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유는 왜 한국에 입국하려 할까? [유진모 칼럼]
스티브 유는 왜 한국에 입국하려 할까?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국 가수 겸 배우 스티브 승준 유(46)는 왜 그리 기를 쓰고 한국에서 영리 활동을 하려 할까?

시간을 되돌려 보자. 1997년 3월 유는 한국에서 데뷔 앨범을 내고 '가위'와 '사랑해 누나'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그의 폭발적인 인기 상황은 비의 전성기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국내 가요계에는 재미동포 젊은이들을 가수로 데뷔시키는 게 유행이었다. 유는 한국에서 태어나 10대 초반에 이민 간 재미동포로서 이중 국적자였다. 하지만 그는 '건실한 대한민국 청년'의 이미지를 앞세우며 수시로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반드시 군대에 가겠다.'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떠들어 댔다. 그의 '건실한 대한민국 청년' 이미지는 견고한 콘크리트가 되었다.

2002년 1월 입대를 3개월 앞둔 시점에 마침 외국 출장 중이던 그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선택했다. 병역을 피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건실한 청년의 모델에서 하루아침에 비겁하고 치사하며 졸렬한 병역 기피자가 되었고, 출입국 관리법 11조 1항에 따라 대한민국 입국 금지 대상이 되었다.

2015년 그는 영리 활동의 권리까지 보장되는 재외동포 비자(F-4)로 입국하려 했으나 발급을 거부당했다. 그는 그해 주 LA 총영사관을 상대로 첫 번째 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2020년 3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LA 총영사관은 "유의 병역 의무 면탈은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라며 비자 발급을 재차 거부했다. 이에 유는 2020년 10월 LA 총영사관을 상대로 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4월 1심에서 패소했으나 즉각 불복해 항소했고, 결국 지난달 13일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한 자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하면 안 되지만 38세가 넘었다면 국익을 해칠 우려가 없는 한 체류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 2일 주 LA 총영사관은 유가 제기한 한국 입국 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9-3부에 상고장을 낸 것이다. LA 총영사관과 유의 비자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왜 유는 한국에서 활동하려고 그토록 애를 쓸까? 예전에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이 한국인이고, 자식들(2남 2녀)도 한국인이므로 자신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역시 한국인인 2남 2녀에게 조국을 보여 주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핑계를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엄연히 그는 미국인이고, 2남 2녀는 '더욱' 미국인이다. 그의 자식들은 한국을 본 적도 없고, 따라서 한 번쯤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을지언정 한국이 그리워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서 살아온 그들이 한국을 고향이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한국에서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얼토당토아니한 억견이다.

그렇다면 그의 진심은 무엇일까?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유의 속내는 그 자신만 안다. 아내조차도 완벽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덕규의 노래 '가시나무 새'에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가사가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앞뒤 정황으로 몇 가지의 유추는 가능하다.

우선 그의 환경을 보자. 미국 시민권 획득 후 대한민국 입국이 금지되자 그는 한때 청룽(성룡)의 회사 JC그룹 인터내셔널에 적을 두고 활동한 바 있다. 청이 제작하거나 주연한 영화에 그가 얼굴을 내미는 것을 국내 관객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는 JC 소속이 아니라 자신이 설립한 회사 소속이다. JC를 떠난 지 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청의 보살핌을 받을 때보다 상황이 열악하다는 의미이다. 유는 대한민국에서 5년 가까이 톱스타로 활동했다. 당시 꽤 많은 재산을 축적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 입국이 불허된 이후에는 청을 배경으로 2010년~2014년 영화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니 그때 역시 경제적으로 아쉬울 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의 활동은 거의 없다. 물론 미국에서의 움직임은 더욱더 알려진 바 없다. 최소한 청을 배경으로 한 중화권에서의 활동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는 연예인이다. 연예인과 연예 관계자들 중 상당수는 '연예인(계)은 마약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는 한다. 그 매력에 한 번 중독되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연예인이든, 연예 관계자이든 한 번 성공 가도에 진입하고 나면 크게 힘든 육체적 노동력 없이 손쉽게 돈을 벌고, 그만큼 화려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마약이라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상의 스타라면 그 무한한 혜택과 풍요로움을 절대 놓칠 수 없다. 유는 한때 대한민국에서 그 분야의 최정상에서 온갖 호사스러움을 누려 봤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욕심의 동물이다. 가졌을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게 사람의 욕망이다. 그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대한민국에서 돈이라는 돈은 죄다 긁어 모았던 것을 잊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의 장남이 2006년생이다. 즉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제대로 보여 준 것도 거의 없을 듯하다. 2014년까지 영화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할리우드 수준의 눈높이에 익숙한 그의 자식들이 중국 영화에 나온 아버지를 얼마나 위대하게 보아 줄지는 미지수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엄청난 착각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현재 당장 대한민국에서 음반을 발표하면 다시금 예전의 인기를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팬들이 다시 구름처럼 몰려 들어 '유. 승. 준.'을 외치며 광신도처럼 고개를 조아릴 것이라 판단 착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지드래곤 같은 싱어 송 라이터도 아니다.

1990년대 말~2000년 초 그의 팬들은 현재 최소한 30대 중반의 나이는 되었다. 모두 직장 등 삶의 터전에서 치열하게 전쟁 중이다. 그중에는 결혼해 자식을 둔 이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전업주부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20여 년 전처럼 가수 한 명에 열광하는 열정 혹은 철부지 행동에 '올 인'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그의 의식 세계는 아직도 2002년 1월 이전에 머물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짙다. 그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대한민국 입국이 아니라 후설의 '판단중지'를 깨우치는 깨달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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