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컬처] 달파란, MBC에 침 뱉고 쫓겨난 반항아 [유진모 칼럼]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히스토리&컬처] 달파란, MBC에 침 뱉고 쫓겨난 반항아 [유진모 칼럼]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미디어파인=유진모 칼럼니스트] 7월 16일. 1872년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 1947년 배우 문희, 1966년 뮤지션 달파란(시나위 전 베이시스트), 1971년 배우 김정난, 1980년 젝스키스 장수원, 1982년 배우 이엘, 1985년 배우 차예련, 1988년 개그우먼 홍윤화, 1989년 배우 김우빈, 1992년 가수 설하윤 등이 태어났다.

1671년 조선 시인 윤선도, 1782년 이탈리아의 전설적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1989년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2012(1941~)년 영국 록 밴드 딥 퍼플 리더 존 로드, 2017(1940~)년 미국 좀비 영화의 대부 영화감독 조지 A. 로메로 등이 세상을 떠났다.

1918년 러시아 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총살형을 당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세계 최초로 핵 실험을 했다. 1999년 탈옥수 신창원이 908일 만에 전라남도 순천에서 검거되었다.

요즘 미녀 여배우를 대표하는 트로이카로 '태혜지'라는 용어가 있다. 김태희, 송혜교, 전지현 등의 40대 대표 미녀 배우를 지칭한다. 이 트로이카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남정임, 윤정희, 문희라는 1세대 트로이카 영화배우부터 시작된다.

당시 고은아, 김지미, 전계현이라는 미녀 배우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전술한 3명을 트로이카로 인정했다.

문희는 1968년 여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이 서울 단관 개봉만으로 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빅 히트를 기록하면서 순식간에 슈퍼스타 자리에 오른다. 그런데 인기 절정이던 1971년 갑자기 한국일보 장강재 부사장과 결혼하며 사실상 은퇴했다.

또래의 다른 여배우들이 각종 구설수에 오르던 것과 비교될 만큼 결혼 후 아주 평탄하게 살았다. 1993년 남편과 사별했고 현재 백상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트로이카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그녀의 아들 장중호 씨가 2003년 배우 명세빈과 결혼한다고 발표했으나 얼마 안 지나 파혼했다.

2세대 트로이카는 19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이다.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만큼 수많은 미녀 배우들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딱히 트로이카라고 할 만큼 압축된 라이벌은 없었다.

요즘 '태혜지'라는 용어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더욱더 수많은 미녀 연예인들이 맹활약 중이다. 배우도 그렇지만 걸 그룹들이 워낙 많고, 그녀들의 미모가 워낙 돋보이다 보니 딱히 3명 정도로 좁힐 만한 규모를 훨씬 뛰어넘기에 트로이카라는 용어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런 것을 보면 다윈의 진화론이 매우 믿음직해 보인다.

요즘 한국 영화에서 음악 감독이나 작곡 분야의 명단을 보면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이 바로 달파란인데 사실 그의 음악은 1980년대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 2집의 베이시스트로 시작되었다. 이후 헤비메탈 밴드 H2O에 합류하지만 보컬리스트 김준원의 마약 사건으로 팀이 공중분해되었다.

보컬리스트 이윤정, 기타리스트 박현준과 함께 삐삐밴드를 결성해 이후 삐삐롱스타킹까지 사실상 팀의 모든 음악을 주도함으로써 팀의 색깔을 완성한 장본인이다. 당시 추구한 장르는 펑크. 1997년 이른바 '삐삐롱스타킹의 MBC 침 뱉기 사건'으로 지상파 방송 출연이 금지된 이후 팀을 해체하고 달파란으로 활동해 왔다.

1980년대를 풍미한 록 뮤지션 중에서 아직까지 활발하게 현역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인물로서 매우 유니크한 음악성을 자랑한다.

좀비 영화는 1968년 개봉된 로메로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의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로메로는 좀비 영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 외 '시체들의 새벽', '시체들의 낮'까지 합친 소위 시체 3부작은 그야말로 호러 영화 혹은 좀비 영화의 교과서로 추앙받고 있다.

존 카펜터, 기예르모 델 토로, 샘 레이미, 쿠엔틴 타란티노, 잭 스나이더, 제임스 건, 조던 필 등 이름만 대면 감탄이 나올 만한 거장들이 입을 모아 로메로에 대한 존경심을 쏟아 낼 정도이니 그가 어느 정도 거물인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다.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차르(황제)이자 핀란드 대공국의 마지막 대공이다. 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을 공격하자 니콜라이 2세는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패착으로, 어떻게 보면 독일을 자극해 제1차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후 러시아는 연전연패했고, 여론은 악화되어 결국 1917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당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니콜라이 2세 가족은 케렌스키 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가게 된다.

1918년 이날 새벽 2시. 볼셰비키의 보안 조직인 체카 요원들이 잠자던 니콜라이 일가를 깨워 이동한 테니 지하실로 내려오라고 지시한다. 요원들은 "반혁명 세력이 당신들을 구출하려다 실패했다."라며 소비에트가 사형을 명령했음을 알리며 총을 꺼냈다.

그러자 니콜라이 2세는 "뭐라고? 잘 안 들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굴곡진 삶을 마감했다. 그게 러시아 제국의 끝이었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외출이 쉽지 않다. 로메로 감독의 시체 3부작을 완주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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