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커튼콜>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예수는 사마리아인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했다. 그건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가 “자연적인 사물을 초자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정의한 신념으로 이어진다.

영화 ‘커튼콜’(류훈 감독)은 신념에 관한 영화다. 연극을 현실로 바라보는 극단 대표와 초현실로 섬기는 감독과 배우의 얘기다.

민기(장현성)는 대학 때 ‘햄릿’에 심취해 연극에 남다른 꿈을 키웠지만 지금은 프로듀서 철구(박철민)와 함께 콤비를 이뤄 삼류 에로연극을 연출하며 연명하고 있다.

‘여선생의 특별과외’의 여주인공 지연(유지수)은 신문기사를 통해 에로배우임이 유일한 가족인 여고생 딸에게 들통 난 뒤 외톨이가 된다. 극단 대표 조카인 상대배우 석구(서호철)는 연극을 실제로 착각하고 지연에게 사랑과 욕정을 동시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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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의 은사인 진태(전무송)는 40년간 햄릿 역할을 해온 베테랑이지만 이제 치매가 심해 더 이상 무대에 오를 형편이 안 된다.

걸그룹 출신 슬기(채서진)는 대표의 눈에 들어 낙하산으로 극단에 들어온 신예. 대본에 있는 대사만 붕어처럼 외울 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모든 의사표현은 여자 매니저 안경(고보경)의 입을 통해 전한다.

한심한 일에 염증을 느낀 민기는 밤거리를 헤매다 어릴 때 봤던 연극 ‘햄릿’의 환상을 떠올린다. 그렇게 이끌리듯 걸어간 한 극장에서 ‘햄릿의 발견: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 공연’ 포스터를 발견한 뒤 이 무대에 자신만의 ‘햄릿’을 올리기로 결심하고 진태와 배우들을 설득한다.

우여곡절 끝에 ‘햄릿’의 막이 오르지만 지연을 향한 질투심에 눈이 먼 석구의 난동, 치매 증상이 심해진 진태의 엉뚱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 디테일을 고집하다 공연장을 떠난 햄릿 역의 주인공의 돌발행동 등에 의해 대본도 연출도 모두 엉망진창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라는 에로연극은 안 하고 돈도 안 되는 ‘햄릿’을 무대에 올린 데 분기탱천한 대표가 들이닥쳐 민기를 해고하는 최악의 사태에 이른다. 과연 민기와 배우들의 신념은 빛을 볼 수 있을까?

▲ 영화 <커튼콜> 스틸 이미지

2중구조의 극중극 형태로 펼쳐지는 절반 이상은 코미디다. 에로연극 배우 및 스태프들의 난감한 각자의 속사정, ‘햄릿’을 연습하다 대표가 오면 재빨리 에로연기로 전환하는 해프닝 등은 ‘개그 콘서트’보다 웃긴다.

경찰서에 끌려간 철구를 마주한 경찰이 “쉭쉭, 이건 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녀. 이걸 유행시킨 개그맨 맞죠?”라고 묻는다.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서 박철민이 했던 대사다. 이보다 뛰어난 코미디가 많다.

민기가 ‘햄릿’을 한다고 하자 아내는 “내가 에로연극 한다고 뭐라 했어? 그저 세끼 먹고 집세 내고 십일조 낼 정도 벌면 된댔지”라고 크게 반발한 뒤 전화로 이혼을 통보한다.

진태는 40년간 햄릿으로 살아왔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모 한 명이 유일한 식구다. 그는 지금까지 오로지 연극만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소홀한 채 살아왔다. 이제 마지막 무대를 통해 어머니와 소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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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은 딸에게 반말을 듣는 것은 당연지사고 대화조차 나누기 힘들 정도로 무시당하고 산다. 남편도 친구도 없는 그에겐 딸이 유일한 희망인데 그것마저 잃은 채 새까만 후배 배우의 성적인 집착이란 무형의 위협까지 받으니 삶 자체가 짜증이다.​

슬기는 한때 걸그룹으로 반짝했지만 지금은 스포트라이트의 뒤에 선 쇠락한 스타다. 배우로의 전업으로 옛 영화를 되찾고자 예전처럼 철저하게 신비주의로 일관하지만 배우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 그녀의 청춘은 여전히 아프다.

이 군상들은 연극이란 공통분모 아래 모여 신념 혹은 욕망을 근거로 투지를 불태우거나 자존심을 곧추세우지만 사회는 항상 노력에 합리적인 보상을 하지 않는다. 탐욕스럽고 천박스러운 대표에서 보듯 그 반대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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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현상학의 대가인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의 기본이념은 수학적 인식과 심리주의적 경향의 동반이었다. 노에시스가 의식의 작용적 측면을, 노에마는 그 작용의 대상적 측면을 각각 의미한다는 점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는 자웅동체여야 마땅하다.

주인공들은 모두 여러 가지 콤플렉스를 지닌 평범한 노동자들의 치환이다. 암담하고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만8000원의 식대가 많다고 투덜대는 철구의 불평 속에서도 꿋꿋하게 떡볶이를 먹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의식의 작용적 측면을 가치관으로 삼는다.

당연히 대표는 수학적 인식만 앞세운 자본가다. 작용의 대상적 측면, 즉 객석에 몇 명이 앉아있고, 그들이 얼마나 흥분해 다른 손님을 직-병렬로 끌어들이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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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은 곧 존재의 이유다. 관성적으로 벗고 허리를 움직이던 배우들과 그것을 주문하던 민기가 생리적 포만감 뒤에 오는 내면적 허무감 끝에 사색하는 것은 신념의 공허에 대한 카오스다. 그 상실이 야기한 어지럼증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존재의 이유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다.

끝부분에서 당연히 극중극 관객과 극장 관객 모두에게 감동과 더불어 화해의 메시지를 선사하고자 노력하는 게 지나치게 상투적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적 짜임새 속에서 꽤 탄탄한 티켓파워를 보이는 이유는 베테랑 배우건 낯선 배우건 안정된 연기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장현성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부분투자한 이유가 엿보인다.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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