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경의 스포츠를 부탁해] 프로야구 경기가 한창인 지금 한 투수가 공을 던졌다. 타자는 방망이를 힘껏 휘둘렀지만 공은 야속하게도 포수의 미트 속에 빨려 들어갔다. 헛스윙, 그때 전광판의 속도계에는 놀랍게도 76km/h가 떴다. 아주 느린 변화구를 던진 이 선수는 바로 현재 프로야구에서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유 희관 선수이다.

통상적으로 프로야구에서는 150km/h에 가까울수록, 또는 그 이상을 던지는 투수를 선호한다. 또한 그런 선수가 에이스를 도맡아 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만큼 더 빠른 공이 타자를 잡기에 유리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 희관 선수는 현재 15승으로 다승 선두이다. 느림의 미학, 그가 왜 이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사진 : 두산베어스 공식 홈페이지 캡쳐

그의 등장은 내가 가지고 있던 야구의 고정관념을 바꿔 놓았다. 그는 최고 구속 135km/h의 느린 직구와 체인지업에 가까운 싱커, 슬라이더, 커브를 정확한 제구와 함께 구사한다. 이 정확한 제구와 강한 정신력이 바로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강한 타자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 사진 : KBO 홈페이지 캡쳐

그의 데뷔 초로 돌아가 보자. 2009년, 2010년의 기록을 보다시피 그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조기 입대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입대 후 상무에서 2년간 43경기 출전, 16승 5패 2홀드, 평균자책점 2.96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성장하였다. 2013년 제대 후 첫 시즌에서는 느린 속구와 함께 두산의 토종 좌완으로써 25년 만에 10승 투수가 되며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25년이라는 숫자를 볼 때 두산 베어스의 입장에서는 유 희관 선수가 귀한 복덩이가 아닐까 싶다. 그의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는 그만큼 왼손 투수와는 인연이 없던 팀이었다. 그의 등장이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이후에도 함덕주, 진야곱, 허준혁 등 여러 좌완 유망주들이 성장했다. 그리고 2015년, 그는 두산베어스 좌완 에이스의 역사를 다시 썼다. 전반기에 벌써 3년 연속 10승을 달성하였고 이제는 15승에 안착했고 더 나아가 20승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은 ‘느린 구속으로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반짝하고 말 것이다.’, ‘운이 따라주었다.’등의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나 또한 그의 활약에 전력분석이 되면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해에도 또 올해에도 좋은 성적을 올리며 그는 절대 반짝 스타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현 한화의 수장인 김성근 감독은 이제 유 희관 선수를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좌완 에이스라고 평가했다. 그렇다. 그는 이제 두산 베어스의 토종 좌완 에이스에서 대한민국의 좌완 에이스로 성장한 것이다. 이제 앞으로 있을 국가대표 선발에 그는 빼놓지 않고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느린 속구와 변화구가 국제무대에서도 과연 통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남아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그의 제구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증명해 낼 것이다.

지난 6일 조금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잠실구장에서 유희관 선수가 러닝 훈련을 소화하다 발목을 접 질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9일에 무리 없이 선발 일정을 소화했지만 결국 10일에 유 희관 선수가 발목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불행 중 다행히도 두산 베어스의 김태형 감독은 선수 보호 차원이며, 한 차례 선발 로테이션에서 거른 뒤 복귀시킨다고 밝혔다. 어쩌면 이번 1군 제외가 그에게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느림의 아이콘인 유 희관 선수가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려온 것이라고, 잠시만 쉬어가라는 신호가 아닐까? 10일 후 더 강해져서 돌아올 그의 복귀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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