못 만나고 지냈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좀 자주 만나고 있어요. 친구들을 만나 오랜만에 수다를 떨다 보면 그간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아서 그런 거 같아요. 어쨌든 친구들을 만나 정신 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좀 늦어질 때도 있는데 남편은 몹시 싫어하네요. 왜 남편은 자기도 자주 늦게 들어오면서 내가 가끔 그런 것은 이해해주지 않을까요?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남편과는 이야기하지 못할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도 이해해 주지 못하나 생각하다 보면 실망스럽기도 하고 짜증날 때도 많아요. 사실 가끔은 이 사람과 괜히 결혼했다 후회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게 정상인가요, 혹시 제가 잘못된 건 아닌가요?”

우선 이런 부부들이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들은 상대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그나마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니까요. 간단히 말해서 부부들이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과연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언제나 함께 있고 뭐든지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정상일까요? 그러면 혼자 있고 싶다는 감정은 두 사람의 관계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징조일까요? ‘태초의 인간은 남녀가 한 몸이었다. 얼굴이 둘이고 손과 발이 네 개씩이라서 달리기도 빠르고 어떤 일이라도 잘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어서 못 볼 게 없었다.

빈틈없는 사람을 일컬어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라고 하는데 태초의 인간들이 그랬다. 이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간은 신(神)에게 도전하려 했는데 이를 위험하게 여긴 제우스가 인간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하나의 얼굴에 두 개의 팔과 다리를 가진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신에게 도전하는 대신에 자신의 갈라진 반쪽을 찾으려고 평생을 헤매게 되었는데,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서로 껴안고 하나가 되려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상적인 부부를 일컬어 일심동체라고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 반쪽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이야기에 나름의 일리가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자신의 분신을 만난 것처럼 기쁘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가 싫어집니다. 상대가 마음에 들고 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를 넘어서 상대와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완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의 뇌에서는 도파민, 페닐에틸아민이나 엔돌핀 같은 행복 물질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동화 같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예전에 혼자 지내던 시절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그때의 습성과 행동들을 반복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도 좋지만 혼자였을 때 익숙했던 생활 방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두 가지 상반되는 강한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상대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고 또 하나는 자기만의 고유한 모습을 잃기 싫어 하는 욕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과 욕구의 이면에는 그것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숨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거나 잃어버려서 혼자 살아가게 될 외로움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람에게 너무 빠져서 자기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불안이 본능처럼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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