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여교사’(김태용 감독, 2017)는 생존과 자존감에 대한 원초적인 얘기를 소품 같은 외형이지만 내면은 크고 잔혹한 심리극이다. 효주(김하늘)는 남자 고등학교의 계약직 교사로 10년 전 대학 때 만난 작가 지망생 연인와 동거 중이다.

정규직 전환 차례에서 이사장 딸인 혜영(유인영)이 꿰차고 들어오는 바람에 밀려나자 당황스럽다. 연인과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멋있게 보였던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반찬 투정이라니! 결국 연인은 짐을 싸서 집을 나간다.

혜영은 다 가졌다. 약혼자는 잘생긴 외모에 안정된 직장과 넉넉한 재산까지 갖췄다. 그녀는 학교에서 만난 대학 선배 효주가 무척 반가워 호의와 친절을 베풀지만 번번이 무시당한다. 3학년 재하(이원근)는 발레 유망주이지만 가난해 체육관에서 홀로 연습하고 숙식을 해결한다.

우연히 재하를 발견한 효주는 마음이 흔들리고, 어느 날 체육관에서 그가 혜영과 사랑을 나누는 걸 목격한다. 효주는 그걸로 혜영을 압박하고 혜영은 고분고분해진다. 하지만 효주가 문제였다. 한 번 재하에게 빠진 그녀는 없는 돈에 재하의 학원비를 대주고 제 집에 불러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재하의 본심은 오로지 혜영. 세 사람은 욕망과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으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혜영을 만나는 것을 안 효주는 재하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세 사람의 상황은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참담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세 주인공은 평범해 보이는 이 사회의 단면도이다. 최상위는 아니지만 혜영은 부자이다. 효주는 그냥 주변에 널리고 널린 흔한 비정규 직장인이다. 재하 역시 재능과 외모가 뛰어나긴 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고3 수험생이다.

이 피라미드 구조에서 의외로 혜영은 순수(?)하다. 아니, 정확하게 해맑다. 자신이 대학 졸업 직후 무난하게 정규직으로 취업한 게 지극히 당연하다고 알고 있으며 사실은 그게 선배의 생존을 위협했다는 비하인드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다.

이사장 딸에게 잘 보이려는 선임 선생들만 있는, 불편한 학교 안에서 그나마 유일한 대학 선배에게 기대고 싶은 사회 초년생일 따름이다. 그러나 고독한 치타 같은 효주 입장에서 혜영은 사자 우두머리의 딸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강력한 상위 포식자이다.

혜영의 친절은 자괴감이고 모멸감이자 자아에 대한 도전이다. 치타는 사자가 달려들면 먹이를 버리고 도망가지만 감히 효주는 맞서 싸우려 한다. 효주와 혜영에겐 진화 생물학이 적용된다. 동물 암컷도 육체적 우성 유전자를 지닌 수컷과 경제력이 뛰어난 수컷 사이에서 방황한다.

무리의 새로운 리더가 된 젊은 수사자가 기존 리더의 새끼들을 죽임으로써 암사자와 교미를 하고, 그걸 암사자들이 수수방관하는 건 암사자가 두 가지 다 만족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와 달리 좀 복잡하다. 여자의 나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효주에게 연인은 철없던 시절의 진화 생물학의 계산이 배제된 사랑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그의 무능함을 알려 줬고, 그래서 일단 우성 유전자에 이끌리게 된 것이다. 혜영은 부잣집 딸답게 영특하게도 경제적 안정을 먼저 선택했다.

그러나 그 뒤에 육체의 우성 유전자에 대한 본능이 꿈틀댄 것이었다. 재하와 그저 적당히 즐기다가 약혼자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그렇다. 이렇듯 나이 많은 선생은 가치관이 불분명하고, 젊은 선생은 철부지며, 아이는 영악하다.

영화는 이런 주인공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불균형과 비대칭에 항거한다. 아이를 어른보다 더 징글징글하게 그려 낸 것은 이 사회가, 지도층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이란 반어법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옛말은 먼 바다 심연에 가라앉은 고대의 유물일 따름이다.

고작 3명의 심리적 갈등과 변화만으로 이런 서스펜스를 주기란 쉽지 않다. 영어제목 ‘Misbehavior’(품행제로)가 누굴 가리키는지를 찾는 숙제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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