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컬처] 김진아-임성민, 20세기 섹시 아이콘의 요절 [유진모 칼럼]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스틸.
[히스토리&컬처] 김진아-임성민, 20세기 섹시 아이콘의 요절 [유진모 칼럼]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스틸.

[미디어파인=유진모 칼럼니스트] 2023년 8월 20일. 1630년 '하멜 표류기'의 저자 네덜란드 동인도 주식회사 선원 핸드릭 하멜, 1910년 시인 이상, 1948년 영국 록 밴드 레드 제플린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 1951년 배우 한혜숙, 1959년 배우 김학철, 1974년 비비 출신 가수 채소연, 1979년 방송인 하하, 1980년 배우 황금희, 1983년 미국 배우 앤드류 가필드, 1985년 배우 이기용, 1994 애프터스쿨 출신 배우 이가은, 1998년 야구 선수 이정후, 2001년 트레저 아사히 등이 태어났다.

1995(1956~)년 배우 임성민, 2014(1963~)년 배우 김진아 등이 눈을 감았다.

1980년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섹스 심벌은 '변강쇠'의 이대근이었다. 그의 이미지는 강한 '강한 정력'이었다면 후배 배우 임성근은 '잘생겨서 섹시함'이었다. 서구적인 외모와 달리 충청남도 예산군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숭실고 시절 육상 선수로 활동한 그는 성인이 되었을 때 180cm-77kg의, 당시로서는 매우 큰 축에 속했었다.

1977년 TBC(현 KBS2)의 18기 공채 탤런트로 합격해 당시 멜로의 대명사였던 노주현과 한진희의 바통을 이어받을 차세대 멜로 프린스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군 제대 후인 1981년 TBC가 KBS로 통폐합된 뒤여서 별로 빛을 못 보다가 1983년 이황림 감독의 영화 '달빛 멜로디'를 계기로 충무로에 입성한 뒤 이듬해 한 해 동안 '무릎과 무릎 사이', '탄드라의 불', '바람난 도시' 등 무려 4편의 에로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맞는다.

이렇듯 에로 영화로 성공한 그이지만 연기자로서 인정받고자 남다른 노력을 쏟아 1986년 '장사의 꿈'으로 백상예술대상 남자신인연기상을, 1991년 '사의 찬미'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각각 수상하기도 했다. '사의 찬미'는 그의 시그니처 영화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안방극장과 스크린 양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간 건강 악화에 발목이 잡혔다. 1990년에 만성 간염 판정을 받았지만 당시 최고 전성기였기에 무리해서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1993년 MBC 드라마 '폭풍의 계절' 출연 중 간 질환으로 쓰러진 이후 촬영 중 쓰러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다가 결국 이날 39살이라는 한창 나이에 눈을 감았다.

1981년 비행기 승무원 출신 일본인과 결혼했다 3년 만에 이혼했다. 1983년 낳은 외동딸은 그가 키웠다.

그와 이름이 같은 1973년생 배우가 있었다. 그 역시 2016년 6월 26일 4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진규는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보다 선배이면서 인기도 더 높았던, 1960년대 영화계의 슈퍼스타였다. 역시 영화배우인 김보애와 결혼해 낳은 딸이 바로 김진아이다. 김진아는 1983년 영화 '다른 시간 다른 장소'로 데뷔해 서구적인 외모와 까무잡잡한 피부로 당대 최고의 섹시 여배우로 명성을 날렸다.

대표작이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과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인데 그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2000년 미국인 케빈 오제이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귀화해 아들 매튜 오제이와 하와이에서 거주했다. 어쩌면 김진아보다 '김진규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그녀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51살 생일을 2달 앞둔 오늘 하와이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병인 암으로 눈을 감았다. 김보애는 김진아가 사망한 지 3년 뒤에 미국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진아의 남동생은 배우 김진근, 이모는 배우 김보옥, 이모부는 배우 이덕화, 이종사촌 제부는 개그맨 최병서이니 그야말로 연예인 집안이다.

로버트 플랜트는 록 보컬리스트들의 교과서와 같은 샤우팅 창법의 모델 중의 모델이다. 김종서와 김종국이 이른바 '모기 목소리'로 개그 프로 등에서 놀림을 받고는 하는데 그들의 롤 모델이자 보컬 스승이 바로 로버트 플랜트였다. 그들은 플랜트를 들으면서 트레이닝을 했던 것. 레드 제플린의 팬들은 잘 알겠지만 플랜트의 톤 역시 굵기보다는 가늘다.

하지만 특유의 샤우팅 창법으로 매우 강렬한 보컬을 만들어 낸다. 미국과 영국의 록 역사를 통틀어 뛰어난 보컬리스트를 거론할 때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불세출의 보컬리스트이다.

레드 제플린은 플랜트를 비롯해 지미 페이지(기타), 존 폴 존스(베이스), 존 보냄(드럼) 등 전 멤버가 각 분야의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3대 록 기타리스트로 지미 헨드릭스, 제프 벡, 에릭 클랩튼을 손꼽는다. 그런런데 헨드릭스가 27살로 요절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지미 페이지를 올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3대 록 드러머는 누구일까? 역시 취향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롤링 스톤스의 찰리 와츠, 비틀스의 링고 스타, 그리고 더 후의 키스 문이다. 두 번째는 블라인드 페이스의 진저 베이커, 키스 문, 그리고 존 보냄이다.

록의 역사에서 헤비 메틀 혹은 하드록 분야에서 레드 제플린의 존재는 단연 정상급이다. 제플린이 인기 절정이던 1980년 9월 25일 보냄은 과음 후 잠자다 구토 중 질식사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상업적인 팀들은 새 드러머를 구해 팀을 이어간다. 제플린 정도면 세계 최정상급 드러머를 영입할 수 있다. 그러나 세 멤버는 "존 보냄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없다."라며 팀 해체를 선언했다.

제플린의 모든 음반, 모든 싱글들이 명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을 하고자 한다면 비틀스 다음으로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