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우리 부부는 말만 시작하면 싸우게 돼요. 무슨 말을 하려 해도 서로 통하지 않으니 아예 입을 닫고 사는 게 편해요.” 라고 하는 부부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이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에게 크게 불편을 끼치거나 욕을 들어보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두 사람이 사랑하여 결혼한 다음에는 왜 이렇게 되는 걸까요?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시리즈의 저자 존 그레이는, 부부의 대화가 이렇게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실망스럽게 끝나게 되는 이유가 ‘대화의 필요’에 대한 남녀의 성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여성은 대화를 통하여 상대와의 친밀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반면에, 남성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성도 (사회적인 대인관계에서처럼) 필요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가정 문제에 관해서는 문제의 해결보다는 남편과의 친밀감을 확인하는 것으로 또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인들의 남편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남편이 자신과 같은 느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대화’란 문제 해결의 수단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빨리 상대의 말에서 요점을 파악하여 자신이 ‘할 일’을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자신의 유능함 또는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부인이 하는 말은 아무리 들어봐도 그런 요점을 찾기가 어렵거나 때로는 자기 능력 밖의 요구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차라리 아내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를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흔한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퇴근한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아이가 뛰어 놀다 넘어져 다친 것, 아래 층에서 시끄럽다고 말해온 것, 이런 일들을 (남편은 바쁠 거니까) 시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말했더니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 다치게 한 것에 대한 (염려를 빙자한) 꾸중 등으로 하루 내내 힘들고 속 상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남편도 처음에는 부인을 위해서 자신이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을 찾으려고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듣기에 부인의 말에는 도무지 ‘초점이 없습니다!’ 애가 다쳤다고 했다가, 아랫집에서 따지더라 하더니, 결국에는 시어머니 때문에 화가 났다는 말인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조금 짜증이 나서 “아, 그래서 나한테 뭘 어떻게 하라고? 나도 어쩔 수 없잖아! 당신이 잘 좀 하지 그랬어?”라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후 진행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부인은 남편이 뜻밖에 벌컥 화를 내는 것에 놀라고 겁이 납니다. 그래서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 자기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하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런 남편에게는 아내가 (걸핏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애 같아서) 너무 한심해 보입니다. 그래서 아예 상대를 하지 말기로 하거나, 혹시라도 해야 한다면 건성으로 대하는 것이 속 편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남편이나 부인 모두 상대와의 대화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실망만 경험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두 사람 모두 “내가 결혼을 잘못했구나!” 라고 단정하여 더 큰 불행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인이 남편에게 기대한 것은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남편이 어떻게 해줄 수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만, 자신도 못한 것을 남편에게 대신 해결해달라고 불평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남편이 알아주고 위로해주면, 그래서 함께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느낄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남편의 입장에서는 상황 파악을 좀 다르게 합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부인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과 정반대로) 자신에게 시집와서 애를 낳아 키워주며 부모를 모시 는 부인이 불행해 한다는 것으로 듣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겠다’라는 책임감을 갖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그 책임을 지나치게 무겁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간단히 처리할 수도 있었던 일을 더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느라, 막상 자기 부인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일 생각을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부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이런 남편을 계속 탓하는 것은 피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결코 남편을 편들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해서는 원하는 것을 더 얻기는커녕 그 나마의 남편까지도 잃어버리고 더 깊은 불화로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들 부부의 관계가 나아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처럼 (성실하지만 꽉 막힌) 남편에 대해서는 부인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남편의 엉뚱한 반응에 실망하지 말고, ‘이 남자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또 자기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를 모르는구나!’라고 인식하고, 우선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눈물을 터뜨리는 대신, “내가 지금 당신에게 뭘 해주라는 게 아니야. 그냥 낮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왜냐면 내가 오늘 좀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내게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뿐이잖아? 아마 나는 당신이 내 말을 그냥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을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 당신이 꼭 어떻게 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가끔은 그냥 내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런데 혹시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그런 말 하는 것도 싫은 거야?” 정도로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합니다.

덧붙여서 남편들의 모범답안을 말해 보겠습니다.

남편은 부인의 말을 들으면서 “아, 그랬어? 당신이 힘들었겠다! 고생했네.” 정도만 말해주어도 충분합니다. 만약 조금 더 할 수 있다면, 부인의 말이 그칠 때를 기다려서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해주면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만 점짜리 남편으로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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