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컬처] 부활 김재기, 원티드 서재호 추모 [유진모 칼럼]​
​[히스토리&컬처] 부활 김재기, 원티드 서재호 추모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 칼럼니스트] 2023년 8월 11일 역사속의 오늘. 1960년 배우 정애리, 1979년 배우 안혜경, 1981년 배우 소유진, 1983년 호주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 1989년 래퍼 자메즈, 애프터스쿨 베카, 1991년 레인보우 조현영, 1999년 스트레이 키즈 창빈 등이 태어났다.

1993(1968~)년 가수 김재기, 2004(1981~)년 그룹 원티드 서재호, 2014(1951~)년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 등이 눈을 감았다.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록 밴드 부활의 초대 보컬리스트는 김종서였으나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하고 이후 제2기 보컬리스트로 이승철이 영입된 후인 1986년 데뷔 앨범 'Rock Will Never Die'가 출시된다. 여기서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3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림으로써 부활은 스타덤에 오른다.

그러나 자만심에 가득 찬 김태원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2집은 쫄딱 망하고 이승철은 팀을 떠나 솔로로 독립해 크나큰 성공을 거둔다. 이에 반해 김태원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진다. 그러던 1990년 그는 중학교 시절의 친구로부터 서울 불광동에 뛰어난 보컬리스트가 있다며 김재기를 소개받는다.

하지만 이듬해 김재기는 군에 입대하고 김태원은 다시 방황의 늪에 빠져 감옥에 들어간다. 그때 김재기는 서신을 통해 김태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그렇게 김재기의 전역 후 부활은 제3집 앨범을 녹음하게 된다.

데모 녹음 작업 중이던 1993년 8월 11일 밤 김태원은 김재기의 전화를 받는다. 자신의 승용차가 불법 주차로 견인되었다며 과태로 3만 4000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김태원은 다음날 전해 줄 것을 약속하고 잠을 청했는게 그게 마지막이었다. 김재기는 지인으로부터 돈을 구해 차를 찾은 뒤 약속된 공연을 위해 경기도 파주로 향하다 서울 홍제동 고가도로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침범한 건너편 차와 충돌해 즉사한 것.

생전에 김재기는 동생 김재희에게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내 자리를 대신해 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김태원은 고인의 아버지로부터 장례식장에서 김재희를 소개받아 김재기 대신 보컬리스트로 기용하기로 했고, 음반은 이미 김재기가 가녹음한 상태의 '사랑할수록'을 그대로 담아 출시하게 된다.

이 음반은 부활 앨범 중 가장 많은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고인의 뛰어난 재능이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스러진 데 대한 안타까움을 주었다.

김재기가 눈을 감은 그날 이후 11년. R&B 그룹 원티드의 멤버 서재호는 부산 해운대에서 공연을 마친 후 승합차로 다음 공연지인 강원도 강릉 경포대로 이동하던 중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 인근에서 트럭을 추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했다. 향년 22살.

부활에게는 '별'이라는 곡이 있었다. 김재기는 이 곡을 녹음하기 직전 사망했다. 한참 뒤 이 곡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OST로 선정되었고, 서재호가 부를 예정이었는데 역시 녹음 직전, 그것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휘성이 정규 3집에서 서재호를 추모하기 위해 'Dear my friend'라는 곡을 실었는데 여기에 원티드 멤버 하동균과, 서재호 사망 후 원티드에 합류하는 이정이 피처링했다.

1995년 이날 국민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변경되었으며, 가수 고 김광석이 국내 최초로 1000회 공연을 달성했다. 참고로 국민학교 이전의 명칭은 소학교였다. 김광석은 국내 가요계에서 듀스의 김성재와 함께 미스터리한 대표적인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가수로 손꼽힌다.

듀스 해체 후 솔로 데뷔곡 '말하자면'으로 지상파 음악 방송에 컴백한 김성재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폭주하는 음반 주문량에 그날 밤 소속사 대표 및 매니저 등과 함께 호텔에서 조촐한 자축 파티를 연다. 다음날 아침 8시부터 주요 언론사와 줄줄이 인터뷰가 잡혀 있었기에 술자리를 일찍 끝냈지만 다음날 새벽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당시 그의 방에 함께 있었던 연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고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묻힌다.

김광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 애주가였던 그는 사망 당일 저녁 공연 관계자와 만나 조촐하게 소주를 마시면서 공연 내용에 대해 협의한 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고 기분 좋게 귀가했다. 그러나 다음날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웬일인지 가족들은 부검도 하지 않고 서둘러 화장했다.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그들의 팬들은 물론 거의 모든 관계자들은 타살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물론 그렇게 믿는 근거 역시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하다. 다만 법과 정황이 진실과 정의의 편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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