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재심’(김태윤 감독, 2017)은 2000년 발생한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 운전기사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범죄의 재구성’이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고 피의자가 결국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기에 관객에게 호기심을 주긴 사실상 쉽지 않다.

14년 전 익산. 고등학교를 중퇴한 현우(강하늘)는 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밤늦게 귀가하던 중 오거리에서 택시 운전기사 살인 사건을 목격하지만 오히려 피의자로 몰려 경찰의 모진 고문 끝에 범죄를 시인하고 1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다.

현재 서울. 지방 대학교를 중퇴한 변호사 준영(정우)은 아내는 물론 어린 딸에게도 무시당하는 가장이다. 사법 연수원 동기 창환(이동휘)은 대형 로펌 테미스에서 떵떵거리며 일하지만 자신은 프리랜서 형식으로 고군분투함에도 불구하고 수임이 없어 경제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준영은 창환에게 납작 엎드려 테미스에서 일을 따낸다. 언론 플레이를 좋아하는 대표의 부탁으로 지방을 도는, ‘찾아가는 무료 법률서비스’를 맡게 된 것. 그렇게 그는 현우와 그의 엄마 순임(김해숙)을 만나게 된다. 준영의 목적은 간단했다.

대표의 눈에 들어 테미스에 정식으로 입사해 돈도 벌고 체면도 세워 떳떳한 가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우가 “나 안 죽였어.”라고 뇌까린다. 거칠고 반항적이며 비타협적이어서 마냥 위험하게만 보였던 현우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처음엔 건성으로 시작했던 순임과 현우와의 법률 상담이 재심 청구라는 구체적인 변호사로서의 임무 수행으로 변화된다. 영화는 준영과 창환의 대조, 준영과 현우의 대립 및 화합, 그리고 법의 정의(定義)라는 3가지 구조로 분할된다. 준영이 변호사가 된 것은 오로지 돈이 목적이었다.

그는 “변호사에게 미안하단 말은 금기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 그런 속물적 근성은 창환도 마찬가지. 다만 창환은 준영보다 머리 회전이 빨라서 출세가 앞선 게 달랐다. 그런데 준영은 점점 변호사의 첫 번째 직업 윤리인 준법정신으로 회귀하는 반면 창환은 점점 더 악마가 돼간다.

창환이 “내 개가 정육점 쇠고기를 먹었다고 50만 원을 청구했을 때 내가 줘야 할 돈은 얼마? 내 수임료 150만 원을 오히려 받아야 한다.”라는 논리를 펼칠 때 준영은 “변호사는 테러리스트보다 친구가 없다. 친구가 필요하면 개나 키워라.”라고 창환의 논리에 동조하는 듯하지만 사실 비아냥대는 반어법으로 자신은 다른 노선을 걷겠다고 일갈한다.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수작 ‘데블스 에드버킷’(1997)에서 시골구석의 변호사 케빈(키아누 리브스)은 미국인들이 자주 말하는 전형적인 사기꾼 변호사이다. 의뢰인의 유무죄와 상관없이 백전백승을 자랑하는 그는 결국 뉴욕 대형 로펌에 스카웃돼 펜트하우스에 살며 더욱 악랄하게 돈 되는 일이라면 준법정신이나 양심 따윈 개에게 던져준 듯 질주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게 악마의 유혹이었음을 깨닫고 추락한다.

창환은 케빈이 되지만 준영은 일찍 진짜 변호사가 된다. 그 계기는 바로 현우를 그렇게 만든 경찰과 검사 그리고 판사였다. 준영과 현우의 관계는 천박한 욕망과 억눌린 인권에 대한 복수심 혹은 포기한 나약한 열패감에서 시작됐다. 이렇듯 서로 상극의 정점에서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은 서로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는다.

계기는 현우가 극한 노동의 대가로 받아와 수임료로 준영에게 내민 돈 봉투였다. 준영은 수십만 원밖에 안 되는 이 돈이 현우의 전 재산인 것을 잘 알기에 테미스가 받는 어마어마한 수임료보다 더 값지다는 소중함을 깨닫고, 이 무모한 싸움에 자신의 법에 대한 소신과 믿음을 모두 ‘올인’한다.

서로의 진심이 진실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검찰에게 수사 지휘권과 기소권이 있다. 사실상 경찰 위의 검찰이다. 아무리 경찰이 수사를 잘해도 검찰이 묵살하면 무시되고, 잘못해도 검찰이 인정하면 사건이 법정에 오른다.

검사와 판사가 사법 연수원 동기일 경우 무려 2년간 함께 지내고 그렇지 않더라도 모를 리 없는 관계이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구조이기에. 준영과 현우가 경찰과 검찰이라는 거대 조직과 맞서 진실을 밝히려 힘겨운 싸움을 하면 할수록, 희망을 찾으면 찾을수록,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절망이라는 것을 먼저 느낀 사람은 가장 연장자인 순임이다.

준영이 분노이고, 현우가 좌절이라면 순임은 차선책을 택한다. 그녀는 일부러 현우가 밉다는 듯 집에서 쫓아내며 외국 어디든 나가서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라고 절규한다. 그건 ‘이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라고, 그래서 ‘모든 게 널 이 땅에 태어나게 한 내 잘못이다.’라는 자아비판과 자포자기이다.

테미스(Themis)는 그리스 신화의 법률, 질서, 정의의 여신이다. 올림푸스의 율법을 관장했다.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대형 로펌의 법무법인명이라는 게 아이러니이다. 이는 준영과 창환, 혹은 검사와 판사, 또는 경찰과 검찰이라는 구도로 대비될 수 있다.

창환은 “언제부터 변호사가 의뢰인이 범인인지 아닌지를 따졌냐?”라고 이죽거린다. 현우는 “법이라는 것이 뭐여? 사람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여? 가진 놈들이 이익 챙기려 만든 것 아녀?”라고 울부짖는다. 범죄 소탕엔 관심이 없고 범인 조작으로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비리 경찰은 다방에서 미성년 여종업원을 추행하며 “경찰이 경찰에게 잡혀가는 것 봤냐?”라고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준영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은 현우 동네의 ‘논두렁 건달’들이다. 이 조폭들은 나약하고 정겹고 의리가 있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모텔로 애먼 사람들을 끌고 가 잔인한 폭행과 고문을 통해 범죄자로 만드는 경찰이 더 조폭처럼 그려지고, 그들과 결탁하는 검사와 변호사가 마치 사법을 비웃는 잔인한 재벌처럼 묘사된다.

영화는 사실과 픽션 사이를 적당하게 넘나드는 가운데 억지스러운 감동을 주고자 작위적인 장치를 들이대지 않는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때론 교묘하게 상업 영화에 틀에 맞추듯 절묘한 양다리 걸치기로 재미와 메시지 사이를 넘나든다.

변호사의 양심과 사법 공무원의 헌법 수호 정신에 대한 호소를 담은 영화는 수두룩했다. 이 영화는 그런 대중적 울림의 장치를 굳이 외면하려 하지 않고 드러내놓고 전면에 포진하면서도 준영과 현우라는 두 주인공의 휴먼 버디 드라마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데 애썼다.

순임을 장님으로 설정한 배경은 법은 물론 세상 물정에 어둡지만 순수한 대한민국 어버이들의 비유법이다. 공교롭게도 사건의 발단이 오거리이다. 삼거리는 한국 전쟁 종전 직후 즈음의 느낌을 주지만 바둑판 구조로 구획 정리가 잘 된 오늘날의 도심은 무조건 사거리이다.

오거리는 드물지만 삼거리와 사거리의 서민적 추억과 정형화된 질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정서 등을 모두 포함한 느낌을 주기에 색다른 중심이다. 긴박할 때와 감정이 출렁일 때의 핸드헬드 카메라와 트럼펫 연주 등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는 연출과 편집이지만 마지막에 맥이 풀리는 것이 결정적인 옥에 티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