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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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많은 부부(특히 부인)들이 배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거나 불과 몇 마디 해 보지도 못하고 싸우게 되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서 큰 절망감을 경험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이 집에 와서 하는 말이 “애들은? 밥 줘. 자자.”라는 단 세 마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부인과 대화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남편들도 처음부터 아내와의 대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남자도 한때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먼 길을 달려오고 또 그 목소리를 잠깐이라도 듣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함께 마주 보고 이야기하기를 싫어했다면 왜 결혼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랬던 남편이 아내와의 대화를 기피하게 된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잘 모르지만 대부분의 남편들에게 부인의 말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한 예로 시댁 식구들에 대한 원망과 불편을 남편에게 늘어놓은 부인의 경우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결혼해서 겪게 된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고, 나아가 혹시라도 남편이 잘 받아 주면 좋겠다는 소망에서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한때는 하늘의 별도 달도 따 줄 것처럼 큰소리치던 그 남편이 어떤가요? 부인의 별것 아닌 말을 들어주는 것조차 못 하여 건성으로 대답하고, 심지어 아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컥 화를 내거나 아예 그 자리를 피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초에 그 부인은 남편을 탓하거나 또는 남편에게 반드시 어떻게 해 달라고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남편이니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여 이해를 받고 싶었고, 또 할 수 있으면 위로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말 들어 주는 것조차도 마다하는 남편을 보면 남편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싫어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만합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남자들은 정말 문제가 많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고 또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그런 말을 듣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부인의 말이 전혀 다르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즉 부인은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말할 뿐이지만 그 남편은 (자신을 낳아서 길러준 부모와 부인 사이에서) 자신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인식합니다.

심지어는 ‘아내는 나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나를 원망하는구나!’라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인이 하려던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도) 자신과의 결혼이 불행하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를 모릅니다. 어쩌면 ‘이 여자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시집이라면 질색하는) 다른 여자들과 똑 같구나!’라고 생각하여 깊은 실망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부인들은 이럴 때 그냥 “그러냐? 안됐다. 내가 더 잘해 주마.”라는 말 정도로 충분했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들에게는 그렇게 간단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남편은 자신이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자가 되고 말았다.’라는 삶의 경험으로 남고, 동시에 아내는 남편을 무능력한 남자로 만든 여자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실험처럼) 아내와의 대화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남성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인들이 있을까 봐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부인들의 관점에서는 이런 남편이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다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잘 완수하는 데에서 자신의 유능함을 확인하며 행복해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된 후에는 자신의 아내가 행복해하거나 불행해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깁니다. 그 때문에 아내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그런 불편을 풀어 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상당한 자책감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것을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책임을 미루는 부인에 대하여 실망과 원망도 느낍니다. 그런 결과로 남편은 자신의 잘못과 부인의 잘못 사이에서 아주 강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를 쉽게 해결할 자신이 없는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 큰 문제가 될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일단 부인의 말문을 막거나 말꼬리를 잡아 엉뚱한 싸움으로 끌고 가서 당장의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반면 그 부인으로서는 이 남자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처럼 여기고, 오래 전의 경우까지 끄집어내서 더 자세하고 완벽하게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가 그럴수록 자신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 자체를 피하고 싶어지고, 결과적으로 부부의 대화는 점점 더 어렵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부인들은 “그러면 자기도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면 되잖아?”라고 하겠지만 이는 남성들이 아내나 자식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죽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워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말하자면 (다소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이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즉 남편은 부인의 이런 불평을 부인이 시댁 식구를 비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시댁 식구와 잘 지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 정도로 듣고 이해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귀에 들어온 말을 듣지 말고, 상대의 마음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편이 그렇게 부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부인이 원하는 배려와 위로를 해 주는 것이 어려울 리 없습니다. 또한 부인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 주고 자신을 도우려고 애쓰는 남편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를 이유로 부부 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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