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아일랜드 '땅끝 마을' 몬탁 [이창진 칼럼]

이창진 미국 통신원l승인2017.11.07l수정2017.11.0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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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이창진의 포토에세이] 롱아일랜드 '땅끝 마을'  몬탁(Montauk)은 새해 일출을 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명한 등대가 있는 몬탁. 그 이름은 인디안 원주민 '몬타켓(Montaukett)'에서 이름을 따왔다.  몬타켓 인디언은 이 곳에서 낚시, 사냥을 했으며, 소를 기르며 살았다. 아직도 몬탁 베이에는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륙에는 곳곳에 하이킹과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펼쳐있다.

몬탁 소사(小史) brief history of Montauk

몬탁에 정착한 첫 백인은 1639년 커네티컷에서 온 영국인 로드 가디너(Lord Gardiner)로 영국의 찰스왕은 몬탁 토지를 그에게 윤허했다. 반면, 이즈음 맨해튼엔 네덜란드인들이 다수 살고 있었다. 가디너는 몬타켓 추장과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1790년대 목장주들이 몬탁 반도에 올드 몬탁 하이웨이(Old Montauk Highway)를 포장했다. 1792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몬탁에 등대를 세울 것을 명했다.

1879년 아서 벤슨이라는 인물이 인디언 원주민들로부터 몬탁을 15만1000달러에 통째로 매입한다. 1882년 유명 건축가 스탠포드 화이트의 설계로 르네상스 스타일의 저택이 지어졌다. 1885년  오스틴 코빈이 몬탁을 국제 교역의 중요 항구로 만들기 위해 롱아일랜드 레일로드(LIRR)을 새그 하버(Sag Harbor)에서 몬탁(Montauk)까지 확장한다.

한편, 개발업자 칼 피셔는 몬탁을 북동부의 마이애미 비치로 만들기위해 타운 전체를 레이아웃했다. 고층 사무실 빌딩을 비롯, 실내 테니스 코트, 요트 클럽, 서프 클럽과 스타 아일랜드에 카지노까지 기획했다.

몬탁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몬탁은 해군 기지로 활용되었으며, 1960년대엔 콘도 스타일의 조립식 주택 '레저라마(Leisurama)'가 개발되어 메이시 백화점을 통해 거래됐다. 60년대 몬탁은 여름철 리조트 타운으로 인기가 급증하면서 모텔들이 곳곳에 들어선다.

오늘날 몬탁은 바다 낚시의 명소이자 서퍼광들의 낙원이 됐다.  '롱아일랜드의 말리부' 이스트햄턴 비치가  빌리 조엘, 제리 사인펠드, 케이티 쿠릭 등 부자 뉴요커들이 호화 저택이 즐비한 반면, 몬탁은 보다 소박한 뉴요커들이 여름 휴가로 찾는 피서지다.

이창진 미국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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