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보안관은 각 행정 구역 최소 단위 지역의 안전과 질서를 맡아보는 민선 관리 제도가 있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의미로 널리 통용된다. 동네에서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에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며 대소사를 챙겨 주는 오지랖 넓고 인맥이 매끄러운 사람이다.

영화 ‘보안관’(김형주 감독, 2017)은 그런 정서에서 출발한 유쾌한 코미디를 표방한다. 2011년. 대전경찰서 강력계 형사 대호(이성민)는 파트너 종철과 함께 정체불명의 마약계 대부 뽀빠이의 뒤를 캐던 중 그의 ‘배달부’인 일식(정만식)의 소재를 찾아낸다.

성질 급한 그는 지원 인력을 기다리자는 종철의 조언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 일식을 놓치고, 종철은 칼잡이에게 죽는다. 그러나 대호는 그곳에 숨어 있던 초보 배달부 종진(조진웅)은 검거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홀어머니와 어린 남매를 돌보는 가난한 가장.

대호는 동료의 검찰청 호송 독촉을 무시하면서까지 측은한 종진에게 따뜻한 순댓국 한 그릇을 챙겨 먹인다. 호송차에 타기 전 종진은 염치없지만 어머니에게 부쳐 달라며 편지 한 통을 내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편지를 뜯어 본 대호는 구구절절한 가족의 사연과 가족애에 눈물을 흘리며 5만 원 권 2장을 동봉해 부친다.

이 일로 해직된 대호는 고향 부산 기장으로 내려간다. 5년 뒤. 대호는 노총각 처남 덕만(김성균), 아내(김혜은), 딸 등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덕만은 식당의 매니저이자 대호의 조수이다. 대호는 식당 일보다는 용환(김종수), 선철(조우진), 강곤(임현성), 춘모(배정남) 등 토박이들과 함께 자율 방범대 컨테이너에 모여 동네 대소사를 챙기는 일에 더 몰두한다.

어느 날 동네에 마약이 돌고,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한 사업가가 비치 타운 수산물 센터 건립 사업 계획을 들고 내려온다. 그런데 그 사업가는 바로 종진. 주민들은 센터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대호는 종진에게서 뭔가 수상한 냄새를 맡는다.

그러나 대호의 중학교 동기동창인 군청 박 계장(김광규)은 종진의 편을 들고, 용환 등을 비롯해 다수 주민들의 마음마저 점점 종진에게 기울며 센터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센터 번영회장 선거에서 종진에게 진 대호는 의심과 분노 등이 복잡하게 뒤엉켜 더욱 반감이 깊어진다.

대호는 덕만과 함께 독자적인 수사에 나선다. 동네 선배인 기장경찰서 강력계 강 반장(김병옥)을 움직여 종진의 청국장 공장을 급습하지만 증거를 못 찾아 입지만 좁아진다. 또 덕만과 함께 몰래 종진의 아파트에 들어갔다가 아무것도 못 건지고 때마침 들어온 종진에게 들켜 난처해진다.

그래도 종진은 대호에게 너그럽고 예의바르다. 외려 고급 손목시계를 선물하며 예전의 순댓국 한 그릇을 잊지 못한다고 은인으로 깍듯하게 예우한다. 그럼에도 대호의 의심은 지워질 줄 모른다. 그는 종진의 수상한 무인도 낚시 행렬을 미행하는데.

구성은 전형적인 맥거핀 범죄 수사 코미디이다. 스토리에서 커다란 재미나 새로운 플롯을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누지 말라. 알고 보면 회색일 뿐이다.”라는 대사가 나름대로 의미심장하긴 하지만 대단한 메시지는 아니라 그저 범죄 정당화의 궤변일 따름이다.

주연 혹은 주조연이 가능한 연기파들과 신 스틸러들을 그러모아 캐릭터의 향연 속에서 코미디로 최대한 재미를 안기겠다는 상업적 목적이 뚜렷하다. 언뜻 류승완 감독의 쿠엔틴 타란티노에 대한 오마주인 ‘짝패’를 연상케 하지만 누아르나 액션은 그냥 대호와 덕만이 철부지처럼 ‘영웅본색’을 반복 감상하고 저우룬파(주윤발)를 흉내 내는 데 그친다.

‘군도: 민란의 시대’, ‘손님’, ‘검사외전’ 등을 통해 날카로운 캐릭터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거나 ‘로봇, 소리’로 관객의 가슴을 흠뻑 적시는 최루연기로 각인된 이성민이 처음으로 코미디에 도전한 점을 주목할 만하다. 사실 대호는 캐릭터는 강하지만 표현은 쉽지 않은 인물이다.

형사 시절 그의 무모함과 집착은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있었던 아날로그 형사 캐릭터의 전형이다. 주목할 지점은 해고된 후 낙향해 ‘반백수’가 된 이후에도 변함없는 사명감과 소명 의식이다.

그의 활약이 훌륭한 성과를 낳을 경우에도 그가 받을 급여나 신분 상승의 기회는 없다. 그냥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강력 범죄에 대한 본능적인 배타적 소신과 그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자는 인간애 때문에 무모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원래 ‘보안관’으로 추앙받았던 그는 종진이라는, 예의 바르고, 포용력이 넓으며, 아낌없는 경제적 베풂을 마다하지 않는 복병의 출현으로 인해 졸지에 입지가 확 좁아든다. 그가 평소 주민들의 민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소득이 아니라 명예와 자존감이었다.

비록 형사는 그만뒀지만 소신만큼은 그대로인 천성 때문이다. 그런 ‘단순무식’하면서도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캐릭터를 이성민 외에 맡길 또래의 배우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곳곳에 촘촘하게 포진된 코미디의 요소는 상업 영화로서 괜찮다. ‘신 스틸러’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분위기메이커'들의 맹활약 덕이다.

문제는 시나리오. 기획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으나 ‘스타스키와 허치’, ‘리썰 웨폰’, ‘러시 아위’ 등의 형사 버디물이 가진 차진 시나리오의 힘을 갖추진 못했다. 게다가 ‘짝패’만큼의 최소한의 범죄의 폐해에 대한 계몽조차도 없다. 명배우들의 집합을 평범한 팝콘 무비로까지밖에 이끌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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