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철학] 비비, 공연 중 여성 팬에 키스 '서비스일까?' [유진모 칼럼]
[무비&철학] 비비, 공연 중 여성 팬에 키스 '서비스일까?'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 칼럼니스트] 지난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화란'의 여주인공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가수 겸 배우 비비가 공연 중 한 여성 팬과 진한 입맞춤을 나눠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일 비비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리스펙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공연 도중 객석으로 내려와 팬들의 뜨거운 함성을 몸소 느끼던 중 갑자기 한 여성 팬에게 키스했다. 이 장면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런 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즈볼에서 열린 'HITC' 페스티벌에서도 한 여성 팬에게 키스했다. 2022년 5월 열린 고려대학교 축제에서는 한 남성 팬과 뜨거운 장면을 연출했다. 비비는 무대에 올라온 한 남성 팬의 몸을 쓰다듬었고, 그에게 자신의 허리를 만지게 했다. 노래를 마친 후에는 남성 볼에 입을 맞춤기도.

이에 대해 다수의 매체는 '팬 서비스'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이 '서비스'를 받은 팬 중에 고소한다거나 항의 표시를 한 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팬 서비스가 맞는 것일까?

보편타당성과 평균에 따른다면 팬 서비스가 맞다. 첫째, 남자이든, 여자이든 자신만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기 마련이다. 열렬하게 좋아하지 않더라도 유명 연예인이 스킨십을 해 주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호강이라고 여기면 모를까.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동성 연예인에게 호감을 품을 수 있다. 에로스와 아가페를 떠나 그냥 좋아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동성의 유명 연예인의 어떤 성격이나 성향 등에 매료되어 술 한잔하고 싶다든가, 차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입맞춤 등 에로틱한 행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비는 여자이다. 그녀는 주로 여성 팬과 입맞춤했다. 그게 단순한 뽀뽀였는지, 딥 키스였는지는 당사자들만 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성적 취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이다. 만약 비비의 입맞춤 서비스를 받은 여성들이 모두 두 번째와 세 번째였다면 대체적으로 '서비스'가 맞을 것이다. 비비는 오는 27일 25살이 되는 한창때의 미인이다.

동성애자이든, 양성애자이든 그런 '행운'을 마다할 리 없다. 그런데 이성애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일지라도 자신의 성적 취향이 이성애인데 자신에게 허락이나 양해도 없이 동성이 키스를 한다? 게다가 매체들은 '서비스'라는 표현을 쓴다. 천하의 유명 스타가 키스해 주었으니 '성은이 망극하오이다.'라고 감동해야 당연하다는 뜻인가?

2022년의 고려대 축제에서 비비는 무대에 올라온 한 남성의 몸을 쓰다듬고, 그에게 자신의 허리를 만지게 했으며, 그의 볼에 입맞춤했다. 아무리 축제라고 하지만 무대 위에 난입한 행위로 보아 보편타당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비의 행동에 부화뇌동했고,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성애자이고 성은에 감동한 듯하다.

[무비&철학] 비비, 공연 중 여성 팬에 키스 '서비스일까?' [유진모 칼럼]
[무비&철학] 비비, 공연 중 여성 팬에 키스 '서비스일까?' [유진모 칼럼]

그런데 '만약'이라는 조건을 달아 보자. 만약 그가 동성애자였다면 어땠을까? 게다가 그에게 동성의 연인이 있었다면 그 연인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비비의 행동은 사랑하는 두 연인에게 불화의 빌미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비비의 행위는 두 가지 관점에서의 사유와 탐구가 필요한 듯하다. 첫째, 성적 취향이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인간은 원래 두 사람이 한몸인 구 형태였는데 워낙 힘이 좋아 신들을 공격하자 분노한 제우스가 반으로 갈랐다고 한다. 그래서 평생 자신의 짝을 찾아 다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런 구형의 인간의 성은 어떠했을까? 선입견은 금물이다. 자웅 동체뿐만 아니라 남남, 여여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능력이 있는 남자일수록 소년 연인을 공개적으로 두었던 데서 플라톤이 이야기한 구체형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면에 비춰 볼 때 비비의 행위는 매우 진보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 다만 편린적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 보편타당의 원리에는 위배된다.

둘째는 비뚤어진 우월 의식에 대한 의심이다. 요즘 유명 연예인들이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연예인병'을 자아비판하는 일이 잦다. 연예인병이 옳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없다. 이 연예인병은 표준어는 아니다. 우월 의식, 우월감의 변형적 형태이다. 그런 행동을 한 비비의 의식의 저변에 연예인병 즉 비뚤어진 우월 의식이 있지 않았는지 스스로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연예인병은 또 다른 표현으로 '과신의 오류', '기만적 우월감'이라고도 한다. 철저한 인지 편향 중의 하나이다. '나는 저 높은 곳에 있으니 저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사랑(혹은 동정)을 베풀면 틀림없이 수해자는 감격하고, 나에게 감동할 것이다.'라는 처참한 착각인 것이다.

1890년대 활약한 미국의 의사 겸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처음으로 자아존중감(self-esteem)이라는 용어를 내놓았다. 비록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믿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타인에게, 또 사회에서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다.

자존심이 남에게 굽히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마음이라면 자아존중감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능력과 성격 등에 대한 긍정 마인드를 말한다. 우월감이냐, 자아존중감이냐? 그에 대한 판단 역시 자신의 몫이다. 아니면 후설의 '판단중지'를 상기하면서 현상학 공부라도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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