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컬처] 카이사르-이병헌 등 영웅의 탄생 [유진모 칼럼] '공동경비구역 JSA'
[히스토리&컬처] 카이사르-이병헌 등 영웅의 탄생 [유진모 칼럼] '공동경비구역 JSA'

[미디어파인=유진모 칼럼니스트] 7월 12일. 기원전 10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1884년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916년 판소리 명창 박동진, 1966년 뮤지컬 배우 전수경, 1970년 배우 이병헌, 1978년 미국 배우 미셸 로드리게스, 1988년 골프 선수 박인비, 싱어 송 라이터 이든, 1990년 크레용팝 초아, 크레용팝 웨이, 가수 노지훈, 1992년 배우 우도환, 배우 장동윤, 1993년 SF9 인성, 1994년 엔플라잉 차훈 등이 태어났다.

1762년 영조 아들 사도세자, 1935년 프랑스 군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등이 눈을 감았다. 1975년 상투메 프린시페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1979년 키리바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2022년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의 첫 사진이 공개되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정말 유명한 말이다. 카이사르가 기원전 47년 젤라 전투에서 승리한 뒤 로마 원로원에 보낸 편지에 적힌 글이다. 또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

세계 역사상 진시황과 함께 왕을 능가하는 황제의 개념을 창시한 인물로 본인은 황제 자리에 오른 적이 없지만 지위만큼은 왕 중의 왕으로 인정받는다. 독일어권에서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와 슬라브어권에서 군주를 듯하는 차르는 그의 이름에서 빌린 것이다.

삼두정치를 통해 로마를 통치하는 동안 갈리아(프랑스, 골)를 정벌하는가 하면 정적인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장악했지만 원로원에서 암살당했다. 그럼에도 그에 의해 로마 공화제는 사실상 끝나고, 그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제국으로 변한다.

카이사르는 정치, 종교, 군사, 저널리즘 등에서 탁얼한 천재성을 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추문과 대머리나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가 초급 장교 시절 비티니아 왕실에 파견 중일 때 국왕 니코메데스 4세에게 몸을 주었다는 스캔들에 휩싸이기도.

그는 대머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결혼을 여러 번 했고, 유부녀건 처녀건 가리지 않고 염문을 뿌렸다. 그가 클레오파트라 7세와 동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최초로 산모의 배를 가르고 탄생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아닌 듯하다. 제왕 절개는 그런 소문에서 나온 용어.

지금이야 영화와 드라마의 간극이 거의 없고, 때에 따라서는 드라마가 우위에 서기도 하지만 20세기~21세기 초만 하더라도 영화가 확실히 높게 평가되었다. 소비자는 그런 개념이 별로 없었는데 배우 및 관계자들에게 그런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TV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라선 배우라고 할지라도 영화배우로서 성공하기를 간절하게 원했는데 이병헌도 예외는 없었다. 1991년 KBS 공채 14기로 입사한 그는 이듬해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 박소현과 함께 출연해 단숨에 청춘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거의 모든 TV 드라마 배우들이 그렇듯 그는 1995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특별 출연 이후 같은 해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와 '런어웨이' 등에 출연하며 영화계 안착을 노리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후 '지상만가'(1996), '그들만의 세상'(1997), '내 마음의 풍금'(1999) 등 스크린을 부지런히 두드리지만 관객들은 그의 노력을 외면한다.

그 지긋지긋한 스크린 콤플렉스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 2000) 한 편으로 날려 버린다. 지금이야 박 감독이 거장으로 대우받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과 '3인조'(1997)로 연이어 망한 그에게 관심을 가질 제작사, 투자사, 배우 등은 별로 없었다.

캐스팅에 난항에 난항을 겪은 끝에 송강호와 이병헌이라는 양대 산맥을 데려오는 데 성공해 영화가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병헌은 박 감독과 제작사 명필름 등에 주기적으로 절을 해도 될 결과를 얻었다.

그 지긋지긋했던 스크린 콤플렉스를 이 작품 하나로 떨쳐 내고 그는 대한민국을 넘어 할리우드에서도 인정해 주는 월드 스타가 되었다. 만약 이 작품의 주인공을 최민식과 이정재가 했더라면 결과가 어땠을까?

1894년 유대인 드레퓌스는 독일에 프랑스 기밀을 넘겨 주었다는 스파이 혐의를 받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다. 후에 진짜 범인이 드러났으나 군 당국과 언론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진실을 은폐했다. 그러나 에밀 졸라 등 양심적 지식인들이 유대인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를 썼다. 결국 1904년 재심을 통해 드레퓌스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권을 존중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유명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직도 국가 안보라는 핑계로 진실을 은폐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사건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거나 의심이 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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