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박찬욱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경미 감독의 장편 상업 영화 데뷔작 ‘미쓰 홍당무’(2008) 이후 첫 번째 영화인 ‘비밀은 없다’(2016)는 소포모어 징크스(2년생 징크스)를 비웃는, "아니, 이 감독이 ‘미쓰 홍당무’를 만든 그 감독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능구렁이 보수 정치인 노재순이 장기 집권해 온 경상도의 한 신도시. 방송사 아나운서 출신의 종찬(김주혁)이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재순에게 도전한다. 그는 아내 연홍(손예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중 3년 딸 민진(신지훈)과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투표를 앞두고 양 진영은 치열하게 싸우는데 종찬은 고전한다. 투표 보름 전 민진이 실종된다. 연홍은 민진을 찾기 위해 미친 듯 움직이지만 종찬은 유세에 총력전을 펼쳐야 할 판인 데다 혹시라도 그 사건이 득표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조심스럽다.

그런 종찬이 서운한 연홍은 이혼을 선언한 채 민진을 찾는 데 집중한다. 경찰은 노골적으로 재순의 편에 선 시각으로 그녀를 미친년 취급하고, 실종 당일 한 외지인 남성만 교통 사고로 죽었을 뿐 그 어떤 사고도 보고된 바 없다며 불량 학생으로 낙인 찍힌 민진이 애먼 짓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태도로 안일하게 대처한다.

종찬의 집에서 도청 장치가 발견되고, 선거 캠프는 재순을 강력한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재순 캠프는 모략이라 일축한다. 재순 캠프는 연홍이 전라도 출신이고, 민진이 불량 학생이었다는 정황을 포착해 집중 공략한다. 그러는 사이 종찬의 지지율은 점점 더 떨어진다.

연홍은 딸이 많은 것을 속여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소 친하게 지낸 미옥을 추궁하지만 뭔가 미심쩍다. 또한 민진의 이메일을 통해 지난 2년간 매번 시험지를 사전에 몰래 민진에게 제공한 사람이 중1 때의 담임선생이었음을 알고 그녀를 만나 본 결과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한다.

그러던 중 민진의 시체가 발견되고 종찬과 그의 캠프는 더욱 재순을 의심한다. 평소 똑똑하지 못했던 연홍은 처절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오히려 더욱 침착하고 영민하며 용감해진다. 경찰이 미옥을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연홍은 그렇게 믿지 않고 독자적인 ‘수사’를 펼쳐 나간다.

그리고 미옥에 의해 진실의 윤곽이 드러나는데. 호평과 흥행을 모두 잡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시나리오와 이를 화면에 가장 적확하고 적절하게 구현해 낼 수 있는 연출력, 그리고 작가와 감독이 만든 캐릭터와 시퀀스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배우의 표현력 등 삼위일체가 이뤄져야 한다.

그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기득권자 혹은 기성세대의 어긋난 욕심과 부도덕한 욕망이 청소년을 어떻게 왜곡하고, 방황하게 만들며, 그래서 그들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는가에 대한 천근만근의 묵직한 주제 의식을 발판으로 하는 서사가 탄탄하다.

이 영화는 왜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자주 거론되고, 더 강하다는 의식이 만연해 있는지 은연중에 부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른 시각도 있다. 연홍이 민진의 방에서 발견한 불량 행동 증거에 대한 시선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단지 “여보, 우리 딸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착한 딸은 아니었나봐요.”라며 자책하지만 종찬은 민진의 방에서 발견한 말버러 담배를 연홍에게 신경질적으로 내던진다. ‘다 당신이 교육을 잘못 시킨 탓이야.’라는 의미이다. 그건 딸에 대한 애정을 버린다는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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