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미이라’(1999)는 이집트 역사를 왜곡했지만 1편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리롄제(이연걸)를 끌어들인 3편까지 내달렸다. 돈은 벌었지만 평단의 혹평과 식자들의 불평은 피해갈 수 없었다. ‘미이라’(알렉스 커츠만 감독, 2017)는 유니버설픽쳐스가 고전 몬스터 영화들을 리부트한 프로젝트 다크 유니버스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첫 번째 작품이다.

‘스타 트렉: 다크니스’와 ‘나우 유 씨 미’ 1, 2편을 연출한 커츠만 감독의 세계관은 크리스토퍼 놀란에 가깝고, 언제나 그렇듯 톰 크루즈의 선택은 탁월했다.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 공주 아마네트(소피아 부텔라)는 아버지로부터 왕위 계승을 약속받지만 새 왕비로부터 왕자가 태어나자 꿈은 물거품이 된다.

그녀는 악의 신 세트의 단검으로 왕, 왕비, 왕자 등을 살해한 뒤 연인을 희생양 삼아 세트를 부활시키려는 의식을 치르던 중 충신들에게 잡힌다. 벌로 산 채 매장된 그녀는 한과 저주로 죽지 못하는 악마가 돼 그렇게 봉인된 채 삶과 죽음의 세월을 지낸다. 서기 1127년. 본래의 취지를 잃고 이집트를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른 십자군 기사들이 런던 외곽 지하에 묻히고 한 기사의 관에 ‘세트의 단검’의 생명줄인 보석이 함께 매장된다.

현재. 중동 분쟁 지역에 투입된 영국 용병 닉 모튼(톰 크루즈)은 사실 부하 베일과 함께 혼란을 틈타 유물을 도굴해 수익을 챙기며 산다. 전날 원 나이트 스탠드를 한 고고학자 제니 할시(애나벨 월리스)의 가방에서 고대 유물 지도를 훔친 그는 베일과 함께 이라크 최대 격전지인 모술에 간다.

반란군과 교전이 발생하자 지원을 요청하고, 아군 군용기의 폭격으로 반란군이 철수한 곳에서 거대한 이집트의 무덤을 발견하자 때마침 아군들과 제니가 줄줄이 현장에 나타난다. 그들은 무덤 안에서 수상한 기운이 감도는 석관 하나를 발견한 뒤 수송기에 싣고 영국으로 되돌아간다.

갑자기 베일러가 미쳐 동료들을 살해하자 닉이 그를 사살한다. 비행기는 까마귀 떼의 습격을 받고 런던 외곽에 추락하는데 닉은 하나뿐인 낙하산으로 제니를 살리고 자신은 추락사한다. 그러나 시체 안치실에서 닉은 상처 하나 없이 부활한다. 석관에 비밀이 있음을 감지한 두 사람은 비행기 추락 지역을 수색하다 무덤에서 깨어난 아마네트를 만난다.

아마네트는 사라진 ‘세트의 단검’과 보석을 찾아내 합치시킨 뒤 닉을 희생양 삼아 세트를 불러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 절체절명의 순간 정체불명의 용병들이 나타나 두 사람을 구하고 아마네트를 생포한다. 닉이 눈을 뜬 곳은 각종 몬스터를 잡아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하려는 비밀 조직 프로디지움의 본부.

리더 헨리 지킬(러셀 크로우) 박사는 하이드라는 악마적 인격을 동시에 소유한 자이다. 닉은 아마네트의 저주에 의해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상황. 아마네트를 도와 영원불멸의 악의 신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을 운명. 아마네트는 지하에 잠든 십자군 시체들을 불러내 프로디지움을 습격한 뒤 결박을 풀어 활개를 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이드로 변한 헨리가 닉을 죽이려 하는데.

약간의 유머가 있고 전반에 살짝 몽환적일 뿐 시종일관 어둡다. 영화는 니체의 니힐리즘(허무주의)과 그를 이은 실존주의의 대가 하이데거의 철학을 근거로 한다. 기존에 일반적으로 인정돼 온 이상, 도덕 규범, 문화, 생활 양식 등의 모든 가치관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니힐리즘은 생철학에서 실존주의를 낳았고, 하이데거는 이를 이어받아 크게 발전시켰다. 심지어 카뮈는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봤다.

아마네트는 실제 역사에 없는 가상의 인물이다. 대사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공주 하나가 사라졌다. 그게 그 시대의 방식이다.”라고 해석한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고 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아마네트, 닉, 베일 등은 모두 니힐리즘의 산물이다.

아마네트는 현실을 부정하고 가장 부조리한 친족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녀 역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부활을 믿었기에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축제로 여겼다. 다만 부활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죽은 자들의 신 오시리스가 다스리는 죽은 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같은 신 아누비스에게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을 통과해야 했다.

만약 생전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그 무게가 가벼울 경우 괴물에게 먹힘으로써 부활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무덤은 통로일 뿐이다. 과거는 영원히 묻힐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과연 아마네트가 꿈꾸는 자신과 세트의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

가장 돋보이는 주제는 희생이다. 사랑을 믿지 않고, 정의는 엿하고 바꿔 먹은 듯한 닉은 갑자기 제니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면서 급변한다. 단 하나밖에 없는 낙하산을 제니의 등에 묶어 줌으로써 그녀를 살린다. 이때 닉은 “두 개인 줄 알았다.”라고 농담을 던진다. 그건 어쩌면 부활한 자신을 가리켜 생명이 두 개인 줄 알았다는 은유일 수도 있다.

여기에 이 영화의 교묘한 알레고리가 숨어 있다. “괴물이 괴물을 막는다.”라는 이이제이의 동양적 정서가 깃든 대사가 있다. 이는 신과 인간 그리고 악마라는 세 존재의 경계에 대한 철학을 담는다. 악마는 타락한 전직 천사(신)이고, 인간은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뜬 토우에 생명을 불어넣은 존재이다.

‘신=악마’, ‘사람=신’이라는 아이러니컬한 등식의 성립이다. 그렇다면 귀납법에 의해 ‘사람=악마’라는 등식마저 가능해진다. 바로 이 영화의 결말이다. SF, 오컬트, 스릴러에 좀비 스타일까지 다양한 장르를 담았다. 스케일 또한 부족함이 없다. 다크 유니버스의 출발을 알리는 예고 장치도 훌륭하다. 다만 닉은 크루즈보다는 왠지 조니 뎁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게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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