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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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승환 칼럼]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중2가 무서워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중2 또래의 아이들이 자아 형성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혼란이나 은연중에 공부를 강요하는 외적 환경에 대한 불만 그리고 소심한 사회적 반항 등의 특성이 부모 입장에서는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져 이런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중2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을 해 왔던 걸까요?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이 시기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도 공부와 성적 이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어른들의 소통 방식에 대한 불만의 시기라고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반면에 일부 어른들의 입장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예민하고 신경질만 내며 본인 교육을 위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희생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노고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철 없는 아이들로 정의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사춘기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왔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시나브로 눈에 띄지 않는 오묘한 성장 과정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있었던 많은 정서적인 대화와 상호 작용이 아이의 성격과 인격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의 아이들을 잘 관찰해 보면 유치원 혹은 초등생 시절부터 부모와의 대화가 매우 풍부한 아이들은 현재도 스스럼없는 대화가 매우 당연하며 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이 중2병을 앓지 않거나 경미하게 보내는 반면에 질풍노도의 혹독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와의 학업 갈등이나 소통의 문제가 많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육체적으로는 제2차 성징이 나타나고 정신적으로는 자아의식이 매우 높아지는 시기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무언가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어른들의 부당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모가 모범적이고 솔선수범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훈육만으로는 아이들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학습 동인을 이끌어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이는 학문적 연구 결과가 아니라 저의 미숙한 경험을 토대로 한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오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실천이 쉽지는 않으시겠지만 부모의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첫째,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 아이라면 남과 비교하기 위한 공부의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즐겁게 공부하는 법, 고등학교 과정을 위한 내공 쌓는 법, 그리고 삶이 즐거운 인성 기르기 교육에 집중하시는 것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기간은 무려 6년입니다. 짧게 보지 마시고 공부와 친해지고 즐거워지고 건강해지는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가면 사춘기가 없는 즐거운 학교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필자의 둘째 아이가 8년 전쯤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국어 받아쓰기 퀴즈에서 두 번인가 0점을 받아 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아이가 0점이라는 사실이 몹시도 흥미(?)롭고 궁금하기도 (사실은 화가 났을 수도) 하여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세대의 받아쓰기 채점 기준과 지금의 받아쓰기는 많이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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