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홍지영 감독)는 민생이 만만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모처럼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인정의 용틀임을 몸으로 만끽할 수 있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2015년 57살의 외과 의사 수현(김윤석)은 캄보디아에서 한 소녀의 구순구개열을 치료해 준 대가로 눈먼 할아버지로부터 신비한 알약 10개를 받는다. 긴가민가하며 한 알을 먹는 순간 그는 30년 전의 부산진역으로 이동해 27살의 자신(변요한)을 만난다.

20분 만에 현재로 되돌아온 그는 한동안 혼란을 겪다 정신을 차린 뒤 오로지 당시 한창 사랑을 불태우던 동갑내기 연인 연아(채서진)를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보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알약을 먹게 된다. 늙은 수현은 젊은 수현에게 “너나 나나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많이 맞고 자랐잖아.”라고 동조를 구한다.

알코올 중독에 의처증까지 심한 아버지는 툭하면 어머니를 폭행했고, 참다 못 한 어머니는 수현이 14살 때 가출해 5년 뒤 공장에서 자살했다. 어머니가 떠난 후 아버지의 분노는 수현에게로 진로가 바뀌어 역시 잦은 폭행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성장한 수현은 혹시 그런 불행이 대물림될까 두려워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정신 상태이다. 하지만 연아는 대놓고 “네 아이를 낳고 싶다.”라며 결혼과 출산을 재촉한다. 젊은 수현에겐 연아만큼 소중한 존재인 유일한 친구 태호(김상호, 안세하)가 있고, 그들 셋은 막역한 죽마고우이다.

태호는 자유 연애를 즐기지만 수현은 오로지 연아이다. 그럼에도 결혼은 할 수 없다. 늙은 수현은 미혼이지만 20살 된 딸 수아(박혜수)가 있다. 오래 전 연아를 잃은 그에게 삶의 유일한 희망은 오로지 수아이다. 게다가 그는 심각한 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모두 9개의 알약을 먹어 가며 연아를 만나는 한편 젊은 수현에게 “연아에게 잘 하라.”라고 충고한다. 연아가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안 젊은 수현은 그녀를 살릴 방법을 늙은 수현에게 묻고, 늙은 수현은 “과거는 되돌릴 수 없어. 만약 그러면 네 미래가 바뀔 텐데 감당할 수 있겠냐?”라고 되묻는다.

젊은 수현은 “내 미래는 내가 정한다.”라고 울부짖는다. 캄보디아의 노인은 못 보는 불편함을 묻는 수현에게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걸 더 믿는다.”라고 말한다. 잠드는 약을 주면서 “삶은 당신이 잠들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라고 조언한다

살짝 영화 ‘매트릭스’와 ‘장자’의 ‘제물편’의 호접몽론을 빌려왔다. ‘매트릭스’의 니오(키애누 리브스)가 사는 세상은 사실 AI가 만든 가상의 공간이고, 현실은 인간이 기계의 에너지원이 되는 지옥이었다. 장자는 나비가 된 꿈을 꾼 뒤 “내가 나비가 된 건가, 나비가 내가 된 건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무위자연(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과 이도관지(도와 일체가 돼 그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것)의 사상이다.​

미래를 자꾸 묻는 과거의 자신에게 수현은 “뭐가 궁금해? 살다 보면 알게 돼.”라고 툭 내던진다. 무위자연이다. 그건 “연아를 살릴 수 있냐?”라는 젊은 수현의 질문에 대한 “나도 과학신봉론자인데 나이가 들면서 확신이 없어져.”라는 대답과 연계된다. 호접몽론이다.

주인공들이 오열하지 않고 관객을 이렇게 울릴 수 있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원작이 뛰어나다지만 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적 정서에 담아 멜로를 중심으로 한 휴먼 드라마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감독의 재주는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많은 얘기를 담으려한 것은 소설과 영화의 특성을 잘 구분하지 못한 패착이다.

1985년이 기억하는 뮤지션 중 고 김현식과 450원짜리 솔 담배를 추억 소환 콘텐츠로 활용한 감각이 좋다. 과거의 수현이 현재의 수현을 부르는 방법이 문신이라는 재치도 빛난다. 판타지는 사람의 능력과 욕심이 정반대로 가기 때문에 탄생했다.

분노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잉태한다면 후회는 타임슬립 영화를 양육한다. 멜로, 판타지, 서스펜스, 미스터리가 잘 버무려졌다. 끝부분이 다소 늘어지지만 흐뭇한 미소가 덤으로 주어지니 지루함은 잠시이다. 영화 ‘콘스탄틴’에서 체인 스모커 콘스탄틴을 지옥에 못 데려가 안달하는 타락 천사(사탄) 루시퍼는 담배 회사 대주주라고 대놓고 말한다. 이 영화는 그보다 더 확실하게 금연 캠페인의 메시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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