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맨', 도그마에 반발하는 '그랑 블루'+'조커' [유진모 칼럼]
'도그맨', 도그마에 반발하는 '그랑 블루'+'조커'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프랑스 뤽 베송 감독은 '그랑 블루'로 예술 영화의 극치를 이루더니 '니키타'와 '레옹'으로 액션의 완성도를 보여 준 후 철저한 사업가로 변했다. 그나마 '루시'(2014)로 역사와 철학에 심오한 질문을 던진 그가 이제 '도그맨'(2024)으로 다시 작가 정신으로 회귀했다. '제5원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신에 도전하고 있다.

한밤중 짐칸에 개 수십 마리를 태운 트럭을 운전하던 여장 남자 더글러스(캐일럽 랜드리 존스)가 경찰에 검거되지만 입을 굳게 다물고 취조를 거부한다. 경찰은 정신과 의사 이블린을 호출하고, 더글러스는 이블린에게 서서히 자신의 과거와 범죄를 넣어놓는다. 그렇게 이 영화는 더글러스의 고백을 통해 소년 시절부터 최근의 행각까지 술회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부모와 형 등 네 식구였다. 아버지는 엄마와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형은 아버지의 철저한 동조자였다. 아버지는 투견을 키워 먹고살았다. 어느 날 더글러스는 굶주린 개들에게 몰래 먹이를 주었고, 형이 이를 아버지에게 일렀다. 아버지는 더글러스를 개 우리에 가뒀다. 그 후 몇 년이 흘렀고, 흥분한 상황에서 대치하던 아버지는 더글러스에게 총을 쐈다.

'도그맨', 도그마에 반발하는 '그랑 블루'+'조커' [유진모 칼럼]
'도그맨', 도그마에 반발하는 '그랑 블루'+'조커' [유진모 칼럼]

벽을 맞고 튕긴 총탄이 더글러스의 척추에 박혀 하반신 불구가 되었고, 그는 개를 이용해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비로소 풀려 난다. 보호소에서 그는 '알바'를 하던 연상의 배우 셀마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에게 셰익스피어와 연극, 그리고 사랑을 배운다. 성장한 더글러스는 수백 마리의 유기견들을 수용하는 주립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며 개들과 특별하게 교감한다.

어느 날 정부에서 보호소 폐쇄를 통보하자 그는 개들을 데리고 폐교에 들어가 생활한다. 여장 남자들의 쇼를 하는 클럽에 일주일에 한 번 무대에 서는 일자리를 잡지만 그 벌이로는 개들을 먹여살릴 수 없는 그는 개들을 이용해 부잣집을 털어 풍요롭게 산다. 어느 날 한 소년 후안이 찾아와 자신의 집안을 괴롭히는 히스패닉 마피아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개들일 이용해 두목 엘 베르두고를 보기 좋게 혼내 주지만 어느 날 그들은 중무장한 채 폐교를 습격하는데. '그랑 블루'의 주인공 자크는 전도 유망한 다이버이고 사랑하는 여인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바닷속을 선택해 돌고래들과 뛰어놀며 죽는다. 인간 세상은 천박하고 부자연스러우며 속임수가 난무한다. 하지만 동물의 세계, 즉 자연은 자연스럽다.

'도그맨'은 그런 면에서 '그랑 블루'의 연장선상에 있다. '불행이 있을 때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는 시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더글러스의 유일한 친구이자 식구는 바로 개들이다. 그는 이유 없이 개를 사랑하고 개들은 그를 아낌없이 믿고 사랑한다. '개는 교만함 없는 아름다움을 가졌다. 유일한 단점은 사람을 너무 믿는다는 것이다.'라는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도그맨', 도그마에 반발하는 '그랑 블루'+'조커' [유진모 칼럼]
'도그맨', 도그마에 반발하는 '그랑 블루'+'조커' [유진모 칼럼]

더글러스의 형은 불합리한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하느님 핑계를 댄다. 이 영화 전반에 걸쳐 신과 신의 섭리가 등장하지만 사실 내용을 보면 신에 대한 반발이다. 만약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고, 신이 세상을 관장한다면 이토록 혼란스러울 수 없다는 논리이다. 더글러스는 부잣집을 터는 행위에 대해 '부의 재분배'라는 논리를 전개하며 합리화하려 한다.

억견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임은 확실하다. 10%의 소수가 나머지보다 더 많은 부를 독점하고 있다는 현실은 비합리적이기는 하다. 공산주의는 이론적인 유토피아일 뿐 비현실적이라는 것과 맥락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배면에 깃들어 있다. 보험 회사 조사 요원이 더글러스의 범죄를 밝히지만 결국 개에 물려 죽는 설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글러스는 여장 남자이다. 그는 '우리는 복제품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또 그는 어떤 캐릭터로도 변장할 수 있다며 변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만족감을 갖는다. 그는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비장애인인가? 감독은 여기서 유물론을 버리고 관념론을 채택한다. 멀쩡한 신체의 더글러스의 가족 3명은 그보다 더 장애인이 아닐까?

'도그맨', 도그마에 반발하는 '그랑 블루'+'조커' [유진모 칼럼]
'도그맨', 도그마에 반발하는 '그랑 블루'+'조커' [유진모 칼럼]

아버지는 자신을 닮은 장남은 편애하면서 착한 더글러스는 학대한다. 어머니는 착하지만 남편과 장남을 저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케이지에 갇힌 더글러스를 남겨 두고 혼자 도망가는 무책임함과 비겁함을 보인다. 그녀는 더글러스보다 못한 장애인이다. 다리가 불편한 더글러스와 사람들이 무시하는 개들이 마피아들을 물리치는 것은 액션이라기보다 블랙 코미디 같다.

세상에는 무신론자보다 유신론자가 더 많다. 유신론자 중 다수가 종교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앞세워 정의와 선을 외치지만 과연 그들 모두가 정의롭고 선할까? 이타적이고 도덕적일까? 더글러스는 그렇지 않다고 외친다. 그는 "아무도 나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아.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라고 주장한다. '신은 불공평하다.'라고도 울부짖는다.

막 태어난 시점에서 나쁜 신생아는 없다. 아무도 유아 시절의 자신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성선설이 옳은지, 성악설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환경이 중요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더글러스가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가발을 착용해야 마음이 놓이는 심리 상태는 조커와 흡사하다. 맨얼굴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사실은 나약한 존재자이기에.

그것은 '우리는 복제품이다.'라는 대사와 맞물려 있다. 과연 우리의 존재는 무엇일까? 내가 진짜일까, 나비가 진짜일까(장자의 호접몽)? 더글러스가 웅장한 교회 십자가의 그림자와 겹쳐진 시퀀스는 종교에 대한 메타포이다. 더글러스를 취조하는 이블린 역시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자랐고,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했다. 세상에 만연된 도그마에 반발하는 역작이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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