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픽사베이.
이하 픽사베이.

[미디어파인=김경아의 특별한 당신] 완벽하게 무장해제되는 친정의 마법. 이 시간이 참 귀하고 귀하다. 긴 생머리를 날리며 캠퍼스를 누비던 시절, 귀 만큼이나, 아니 귀보다 더 커다란 귀걸이를 귀에 걸고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고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어야 제 맛이었다.

그 좋아하던 귀걸이도 아가 다칠까 봐 안 한 지 오래요, 하이힐은 진즉에 신발장 구석에 넣어 뒀다. 과일이며 이유식이며 온갖 것을 묻히고 빨아 대는 아이들 덕에 하얀 옷은 입을 엄두도 못내는 엄마가 되어 버린 나.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 생머리 아가씨가 질끈 묶어 올린 머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뜯기는 엄마 모습을 하고 있다.

여전히 엄마 아빠 품에서 응석 부리고 멋 부리며 내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픈 마음이 한 켠에선 꿈틀거리지만 가슴에 얼굴을 부벼 대며 방긋거리는 귀염둥이들을 보고 있자니 멋쟁이 꿈들은 오늘 또 잊어 버리고 만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저녁 늦게까지 고된 미용실 일을 하면서도 내가 필요할 땐 달려와 주고 먹고 싶은 걸 순식간에 내놓는. 그래도 매일 엄마는 왜 이렇게 바쁘냐며 불평하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엄마는 엄마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늦은 밤 지친 어깨를 늘어뜨리고 퇴근하면서도, 그 무거운 어깨에 무등을 태우고 쉬는 날에는 놀이동산에 가자 떼쓰는 나를 위해 과자 사 주며 안아 주는. 아빠는 아빠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못난이도 이렇게 못난이가 없다.

코 찔찔이 철없는 못난이가 새끼를 낳아 물고 빨고 웃고 울며 엄마 얼굴을 닮아 가다 보니 이렇게 코가 시큰거릴 수가 없다. 고요한 새벽, 칭얼대는 손자 우유를 먹이며 졸고 있는 엄마를, 하루 종일 졸졸 쫓아다니며 놀아 달라 떼쓰는 손녀를 품에 안고 코 골며 주무시는 아빠를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방 구석에 숨죽여 훌쩍거려지는 것이 여전히 못난이 모습 그대로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 철이 든다던데 친정집에 오자마자 널부러져 쉴 곳을 찾아 헤매는 못난이는 아직도 먼 듯하다. 이른 아침, 눈 뜨자마자 할아버지 손 잡고 “장난감 사 주세용.” 애교 부리는 못난이의 딸과 함께 마트에 가니 저 멀리 할아버지 모습 그대로 뒷짐 지고 할아버지와 나란히 걸어가는 그 모습에 너털웃음이 난다.

사랑이라는 말이 부족한 나의 영원한 버팀목, 부모님. 지금의 내가 그렇듯 어느새 엄마, 아빠의 이름을 가졌지만 여전히 소녀, 소년이었을 그들이 견뎌 온 시간과 역경을 헤쳐온 지혜가 간절하다. 여러 가지 생활의 편리함이 더해진 요즘에 비하면 말도 못할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 바쁜 날들을 기저귀 빨고 널며 어찌 헤쳐 오신 걸까.

용변 묻은 일회용 기저귀를 버리며 냄새 난다, 힘들다 하는 푸념이 부끄러워지는 지금 그 옛날 엄마 아빠의 모습을 닮고 싶다. 백년이 지나도 철없을 못난이가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아도 부족한 귀한 부모님을 닮아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의 행복과 처절한 전투를 반복하는 초보 엄마의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 싶다.

물색없이 이것저것 친정집의 좋은 것들을 가방 가득 챙겨 넣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갛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또 한 번 못난 코를 훌쩍인다. 내 인생의 가장 특별한 당신. 부모님의 그 사랑이 너무 크고 감사해서. 돌아서니 고새 또 그 감사한 얼굴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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