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소년', 청소년물이 아닌 자본주의 장르물 [유진모 칼럼]
'사채소년', 청소년물이 아닌 자본주의 장르물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사채소년'(황동석 감독, 26컴퍼너 제작)은 사채와 소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조합한 대로 아이러니한 이 세상을 학교로 가져왔다.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고교 2년생 강진(유선호)은 부모가 사채를 빌려 쓴 뒤 못 갚고 잠적하자 홀로 산다. 사채업자 랑(윤병희)은 수시로 찾아와 강진을 괴롭힌다.

강진은 학교에서 이른바 '왕따'이다. 특히 부잣집 아들 남영(유인수)을 따르는 일진 패거리들에게 매일 괴롭힘을 당한다. 어느 날 랑이 강진의 집에 왔다 간 뒤 다음 날 학교로 찾아온다. 어제 강진의 집에서 돈 봉투 하나를 흘린 것 같다며 강진을 추궁한다. 강진은 모르쇠로 일관해 위기를 모면한 뒤 귀가해 소파 밑에서 봉투를 발견한다.

다영(강미나)은 중학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 어른들을 대상으로 '조건 만남'에 응한 뒤 호텔에서 남자가 샤워하는 동안 지갑을 털어 도망치는 수법으로 용돈을 벌어 왔다. 어느 날 화장품 가게에서 화장품을 훔치려다 점원에게 들킨다. 그때 강진이 등장해 봉투에서 20만 원을 꺼내 결제해 주며 다영을 구한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 사이. 이를 계기로 더욱 가까워진다. 랑이 학교에서 강진을 괴롭히는 것을 목도한 남영은 마침 남영이 야구를 하느라 벗어 놓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발견하고 돈만 꺼내 취한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강진은 남영에게 돈을 내놓으라 애걸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랑에게 빈 봉투를 들키고 만다.

'사채소년', 청소년물이 아닌 자본주의 장르물 [유진모 칼럼]
'사채소년', 청소년물이 아닌 자본주의 장르물 [유진모 칼럼]

강진이 사실을 고백하자 랑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자기 밑에서 일을 배우라는 것. 그렇게 강진은 랑 조직의 막내가 되어 사채 빚을 받아 내는 노하우를 배워 남영에게서 이자까지 쳐서 돈을 받고야 만다. 랑은 아예 강진에게 인근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채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사업이 날로 번창해 강진은 절친 만수(이일진)를 끌어들인다.

최 형사는 다영이 '조건 만남'으로 남자를 유혹해 절도 행각을 벌인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녀를 협박한다. 잠자리를 제공하면 눈감아 주겠다는 제안. 그러나 다영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기에 오히려 최 형사와의 녹취록까지 들고 자수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최 형사는 랑에게 전화해 불법 행위를 눈감아 줄 터이니 다영을 처리해 달라고 하는데.

학교는 폭력이 만연하는 무법 천지이다. 여기에 더해 사채놀이가 횡행한다. 아이들은 권력자(부잣집 자식)에게 아부하고 권력자들은 골드 클럽이라는 2%의 사조직을 만들어 '그들만의 풍요로운 리그'를 운영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고교의 부조리를 까발리면서도 여기에서 이 세상을 보여 주는 이중 언어를 구사한다.

히틀러야 어긋난 게르만 민족의 자긍심으로 유대인을 미워하고 학살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다수의 철학자 및 지식인들이 일부 유대인을 꺼리고 업신여긴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돈 많은 유대인 중 상당수가 고리대금업으로 더욱 큰 부를 쌓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는 어느 해 인근의 모든 올리브유 착유기를 임대했다.

'사채소년', 청소년물이 아닌 자본주의 장르물 [유진모 칼럼]
'사채소년', 청소년물이 아닌 자본주의 장르물 [유진모 칼럼]

그해 올리브 농사가 풍작을 이루었고, 그의 착유기 임대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철학자가 돈을 벌 줄 몰라서 못 버는 게 아니라 돈에 관심이 없고 지혜 탐구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돈을 안 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니 철학자가 고리대금업자를 좋게 봐 줄 리 만무했다. 소크테스와 플라톤의 시대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집을 나와 거리에서 살았다. 그의 재산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였는데 어느 날 개들이 밥을 먹는 것을 보고는 그릇도 사치라며 버렸다. 이른바 '개똥철학'이라는 견유학파의 창시자가 그이다. 이 영화 속 학교는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은 신상 스니커즈나 바이크를 사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명품 백과 화장품이 여학생의 신분증이자 자격증이다. 영화는 중의적 표현으로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첫째 아이들의 세상에 어른이 없거나, 있더라도 보호해 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해 먹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라는 게 더욱 뒷덜미를 당긴다. 선생이 신용카드 빚을 막기 위해 강진을 찾는 식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는 유명인 혹은 유명인의 자식의 학창 시절 폭력 가해 폭로로 시끄럽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토록 교내에서 폭력이 만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은폐에 급급하다는 점이다.

'사채소년', 청소년물이 아닌 자본주의 장르물 [유진모 칼럼]
'사채소년', 청소년물이 아닌 자본주의 장르물 [유진모 칼럼]

인류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게 일상이었다. 어른이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고 보살펴 주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런데 어른은 그런 데 관심 없고 오직 자신의 영리와 영달에만 관심 있다. 그래서 착하던 강진이 범죄의 중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가난한 다영이 '조건 만남'이라는 범죄를 빌미로 절도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학교가 자본주의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이다. 랑은 마치 식구인 듯 강진을 거두어들여 주는 듯했으나 결정적으로 뒤통수를 친다. 과연 이 자본주의 체제에 진정한 친구나 식구가 있을까? 남영은 부모의 재산을 이용해 학교에서 권력을 거머쥔다. 그리고 그 권력을 지키고 넓히기 위해 더 악랄한 짓을 한다. 황금만능주의의 악순환의 고리.

작은 영화 같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의외로 볼거리가 많고 시사하는 바도 크다. 신선한 얼굴들의 의외의 깊이 있는 연기도 완성도에 한몫한다. '프로듀스 101' 출신의 유선호도, 걸 그룹 구구단 출신의 강미나도 배우로서 안정세에 접어드는 듯하다. 살짝 러프한 연출도 그런대로 넘어갈 법하지만 음향 효과가 다소 약한 게 옥에 티.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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