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두 얼굴, 그리고 덧나는 청춘들 [차나연 칼럼]

차나연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6.07.12l수정2019.02.13 14:2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미디어파인=차나연의 ‘새로 쓰기’]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로 손꼽힌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이제 스테디셀러 코너로 넘어가 꾸준한 판매수를 올리고 있다. 이는 자기계발서 분야의 유래 없는 호황을 불렀다. 젊은이들의 상처를 다독이며 ‘힐링’ 열풍을 가지고 왔다. 88만원 세대, 삼포시대, 끝없는 취업난과 스펙 경쟁에 지친 청춘들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로써 청춘들은 자신의 아픔을 공론화할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걱정과 고난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우리 사회는 그들을 포용하고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당히 ‘아프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힐링 열풍이 그들에게 발언권을 준 셈이다.

힐링의 두 얼굴
그러나 힐링은 이제 상업 키워드로 자리 잡고 말았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메마른 마케터들에게 힐링은 단비와 같았다. 방송사는 ‘힐링캠프’와 ‘꽃보다 할배’등 힐링 프로그램을 자처했고, 여행업체에서는 패키지다 힐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서점에는 에세이가 때 아닌 호황이었다. 이는 십여 년 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웰빙’ 열풍과 매우 닮아있다. 웰빙은 좋은 먹거리, 좋은 생활습관을 추구해 높은 질의 삶을 얻고자 한 유행문화였다. 웰빙이라는 이름 아래 숱한 상품이 쏟아져 나왔던 것을 생각해보자. 바른 생활 습관을 선도하려했던 웰빙은 상업적으로 이용되며 그 취지가 변질되고 말았다. 막바지에 다다른 듯한 2015년의 힐링 문화는 웰빙과 같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힐링이라는 마취제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힐링은 허상임이 드러난다. 힐링에게는 힘이 없다. 어떤 구체적 해결방안도 제시하지 못한다. 끝없는 위로만을 보내며 우리 청춘을 같은 자리에 유예시킨다. 스스로의 연민에 빠진 청춘들은 현실에 대한 인식이 마비된다. 나는 ‘아프니까’라고. 이것이 힐링의 가장 큰 맹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는 성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하고, 일의 급여보다 일의 즐거움을 따지라고 조언한다. 이런 말은 현실적인 조언이 되지 못하고 청춘들의 이상향만을 높이는 꼴이 되었다. 아픔이 청춘에게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반면, 정작 청춘에게 고통을 심어주는 사회에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에게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을 따로 있다’라고 위로의 말을 던지지만, 대학의 기형적이 등록금 정책과 그에 따른 어마어마한 학자금 대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힐링이 사회적 키워드가 된 이유는 문화의 소비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에 고통받아 위로가 필요했던 청춘과, 때맞추어 출간된 이 책은 시너지를 발휘했다. 끊임없이 채찍질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위로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자기계발서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 대리만족감과 열정의 고양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마비되어 있다. 상처는 덧나기 시작한다.

덧나는 청춘들
힐링 열풍에 매료된 사회는 젊음에게 아픔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실패를 거듭해 끝내 성공을 거머쥐는 젊은이를 기업의 이상향으로 삼았다. 시행착오를 증명해보이라 말하고, 그 끝은 반드시 성공인 연극을 요구한다. 대외활동, 봉사활동, 창업 등 스펙으로 수치화된 열정들을 바란다. 악덕회사들은 열정페이를 운운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은 젊은이가 아닌 기득권층의 대사가 되었다. 사회는 청춘이 ‘아픈 것’임을 인지한지 오래다. 위로는 거두고 더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도전과 열정은 청춘이 응당 치러야할 과제가 되고 말았다. 과열된 힐링 열풍에 청춘들의 상처만 덧나고 있다.

과거 웰빙 문화가 실패로 끝난 것은 사람들이 굳이 돈을 지불하여 웰빙을 얻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힐링을 쫓는 사람들도 그것이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 인지하는 듯하다. 힐링은 유럽여행이나 값비싼 마사지 코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고취, 생활습관의 개선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변질되다 못해 부패해버린 단어 ‘힐링’에서 이전의 광채를 발견하긴 어렵다. 힐링의 주요소는 공감과 위로였다. 그러나 무감해진 사회는 젊음에 공감하기 어렵고, 위로를 던지기에는 너무나 무뚝뚝하다. 이제 힐링은 유행에서 벗어나, 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차나연 청춘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미학적 포토갤러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23길 47, 6층 601-609호 (당주동, 미도파광화문빌딩)  |  대표전화 : 070-8286-8802   |  팩스 : 02-6383-0311 ㅣ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42  |  등록일자 : 2015년 1월 20일 ㅣ제호 : 미디어파인 ㅣ 발행인 : 문수호  |  대표이사 : 이창석   |  편집국장 : 김호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창석
Copyright © 2022 미디어파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