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은 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까? [유진모 칼럼]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l승인2016.05.17l수정2016.05.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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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곡성 '스틸 사진'

[유진모의 테마토크] 11일 ‘전야 개봉’이란 변칙으로 뚜껑을 연 영화 ‘곡성’(나홍진 감독,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배급)이 17만376명의 관객(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동원했다고 집계됐다. 각 매체들은 이날 8만580명 동원에 그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고 호들갑을 떤다. 지난달 27일 개봉돼 누적 관객 수 764만여 명으로 이미 볼 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본 영화를 개봉일 이겼다고 설레발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빌 워’와 달리 ‘곡성’을 관람한 사람들의 평가가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잔인하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호평보단 혹평이 압도적이다. 개봉 전 언론시사회 후 각 매체와 평론가들이 호평을 넘어 극찬을 쏟아내던 모습과는 정반대다.

어느 정도 예술성이 요구되는 영화는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갈리기 마련이지만 ‘전문가’는 좀 다르다. 대체로 평론가는 예술성과 고유의 창작능력에 후한 점수를 준다. 보편타당한 대중은 오로지 자신의 입맛에 집중한다. 누가 뭐라 하건 개인의 취향이 중요하다. 기자는 삼각 트라이앵글이다. 평론가의 예술을 알아보는 시각에 비교적 가깝게 접근하고 싶은 지적인 허영심을 숨기려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나와바리’(영역, 출입처)의 구도 안에서 산업과 기자정신 사이의 적당한 양다리 걸치기를 안중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영화 곡성 '스틸 사진'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나홍진 감독은 장편데뷔작 ‘추격자’의 호평과 흥행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역시 직접 쓰고 연출한 ‘황해’는 전작만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시나리오를 주무른 ‘곡성’에 대해서 업계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언론 및 배급시사회 후 업계의 찬사가 이어지게 됐다. 그 배경은 ‘추격자’가 감독 데뷔작치곤 꽤 뚝심이 강했으나 ‘황해’가 그만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아직 나 감독에게선 나올 게 많다’는 기대감을 키우게 됐고, 그에 부응하듯 나 감독은 ‘곡성’을 한국 상업영화의 세계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꽤 메시지가 담긴 컬트로 완성했기 때문에 찬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평론가나 기자나 업계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대중에게 억지로 주입한다거나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선 곤란하다. 외국인에게 홍어삼합이 최상의 진미라고 강권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다수 관객은 ‘재미’로 극장을 찾는다. 팝콘무비라는 말이 있듯 관객은 2시간을 즐기기 위해 재미를 찾아 영화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소수는 특정 배우나 감독에 따라 선택하기도 하지만 결국 결론은 재미다. 그러나 ‘곡성’은 군데군데 삽입한 코믹코드 일부를 제외하면 재미를 찾기 힘든 영화다. 조금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평론가들이 극찬하면 십중팔구는 졸리거나 불편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뭔지 잘 이해가 안 될 영화다. ‘곡성’이 그렇다. 전남 곡성의 한 조용한 마을에 밖으로부터 한 일본 노인 외지인(이름도 없다)이 들어와 산 속에 홀로 살면서부터 마을에 괴이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한두 명씩 몸에 원인모를 피부병이 생기더니 그들이 하나같이 잔인한 존속살해를 저질러 마을을 공포로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다.

▲ 영화 곡성 '스틸 사진'

파출소의 ‘넘버 투’ 종구(곽도원)는 경찰이지만 겁이 많고 소심한 중년남성이다. 아직도 성욕을 자극하는 아내와, 맹랑한 초등학생 딸 효진(김환희), 그리고 장모를 모시고 평범하게 살고 있던 그는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중 웬 정체불명의 처녀 무명(역시 이름이 없다. 천우희)을 만나 그녀가 사건의 목격자임을 알게 되고 다수의 증언에 의해 외지인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수사를 하던 중 효진에게서 피부병이 발견되고 누가 봐도 귀신이 들린 모습으로 변모해가자 장모가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을 부른다. 일광은 외지인이 아주 강력한 귀신이라며 큰 굿판을 펼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효진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종구의 제지에 의해 굿을 매조지지 못한다.

마을을 얼쩡거리던 일광은 무명을 만나자마자 엄청난 괴로움에 한없는 구토를 한 뒤 황급하게 도망가서는 종구에게 자신이 점을 잘못 봤다며 귀신은 외지인이 아니라 무명이라고 번복한다. 효진은 점점 극을 향해 미쳐가며 곧 숨이 멎을 듯한데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종구는 혼란스럽고 두려우며 숨이 막혀온다. 그리고 무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자신이 귀신을 잡을 덫을 쳐놨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주문하고, 일광은 그녀에게서 도망치라고 다그친다. 영화는 오컬트와 좀비 등에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뒤섞은 호러 장르다. 다수의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그런 장르의 영화들이 다 그렇듯 영화는 시종일관 불편하고 불친절하다. 소재는 믿음 혹은 의심인데 그런 단순한 걸 말하기 위해 이토록 장황하고 기괴하며 섬뜩한 스토리와 그림을 만들어야 했는지 관객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 역시 예고된 결과다.

▲ 영화 곡성 '스틸 사진'

영화는 인트로에 부활한 예수가 놀라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문하는 누가복음 24장 37∼39절을 도입했다. 종구는 “왜 하필 내 딸이냐”고 묻고, 일광은 “외지인을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종구가 부제를 통해 연로한 사제를 만나 엑소시즘을 부탁했을 때 사제는 무책임하게 “의사를 믿고 그에게 맡기라”며 회피한다. 종교인들이 불편할 대목이다. 오컬트 무비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기록된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1973)는 2년 뒤에야 국내에서 개봉됐지만 북미흥행과는 달랐다. 더불어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 유명한 린다 블레어의 스파이더 워킹 장면과 십자가로 자위하는 장면 등을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객들의 구토를 유발한 바 있다. 컬트의 고전인 ‘록키 호러 픽처 쇼’ 역시 내내 불편하긴 하지만 여기엔 음악이 있다. 즉 유쾌한 문화적 정서가 살아있기 때문에 장기상영되면서 컬트마니아들의 교과서로 기록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곡성’은 애초부터 그런 유머나 풍자나 위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유와 은유 그리고 우회적 비판은 있을망정 친절한 설명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외지인은 초반에 훈도시 바람으로 고라니를 생식한다. 후반부 일광은 종구 앞에서 하의를 갈아입는데 역시 훈도시 차림이다. 나 감독의 화법은 이런 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관객이 웃을 수 있을까?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나 감독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영화에서 ‘시빌 워’와 유사한 재미를 찾고자 했던 관객들의 착각에 있다.

▲ 영화 곡성 '스틸 사진'

몇 가지 옥에 티가 지적된다.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생뚱맞다는 지적이 낡은 트럭 운전석에 내내 부패한 시체로 있던 군복 사나이가 외지인의 주문에 의해 좀비로 부활했다 종구 일행에게 맞아 죽는 시퀀스다. 러닝타임이 무려 156분이다. 나 감독으로선 필름을 잘라내는 게 자신의 살을 발라내는 고통이었을 것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 잘려나간 필름 안에 이 좀비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무명은 첫 등장 때 역시 군복을 입고 있다. 용의자는 정체불명의 일본 노인과 순진해보이지만 한편으론 살짝 맛이 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토종 처녀다. 그런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름이 없다. 혹시 그냥 일본이고, 그냥 조선이지 않을까?

피해자는 많은데 가해자는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 혹은 그 가족들의 마음속은 의심으로 가득 찼다. 한국의 아픈 역사와 청산되지 않은 과거, 그리고 극소수의 부익부와 대다수의 빈익빈이 엿보이지 않는가? 의지가 약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불편한 걸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려하기 마련이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불편하다고 그냥 잊을 것인가?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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