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즐거우니까 청춘이다! [허필은 칼럼]

허필은 칼럼니스트l승인2016.09.01l수정2016.09.0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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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허필은의 ‘고전으로 고전하기’] 예술적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학점, 스펙, 대외활동, 취직, 봉사활동, 졸업, 아르바이트 등 대학생들이 노력을 기울어야할 영역은 광범위하다. 더욱 괴로운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함이다. 열심히 학점을 관리하고, 대외활동에 매진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졸업하기 위한 준비에 열중하는데다 아르바이트까지 하는데, 스펙은 언제나 남들에 비해 초라하고 따라서 취직은 그림의 떡이다. 취직 활동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점차 늘어날수록 청춘은 암울해져만 간다. 청춘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공허한 울림으로 남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픔, 즉 고통의 무의미함이 청춘의 빛을 바래게 만든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다. 지금 대학생들과 똑같이 느낀 철학자가 있다.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다. 서양 철학에서 반항아 역할을 톡톡히 한 니체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의무와 규율에 종속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것이 학점, 스펙, 취직 등 대학생들이 짊어진 짐은 아니지만, 그 당시 사람들도 나름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갔던 것을 알 수 있다. 니체가 꼽은 대표적인 짐은 종교 및 이성이다.

▲ 서양 철학의 반항아, 프리드리히 니체

서양 철학의 시초인 플라톤 이래로 세계는 ‘본질’과 ‘현상’이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를 취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일상 너머의 뿌리인 본질적인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경험세계인 현상계를 구성하고, 따라서 후자보다 전자가 더욱 중요시된 것은 당연했다. 이것이 중세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나라, 즉 신국(神國)으로, 근대에는 절대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으로 이어졌다. 즉 플라톤이 제시한 ‘본질’의 계보가 근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감각과 쾌락, 즉 ‘현상’적인 것은 경시되었고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니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이 삶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종교의 의무, 이성의 규율이 생산적인 감각, 즐거운 쾌락을 만끽하지 못하게끔 했다는 입장이다.

니체에 의하면 예술적으로 사는 삶이 최고의 삶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짊어진 짐은 그들의 삶을 예술과 동떨어지게 만든다. 니체는 사람들이 종교와 이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감각과 쾌락을 즐겨야한다고 강조한다. 주의해야할 점은 니체가 말하는 감각과 쾌락이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종류의 그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일종의 오해다. 니체가 강조한 감각과 쾌락은 생산적이고 자신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쾌락, 이른바 디오니소스적 쾌락이다. 예를 들어 무분별한 성관계는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쾌락에 그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는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쾌락 중 하나다. 일회적인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소모적이지만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생산적이다. 이러한 쾌락에 도취되는 사람은 보다 발전적인 존재가 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하며 개인의 삶이 발전적이고 고양되어야함을 주장한다. 보다 발전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생산적인 쾌락을 누려야 하고 이는 곧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을 뜻한다. 이 때 비로소 발전적이고 생산적이며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발전된 존재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니체 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힘에의 의지다. 그리고 힘에의 의지를 발현한 인간은 최종적으로 니체가 꿈꾸는 이상적인 인간인 위버멘쉬(Übermensch)로 나아간다.

▲ 삶은 춤추듯 살아가야 한다. 가볍게, 현재의 리듬의 충실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

우리는 왜 학점, 스펙, 대외활동, 취직, 봉사활동, 졸업, 아르바이트 등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가. 억지로 하는 이러한 활동들이 자신의 삶을 발전적이고 생산적이고 행복하게 만드는가. 이것이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관이 반영된 활동들인가. 무거운 짐이 삶을 예술적으로 조각할 수 있는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어느 때고 너희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 그러나 너희는 그에 앞서 원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지금 우리 시대의 청춘은 스스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불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들이 다 하는 무거운 활동들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삶은 행복과는 무관하다.

모든 활동을 포기하고 백수처럼 지내라는 말이 아니다. 무분별한 스펙 쌓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고 앞으로 자신의 진로를 진정 행복한 길로 만들어주는 일을 찾아서 몰두하라는 메시지다. 니체 이래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실현되면서 중심적인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중심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종교와 이성에서 탈피해 감성과 감각, 쾌락이 중요시되었듯이 청춘들에게 중심적인 활동으로 자리 잡은 무분별한 스펙 쌓기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자신이 믿고 따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면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변화를 이끌어낼 개인의 의지다. 청춘들의 삶을 예술로 변화시킬 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즐거우니까 청춘이다!

허필은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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