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호영 국장의 직격인터뷰]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야금을 시작한 이승아 씨(42)는 서른 즈음에 크게 두 번 울었다고 한다.

한번은 6학기로 이뤄진 서울대 박사과정 5학기 독주회 때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했지만 신체적·심리적으로 극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결국 독주회 마지막 곡에서 손이 멈춰버리는 상황까지 왔다. 임기응변으로 연주를 마치기는 했지만 무대 뒤에서 크게 울었다.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했다. 그리고 도망치듯 호주 멜버른으로 여행을 갔다. 멜버른 시내를 걷는데, 헬스클럽처럼 자주 눈에 띄는 알렉산더 테크닉(Alexander Technique, 이하 AT)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노크했다. 그런데 신세계(新世界)가 열렸다.

이승아 씨는 몇 달 후 서울로 돌아와 AT센터를 수소문해 수련을 시작해 3년 뒤에 지도자 자격까지 받았다. 몸과 마음이 안정된 후 가진 첫 독주회를 마쳤을 때, 오열(嗚咽)했다. 이번에는 환희의 눈물이다.

서울대 음악대학 최초로 ‘가야금 연주법 향상을 위한 AT 프로그램 개발’ 주제의 박사 논문이 2021년 8월 통과했고, 올해 초에는 서울 개포동 국립국악고등학교 인근에 '비잉&플로우(Being&Flow)'라는 AT센터를 개설해 후학(後學)지도에 나선 이승아 박사를 만나봤다.

 AT 접하기 전의 이승아 박사 연주 자세(사진 왼쪽)와 후 모습(사진 오른쪽) /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AT 접하기 전의 이승아 박사 연주 자세(사진 왼쪽)와 후 모습(사진 오른쪽) /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Q 무대에서 손이 멈춰 버리면 좌절감이 무척 컸겠다...

“박사과정 학기마다 독주회를 갖는데, 5학기 때는 창작곡 5곡을 소화해야 한다. 산조 가야금을 비롯해 18현, 25현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한다. 당시 출산한 아가를 친정에 맡기면서 하루 10시간씩 연습했는데, 정작 무대에서 전혀 발현되지 않아 많이 속상했다”

Q 무슨 이유였을까?

“그때는 몰랐다. 연주가 제대로 안되면 연습으로 하루 5시간에서 10시간으로 늘리던 때였다. 허리 목 손목 등에 통증 때문에 한의원이나 마사지샵을 찾는 게 일상이었다. 무대 공연을 앞두고 정신적으로 예민해지면 신경 안정제로 분류되는 인데놀 복용을 권유받곤 했다. AT센터 수련을 받으면서 나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됐다”

Q 가장 크게 깨달은 사실은?

“나는 키가 큰 편이다. 선조들의 체형에 맞게 제작된 가야금이 사실 내 몸에는 어울리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지도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따라, 또는 가야금 크기에 내 몸을 맞추려는 잘못된 습관에 따라 오랜 기간 연습을 하면서 통증이 생긴 거고, 몸이 안 따라주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온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통증이 있는 가운데 연주하는 가야금 소리가 청중에게 어떻게 들렸겠는가. 이제는 가야금 연주가 즐겁고 행복하다. 나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알려줘 그들에게서 변화를 볼 때도 무척 기쁘다“

Q 알렉산더는 누구인가?

“AT 창시자인 프레더릭 마티아스 알렉산더(Frederick Matthias Alexander, 1869~1955)는 호주 태즈매니아 출신으로 20살 때 멜버른으로 이사했다. 셰익스피어 낭독자이자 배우였던 그는 20대 초반에 벌써 발성에 문제가 생겨 낭독 도중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의사는 의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고 원인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알렉산더는 스스로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기로 하고 3면에 거울 두고 일상 때 발성과 낭독 때 발성을 비교해 본다. 낭독할 때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척추가 구부러지면서 호흡과 발성에 무리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거울 앞에 서서 관찰과 자각 과정을 통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침내 소리를 얻게 된다. 그런 경험을 저술해 그가 1932년 낸 책 제목이 ‘자기의 사용(Use of Self)'이다. 잘못된 사용(misuse)을 자제하는 게 AT의 핵심이다“

Q AT를 외국 유명 예술대학에서 적용하고 있다는데..?

“알렉산더는 호주 멜버른에서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에 거주하며 AT를 알렸고, 특히 1916년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의 선구자인 존 듀이(John Dewey)같은 저명한 제자들을 통해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미국의 줄리어드 음대 등 유명 예술대학이 AT를 병행 교육하고 있다. 유럽·미국 알렉산더협회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AT를 적용하는 각국의 예술대학이 소개돼 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맨체스터대학 연극학과 1학년 때부터 AT교사와 1대1로 마주하며 교육받았다고 한다“

Q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에서 AT를 공부하고 수련한  백희숙 교사를 중심으로 2009년 한국알렉산더테크닉협회가 설립됐다. 나도 호주 멜버른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 협회에서 3년간 1600시간 수업을 이수하고 지도자 자격을 얻었다.

저는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2021년부터 서울대 음악대학에 처음으로 AT과정이 개설돼 석·박사과정 학생 뿐 만 아니라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7월 중순부터는 국립 국악관현악단 오케스트라 이음 단원들을 대상으로 15회로 구성된 워크숍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AT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세미 수파인(semi-supine) 자세
AT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세미 수파인(semi-supine) 자세

Q AT는 자세교정인지, 심리치료인지 궁금하다.

“AT에서는 몸과 마음을 유기적인 관계로 본다. 자신의 몸을 관찰하여 발견되는 불필요한 긴장과 습관들을 자각하고. 자제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보다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자세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비교적 안정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 뿐 아니라 성악가들도 AT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참고로 성악을 하는 제 친언니도 AT 지도자 자격을 갖고 있다“

Q 가야금 연주자이기도 하시니까, 가야금 연주자에게 AT의 효과는?

“사실 바닥에 앉아서 연주하는 가야금의 연주자세는 역학적으로 편한 자세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 고정자세로 많은 시간 유사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연습하고 연주하기에 그에 따른 긴장과 통증은 어쩌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AT는 연주자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관찰. 자각하여 효율적인 자세를 비롯하여 연습방법, 휴식방법을 찾아나가도록 안내한다. 가야금연주자들이 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통해 안정적으로 연주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미디어파인

Q AT센터 이름이 '비잉&플로우(Being&Flow)'인데...

“말 그대로 ‘존재와 흐름’인데, 예술가로서 흐름이란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웬만큼 가야금을 연주해왔다면 음정 박자 템포를 맞추기야 하겠지만, 똑같은 악보를 나만의 해석으로 표현하는 게 아주 어렵다. 나만의 해석을 제대로 표현하는 게 ‘흐름’이다.

사람마다 손 모양도, 손가락 길이도 다르고, 몸의 유연성에도 차이가 있다. 존재의 차이를 자각하면서 나만의 흐름을 찾아가도록 후배들을 도와주는 게 제 역할인 셈이다“

Q 향후 센터 운영 계획은?

“비잉앤플로우 센터의 AT교사는 모두 음악전공자 및 가야금연주자 출신 으로 구성돼 있다. 그 특색에 맞게 교육대상자의 악기군.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1대1 클래스, 특성화 그룹 클래스, 데일리 클래스 등 세분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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