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컬처] 빅토르 초이, 석연치 않은 죽음 [유진모 칼럼]
[히스토리&컬처] 빅토르 초이, 석연치 않은 죽음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 칼럼니스트] 2023년 8월 15일. 1769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926년 시인 박인환, 1945년 배우 선우용여, 1946년 만화가 이상무, 작가 이외수, 1964년 가수 조정현, 1968년 개그우먼 이영자, 배우 박철, 1972년 미국 배우 벤 애플렉, 1974년 배우 김철기, 개그맨 한상규, 1975년 배우 민준현, 1980년 배우 백보람, 1981년 배우 송지효, 개그맨 박성광, 배우 이상윤, 1986년 배우 황선희, 1990년 미국 배우 제니퍼 로렌스 등이 태어났다.

1945년 일본 제국이 연합군에 패배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었다. 대한 제국은 35년 동안의 일제 강점기를 끝내고 광복을 맞이했다. 만주 괴뢰국이 해산되면서 만주는 소련의 손에 넘어갔다.

대한민국은 여운형이 설립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총독부와 교섭해 행정과 치안의 권리를 이앙받으며 본격적으로 정부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광복절 기념 행사가 시작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중앙청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60년 콩고 공화국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1971년 바레인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동포 문세광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저격하였지만 미수에 그치고,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다.

1990년 소련에서 국민 가수 빅토르 초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8월 15일은 전 세계적으로 정말 많은 일이 발생했고, 의미가 깊은 날이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광복절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 낸 해방이 아니기에 주변 열강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남북통일이 될 수 있을지, 된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면 영원히 한 민족 두 나라로 굳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분명한 것은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전 세계 대중문화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이다. 이른바 K-컬처가 세계의 문화, 생활, 취미, 취향, 유흥, 여가 등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북측에도 K-팝, K-드라마 등 K-컬처 팬들은 많을 것이다. 그것은 한때 적대국이었던 러시아와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념과 문화와 국력을 넘어 한국의 문화는 지구촌의 대세로서 선두를 내달린다. 그것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주변 열강들의 침략을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주권과 자유, 그리고 국격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존심의 유지 속에 우리의 독특한 문화를 이어 나가려 애썼고, 그만큼의 독특하고 자랑스러운 문화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 작은 영토와 적은 인구로 전 세계의 문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빅토르 초이는 소련의 존 레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션이다. 또한 이름에서 보듯 대한민국 최 씨의 피가 흐른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자부심을 선사한다.

1962년 6월 21일 고려인 엔지니어 로베르트 초이(최동열)와 체육 교사 바싫리예브나 구세바의 사이에서 레닌그라드(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KGB에서 소령까지 진급한 할아버지 막심으로부터 동양 철학을 배웠고, 이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시를 쓰는 등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 사진에서 보듯 친가 쪽을 닮았는데 키는 187cm로 외가의 피를 물려 받은 듯하다. 당시 소련에서 미국과 영국의 록 음악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빅토르는 로커가 될 운명이었던 듯하다.

레닌그라드의 지척에 있는 핀란드를 통해 서양의 록 음반 해적판을 구입해 즐겨 들었는데 그중에서 비틀스, 특히 존 레논을 좋아했다. 소련은 1960년대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록 밴드들이 활동했는데 빅토르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보일러공으로 일하며 여러 록 밴드를 거친 끝에 드디어 키노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1982년 속칭 '빽판' 데뷔 앨범을 만들어 암시장에 유통시킨다.

그리고 빅토르는 소련 당국에게 제대로 '찍힌다'. 여기에 담긴 '엘렉트리치카'라는 곡의 가사가 전체주의를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곡은 공연 금지된다.

이후 널리 알려졌다시피 1988년 발표한 다섯번 째 스튜디오 앨범 '혈액형'의 '혈액형'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된다.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그리고 2년 후 빅토르는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비록 빅토르는 28살이라는 한창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소련 및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외친 전쟁 반대와 전체주의 반대의 메시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그의 열악한 무덤에는 아직도 팬들의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희망이었으니까.

전체주의의 반대가 개인주의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지나치게 이기적이어서 타인의 피해를 무시해 가면서까지 개인의 이익과 안위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전체주의만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편리함과 자유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절대 다수의 최대의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근접할 것이다.

빅토르 초이가 외친 것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본래 의도와 다른, 독재적 공산주의를 추구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숭고한 역사 철학을 왜곡한 러시아의 독재적 전체주의는 결국 그들이 그토록 비난하고 배척해 온, 기득권을 쥔 자본주의자들의 자본의 논리만 굳건하게 무장시켜 주었다.

꼭 총과 대포를 쏘아야만 전쟁이 아니다. 경제력으로 약소국의 숨통을 조이고, 종교적 힘으로 역시 약소국에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 역시 총성 없는 침략이다. 돈보다, 종교보다 앞서야 할 것은 개개인의 자유이고, 인류의 평화이다. 마르크스가 외친 유물론은 전체주의적인 유물론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유물론이었다. 빅토르 초이는 음악적으로도 뛰어났지만 당시 서슬 퍼렇던 소련의 권력에 맞선 저항 정신으로 보여 준 진정한 용기로도 값어치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난세의 영웅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