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의 선택, 유물론 혹은 관념론 [유진모 칼럼]
블랙핑크의 선택, 유물론 혹은 관념론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걸 그룹 블랙핑크는 2016년 YG엔터테인먼트와 7년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8월 8일 데뷔해 전 세계 걸 그룹 중 최정상 자리를 지켜 왔다. 과연 블랙핑크 멤버 지수(28), 제니(27), 로제(260, 리사(26)는 YG와 순조롭게 재계약을 맺고 완전체로 블랙핑크라는 이름을 계속 이어갈까? 아니면 충격적인 변신을 선언할 것인가?

이미 계약 만료 수개월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그들의 재계약 여부에 쏠렸다. 그만큼 블랙핑크는 인기가 높은 걸 그룹이기 때문이다. YG는 그동안 멤버 4명과 재계약 내용에 대해 협의해 왔지만 계약 만료 시점인 8일까지도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멤버들 입장에서는 세부 계약 내용이 상세하게 조율하려 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물론 YG 입장에서도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한 멤버들의 입맛을 맞춰 줌으로써 무리 없이 재계약에 성공하고자 할 것이다.

일단 당분간은 블랙핑크와 YG의 동행이 이어진다. 150만 명을 동원하는 K-팝 걸 그룹 역대 최대 규모 월드 투어인 ‘본 핑크’(BORN PINK)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관계자들은 블랙핑크와 YG 사이의 공식 활동이 종료되는 이달 말쯤 재계약이 최종적으로 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핑크의 음악은 YG 소속 힙합 그룹이었던 원타임의 테디가 주도한다. 그가 설립한 더블랙레이블의 다른 프로듀서들까지 가세해 힙합과 러브 송을 적당히 섞은 음악을 추구한다. 팀 이름처럼 블랙(힙합)과 핑크(러브 송)를 적절하게 믹스한 것.

한국인인 지수와 제니가 작곡 실력을 보인 적이 있다. 두 사람은 가창력도 뛰어나다. 제니는 춤 실력까지 갖췄다. 한국과 뉴질랜드 복수 국적의 로제도 작사 실력을 발휘했다. 태국인 리사는 발군의 춤 실력으로 유명하다. 로제와 리사의 랩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지드래곤만큼의 프로듀싱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즉 테디와 더블랙레이블의 프로듀서들이 음악을 만들고, 양현석이 전체적인 진로를 진두지휘함으로써 블랙핑크의 모든 것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렇다면 블랙핑크 네 명은 가능하면 YG와 재계약하고, 블랙핑크라는 이름을 몇 년 더 이어가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을 보더라도 최고 연장자인 지수가 30대 초반이 될 때까지는 블랙핑크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니의 배우 겸업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블랙핑크의 완전체의 생명력 연장에 무게를 싣게 만든다. 블랙핑크늬 네 멤버는 모두 외모가 출중하다. 그래서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그녀들을 앰배서더로 발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 배우로서 영역을 확장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걸 그룹으로서 최정상의 위치에 있어서 바쁘기 때문에 미처 연기쪽으로 확장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YG는 음반 제작 전문 기획사로 출발하였지만 현재 배우들도 다수 전속되어 있고, 영화, 드라마, 예능 제작에도 손을 대고 있다. 따라서 블랙핑크 멤버들 입장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중소 기획사로 거액을 받고 이적하는 모험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YG와 타협해 이제 슬슬 배우 겸업을 시도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하이브, SM, JYP 등으로의 이적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런데 그 대형 기획사들이 동업자의 아티스트를 빼돌렸다는 비난을 받으며 주가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가면서까지 모험을 시도할 리는 없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잔류할 가능성이 높은 배경이다.

문제는 외국인인 로제와 리사이다. 그중에서도 리사가 가장 변수가 크다. 일단 그녀는 태국에서 국민적 영웅이다. 지금 당장 태국으로 돌아가도 배우, 가수, 방송인, 광고 모델 등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7년 넘게 타국 생활을 했으니 이제 고향이 그리울 때도 됐다.

돈도 벌 만큼 번 데다 태국에서도 향후 그만큼은 벌 수 있다. 쉽게 재계약에 응하지 못하는 배경은 바로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것일 수 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만약 리사가 국내 그 어떤 기획사와 솔로 혹은 새로운 팀으로서 계약한다고 해도 YG에서의 블랙핑크 이상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솔로는 더욱 위험하다.

그렇다면 YG에 잔류하느냐, 고향으로 짐을 싸느냐의 두 가지 길밖에는 없을 듯하다. 일부 매체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희한하게도 국내 걸 그룹들은 '7년 징크스'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첫째, 10대 후반에 데뷔한 걸 그룹이 20대 중반을 넘기면 초창기의 풋풋한 매력이 사라지면서 팀 색깔이 바뀌기 때문이다. 멤버들 역시 사고 방식이 아주 많이 변화하게 된다.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걸 그룹 활동에 회의를 품기 십상인 것.

둘째, 대부분의 걸 그룹들이 자생 능력이 없다. 스스로 작곡, 작사, 프로듀싱할 능력이 없다 보니 소속 기획사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마네킹 역할에 머물러야 함에 따라 걸 그룹 활동에 더 이상의 매력을 못 느끼게 된다. 또 연애도 하고, 많은 친구도 사귐에 따라 인생관이 달라지기도 한다.

셋째, 걸 그룹은 퇴직금도 연금도 없다. 게다가 젊음은 잠깐이다. 그렇기 때문에 7년 이상 장수하는 아이돌 그룹이 드문 것이다.

블랙핑크가 딱 그 시점이다. 데뷔 7년이 지났고, 멤버 모두 2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이제 제2의 도약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 입장은 한국인과 외국인으로서 각각 다르기도 하다.

당장 눈앞에 놓인 수백억 원을 더 번 다음에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 최정상의 위치에 있을 때 당당하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새로운 진로를 선언할 것인가! 유물론이냐, 관념론이냐? 실속인가, 명예인가?

사람들은 수많은 이론과 개념을 만들어 왔는데 그중에서도 플라톤 이래 이항대립이 가장 흔한 인식론의 하나가 되었다. 양지와 음지, 남자와 여자,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등이다. 블랙핑크의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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