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컬처] 여자 친구 때문에 죽은 래퍼 피앤비 락 [유진모 칼럼] 투팍.
[히스토리&컬처] 여자 친구 때문에 죽은 래퍼 피앤비 락 [유진모 칼럼] 투팍.

[미디어파인=유진모 칼럼니스트] 2023년 9월 13일. 1941년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1975년 배우 배정아, 1977년 배우 진선규, 배우 신동미, 1980년 배우 한채영, 1988년 한국계 미국 가수 존박, 레인보우 오승아, 가수 검지, 1989년 개그우먼 박진주, 1999년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연준, 2001년 라이즈 성찬 등이 태어났다.

1592(1533~)년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 1598(1527~)년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 국왕 펠리페 2세, 1872(1804~)년 독일 유물론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1996(1971~)년 미국 래퍼 투팍 샤커, 2022(1930~)년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 미국 래퍼 피앤비 락(1991~) 등이 세상을 떠났다.

1996년 9월 7일 밤 투팍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권투 경기를 관람한 후 승용차를 타고 클럽으로 이동하던 중 길거리에서 다른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괴한들이 쏜 총에 의해 몸에 4발의 총알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13일 사망한다. 미국의 힙합 신에서는 동부와 서부의 래퍼들이 매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중이었다.

투팍은 서부 힙합의 대표 뮤지션이었고, 동부의 대표는 비아이지였다. 당연히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그래서 살해의 몸통이 비아이지라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6개월 후인 1997년 3월 9일 비아이지 역시 시상식에 참석한 후 귀가하던 중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두 사람을 살해한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투팍은 이전에도 총상을 입고 강도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시 강도들은 투팍의 금품을 훔쳤는데 정작 가장 비싼 시계는 건드리지 않았기에 단순 강도가 아닌, 원한에 의한 범행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렇게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래퍼로 손꼽히는 두 스타는 동서 갈등에 의해, 혹은 그들의 인기와 부를 시기한 사람들에 의해 요절하고 말았다.

피앤비 락의 죽음은 더욱 황당했다. 9월 13일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여자 친구와 식사를 하던 중 무장 강도에게 총격을 당한 뒤 목숨을 잃었다. 식당에 도착한 뒤 여자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식당 위치가 태그된 게시물을 올린 게 사건의 단초가 되었다는 게 여러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배경이다. 이를 본 강도들이 피앤비 락의 주얼리를 강탈하려고 나섰다는 것.

일각에서는 여자 친구가 강도들과 짜고 벌인 범행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전혀 근거 없는 가짜 뉴스라는 게 정설이다.

몽테뉴가 남긴 가장 유명한 테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나는 무엇을 아는가?'이다. 신도, 짐승도 아닌 인간의 정체성, 인간은 무엇을 아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에 대한 심오한 질문이다. 그의 유명한 저서 '수상록'은 철학 서적 중 비교적 (매우) 쉬운 편에 속한다. 읽고 나면 저자가 생전에 얼마나 모랄리스트(인간성의 탐구자)로서 고뇌하고 탐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철학을 하는 목적은 죽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자연계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다른 동물이나 사물과 같은 곳으로 끌어내린 뒤 유일한 구원의 길은 자살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사상은 특정 종교에서는 매우 심한 이단이겠지만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일견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로 기록된 게 증거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펠리페 2세는 고대 로마 제국과 대영 제국 사이에서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스페인의 깃발이 나부끼는 곳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낳은, 스페인 최고의 전성기를 구축한 국왕이다. 정확히 스페인 왕국 압스부르고 왕조의 2대 왕인 그는 스페인 제국의 무적 함대 아르마다를 투입해 오스만 제국과의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한 이후 승승장구했다.

포르투갈 왕국과 병합했을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필리핀, 네덜란드, 밀라노 공국, 사르데냐섬, 시칠리아 왕국, 나폴리 왕국, 아프리카 대륙의 남서부, 인도의 서해안, 말라카, 보르네오섬 등을 접수해 대규모 영토를 구축했다. 필리핀의 국명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잦은 전쟁과 개신교 탄압 등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왕비와의 성관계마저 절제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매우 노력을 기울인 왕으로 평가된다.

포이어바흐는 헤라클레이토스-스토아학파-스피노자-셸링-헤겔로 이어지는 범신론 계보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많이 다르기는 하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은 일자이고, 그것이 신으로 귀결되며, 그것이 바로 이항대립의 통일론이다.'라는 식으로 주장한 것은 헤겔에 가깝다. 또 '교만한 금욕주의'를 설파한 것은 니체로 연결된다.

그런데 포이어바흐는 '유신론의 논리적 결론은 범신론이고, 범신론의 논리적 귀결은 무신론이다.'라고 주장했다. 즉 유물론이라는 것. 종교에서는 신이 자신을 모방해 인간을 창조했다고 주장하지만 포이어바흐는 반대로 인간이 인간의 모습에서 착안해 신을 창조했다고 외친다. 따라서 신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범신론이자 유물론이다.

고다르는 누벨바그의 선두 주자로서 프랑스 예술 영화의 대표적 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가지 혁신적인 시도로 영화 혁명가로도 불린다. 당연히 마르크스 신봉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혐오한다. 영화 학도뿐만 아니라 영화 마니아라면 꼭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가 그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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