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오서윤 기자] 『한밤의 지도』는 프롤로그, 1장 이스탄불, 2장 아테네, 3장 알제, 4장 테헤란 그리고 에필로그로 된 173쪽의 아랍어 수필집이다. 계간지 아시아에 2008년 여름호부터 4회에 걸쳐 번역 연재되었고, 2015년 겨울 실천문학에서 출간되었다. 『한 밤의 지도』의 주인공은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는 1인칭 화자 ‘나’이고 작가 자신이다. ‘그랑바자르의 그림자에서’라는 부제가 있는 이스탄불편에서 ‘나’는 이스탄불을 처음 방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땅은 그 어떤 곳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소감으로 ‘이슬람 제국’이라는 아랍세계와 터키의 공통점을 건드린다.

그랑 바자르, 보스푸루스 해변, 톱카피 궁전, 성 소피야 사원, 술탄 아흐마드 사원, 갈라타 탑 등으로 이어지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운 여행자의 그것이다. ‘나’는 이스탄불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서툰 터키어를 사용했으나 실패한다. 터키는 백년도 훨씬 전부터 아랍어 문자 대신 로마어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나’의 독백은 터키에게 이슬람 제국의 영광은 과거형이고 현실은 로마자로 대변되는 서구를 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터키는 오스만 제국과 이슬람에 뿌리를 두었지만 현대 유럽국가의 일원이 되고픈 정체성을 보인다. 과거와 현실의 모순과 공존이라는 욕망은『한밤의 지도』전체를 꿰뚫는 키워드이다.

『한밤의 지도』에서 시장은 카페와 더불어 중요 장소이다. 물론 그의 여행지가 대부분 시장과 카페 문화가 발달한 장소라는 것이 그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시장은 지역의 중심지이다. 상거래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시장에는 있다. 결혼이나 정치 같은 삶의 바탕이 되는 곳. 소통과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고대 아랍 세계에도 시장에 사람들이 모이면 그곳에서 이야기가 문학으로 정체성을 획득했고 높은 건물에 비단 걸개를 걸고 금물로 시를 썼다. 지붕 아래의 바자르, 아주 오래 된 통로에 펼쳐진 미로와 같은 상점들, 금 세공품으로 뒤덮인 길, 카펫 골목, 수공 그림이 있는 세라믹 장식품, 동판, 마법과 같은 선물들, 추억을 담은 기념품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천년도 더된 향이 독자의 감각을 깨운다.

『한밤의 지도』에는 고대 도시를 여행하는‘나’가 있다. 바다, 날씨, 낯선 곳을 보고 느끼는 ‘나’의 정취가 가볍게 느껴질 즈음 이스탄불, 아테네, 알제, 테헤란의 역사가 개입한다. 게다가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품이 순간 삽입되고 여행은 철학적 수행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주변 서적이나 독립된 부록이 필요할 지경이다. 그래도 ‘나’가 여행한 도시들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물론 『한밤의 지도』를 읽고 나서라면 그 매력은 배가 될 것이다.

알리 바드르는 여행을 이렇게 정의한다.
여행은 여러 도시의 지도 위에서 한 낮의 기쁨을 찾고 불분명한 경험 중에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것이면 무엇이든 영향을 주는 장소를 찾는 것이다. 여행은 근심이고, 떠나고 돌아오는 헤어짐이고, 물화를 위해 노래하는 시인으로 변화하는 차가운 대지이고 연속, 집중, 과밀 등을 잘라버리고 여러 형상으로 파열하는 도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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