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무비&철학] 조희팔의 폰지 사기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영화 '마스터’(조의석 감독, 2016)는 그것을 모티프로 제작했다. 원네트워크 회장 진현필(이병헌)은 정치인과 공무원 등과의 인맥, 그리고 뛰어난 언변과 임기응변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휘하의 전산개발실장 박장군(김우빈)과 함께 신성신용금고를 인수하는 척하며 수천억 원 단위의 사기를 수조 원 단위로 키운다.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비밀리에 경찰청장 직속으로 팀을 꾸려 반 년간 현필을 추적해 왔다.

그의 목표는 현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의 뒤를 봐준 ‘썩은 몸통’까지 잡아들여 대한민국의 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것. 동료 신젬마(엄지원)가 장군을 잡아들이자 재명은 집행 유예를 조건으로 전산실 위치와 현필의 로비 장부를 요구한다.

전산실은 장군의 친구 경남(조현철) 혼자 꾸려간다. 위기를 느낀 장군은 현필의 자금 중 500억 원만 빼내 잠적할 것을 경남에게 제의한다. 현필과 재명 모두 배신하자는 것. 하지만 현필의 최측근 김엄마(진경)는 장군을 의심하고, 결국 장군은 철두철미한 현필의 감시로 속셈을 들켜 킬러의 칼에 맞고, 재명의 작전은 실패로 끝난다.

장군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전국이 패닉 상태에 빠진다. 수많은 서민들이 피해를 입은 것. 수개월 뒤 뉴스엔 현필과 김엄마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그렇게 희대의 사기 사건은 끝나는 듯하다. 그로부터 1년 뒤.

현필과 김엄마는 수차례 신분 세탁을 하며 동남아를 떠돈 끝에 필리핀 마닐라에 정착해 현지 국회의원 한 명을 상대로 3조 원대의 사기극을 꾸미고 있다. 한직으로 밀려나 있던 재명은 그러나 사실 암암리에 현필의 뒤를 캐고 있었고,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해 장군을 끌어들인다.

재명은 불법 자금 세탁 사기꾼으로 위장해 자금 조달로 궁지에 몰린 현필을 낚는 데 성공해 드디어 체포 팀을 꾸려 마닐라로 날아간다. 영화의 큰 틀은 재명과 현필의 두뇌 싸움이고, 그 뒤를 받치는 건 여기 붙어야 할지, 저기 붙어야 할지 헷갈리는 장군의 생존의 몸부림이다.

전체 스토리는 범죄 수사물이나 케이퍼 무비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독이 주력한 것은 스케일과 캐스팅이다. ‘도둑들’에 못지않게 사이즈를 키우고, 여기에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등 40대, 30대, 20대 배우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씩을 캐스팅하는 데 성공했다.

이병헌은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자신이 희대의 사기꾼이면서 “세상에 사기꾼이 하도 많아서(의심이 많다).”라고 뇌까리거나 뒤를 봐주는 ‘어르신’이 삐딱하게 나오자 서슴없이 쌍욕을 해대는 장면에선 캐릭터에 대한 설정과 이해도의 클래스를 보여 준다.

또 ‘내부자들’의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잔?’ 같은 애드리브로 쏠쏠한 재미를 부여한다. 피터 김을 거론하자 “뭐? 패티 김?”이라더니 배신하는 장군에겐 “너 양면 테이프야? 왜 여기저기 붙어?”라고 비웃는다.

강동원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 미팅에 늦어 과속하다 교통 경찰에 걸렸는데 자신임을 알면서도 경찰이 딱지를 끊자 그 소신에 감동해 경찰청장에게 특진을 지시했다. 그런데 청장은 ‘우리 영국 경찰은 당연한 일을 한 사람을 특진시키는 경우가 없다.’라고 말했다.”라며 경찰의 소신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게 전부이다. 캐릭터와 역할이 진부하리만치 평면적이다. 사법 고시까지 패스한 그가 왜 그리 진현필과 그 배경을 잡아들이려 목을 매는지, 과연 그의 인생의 목표와 삶의 이념은 뭣인지 흐릿하다. 그건 ‘윈스턴 처칠 이론’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무원이 지극히 당연한 일을 했는데 그게 숭고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썩었기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요즘처럼 어이 없는 세상에서 재명의 소명 의식을 지극히 당연하고 일반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관객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그래서 꽤 자극적인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김우빈은 그야말로 장군의 캐릭터와 닮았다. 멋있지만 건들건들하고, 귀엽지만 까칠하며, 인간적이지만 이기적인 캐릭터를 정말 맞춤옷인 듯 잘 표현해 냈다. 강동원은 물론이고 이병헌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다.

 

경찰청장은 무모한 도전을 하는 재명에게 “수사팀 꾸려 주니까 세상을 바꾸려 한다.”라고 투덜거린다. 김엄마는 1년 만에 전화 통화를 하는 장군이 “잘 사냐?”라고 묻자 “한반도 벗어나면 천국이지.”라고 상쾌하게 답한다. 정말 피부 깊숙이 와닿는 대사이다.

믿음에 대해 묻는 주제 의식은 전체적으로 좋은데 결정적으로 맥이 빠지는 건 재명의 신념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허름한 원룸에 살 망정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고, 10억 원의 사채 빚 때문에 배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군의 갈등과 믿음이 공감을 준다.

현필이 이드(본능적 충동)의 초과잉 상태에 빠진 인물이라고 해서 재명이 결코 에고(자아)가 확실한 인물이라고 보긴 힘들다. 차라리 악마일지언정 현필의 주체성만큼은 확연한 게 스토리의 중심을 잡아 준다. 그래서 “나 잡으면 대한민국이 뒤집어질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라는 현필의 당당함은 그냥 현실이다.

끝부분의 필리핀 액션과 쿠키 영상은 눈과 심장이 뿌듯한 보너스이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국회의원들에게 “그런데 조희팔과 유병언은 진짜 죽었어?”라고 묻는 듯하다. 143분이 결코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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