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담', 자유 갈구하는 영웅의 운명론 [유진모 칼럼]
'블랙 아담', 자유 갈구하는 영웅의 운명론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5000년 전 폭군 아크톤 왕이 지배하는 고대 국가 칸다크. 아크톤은 칸다크에서만 생산되는 특수 광물 이터니움을 이용해 악마의 영혼을 담은, 엄청난 힘을 지닌 '사막의 왕관'을 만든다. 그러나 자유를 갈망하는 소년 후르트에 의해 아크톤의 영원불멸의 꿈은 깨지고, 후르트는 사라진다. 현재의 칸다크는 국제 군사 조직 인터갱이 통치하는 독재 국가가 되어 있다.

미혼모 아드리아나(샤라 샤이)는 남동생, 친구 이스마엘 등과 함께 국민들을 폭압하는 인터갱에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힘을 가진 사막의 왕관을 찾고 있다. 아드리아나는 그 과정에서 50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블랙 아담(드웨인 존슨)을 깨우게 된다. 과거에 노예였지만 불사신이 되어 깨어난 아담은 엄청난 괴력으로 인터갱을 쓸어버리고, 칸다크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히어로 군단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쉽게 인명을 살상하는 그의 폭주를 막고자 한다. 이에 황금 투구로 미래를 보는 대마법사 닥터 페이트(피어스 브로스넌), 금속 날개 수트를 장착한 호크맨(알디스 호지), 신체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아톰 스매셔(노아 센티네오), 바람을 갖고 노는 사이클론(퀸테사 스윈들) 등으로 구성된 팀을 칸다크에 급파한다.

네 명의 슈퍼 히어로가 힘을 합쳐도 아담의 초능력을 막기는 어려워 허덕인다. 아담은 아드리아나와 그녀의 아들 아몬을 구해 준 인연으로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점점 가까워지지만 호크맨과 사사건건 충돌한다. 호크맨은 원칙주의자이지만 아담은 악에 대해 최소한의 자비도 없다. 그러나 결국 아드리아나 모자와 닥터 페이트의 인품에 감명되어 스스로 봉인된다.

'블랙 아담', 자유 갈구하는 영웅의 운명론 [유진모 칼럼]
'블랙 아담', 자유 갈구하는 영웅의 운명론 [유진모 칼럼]

아드리아나의 동료인 줄 알았던 이스마엘은 알고 보니 인터갱의 특수 부대의 팀장이었다.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막의 왕관을 이용해 고대의 악마 사박으로 부활해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 한다. 아담은 '샤잠'을 외쳐야만 신적인 존재로 되돌아올 수 있지만 스스로 물속에 봉인되었고,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사박이 된 이스마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데.

2022년 10월 국내 개봉되어 77만 명밖에 동원하지 못했다. 국내 관객들의 입맛은 까다로우면서도 정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왜 DC의 블록버스터가, 더군다나 드웨인 존슨이라는 슈퍼스타를 기용하고도 참패했는지 그 이유는 자명하다. 첫째,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아담은 슈퍼맨의 동전의 이면이다. 슈퍼맨이 크립토나이트에 그렇듯 아담은 이터니움에 꼼짝 못 한다.

하늘을 음속으로 날고, 금강불괴의 몸을 지닌 것도 비슷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닥터 페이트는 '어벤져스'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호크맨은 팔콘을, 아톰은 앤트맨과 데드풀을, 사이클론은 'X맨'의 스톰을 각각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수많은 상업 영화에서 영웅 역할을 해 온 존슨이 마치 배트맨과 베놈을 섞은 듯한 다크 히어로를 그리는 게 어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장점은 있다. 다만 외형적인 상업 요소들이 기존이 슈퍼 히어로 블록버스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에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어필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먼저 가치전도. 니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모든 문화를 퇴폐라고 보았다. 종교, 이성, 도덕, 전통 등이 생의 본능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블랙 아담', 자유 갈구하는 영웅의 운명론 [유진모 칼럼]
'블랙 아담', 자유 갈구하는 영웅의 운명론 [유진모 칼럼]

아담은 5000년 전 마법사 의회에 의해 간택되어 얻은 힘을 사적인 복수에 사용했다가 의회에 의해 영원히 봉인되었다. 신으로 재탄생한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안하무인의 독불장군으로서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인물이다. 호크맨이 "악인이어도 적접한 절차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라고 '법전'을 외울 때 아담은 일고의 여지도 없이 그냥 죽여 버린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규율, 규칙, 도덕, 그리고 법의 준거틀에 의해 사건과 사고를 해결해 왔다. 그런데 과연 그 판결 결과에 대해 모두 만족할까? 최근의 전청조 사건과 박수홍의 친형 부부의 사건에 대한 판결만 놓고 보더라도 대중의 정서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원리원칙주의자보다 아담 같은 다크 히어로의 '무대뽀'가 더 통쾌하다.

이 같은 가치전도는 인식론으로 확장된다. 법은 우리 모두 지키자고 정한 원칙이다. 아무리 죄가 강력히 의심되는 용의자일지라도 원칙은 무죄 추정이다. 적법한 절차에 의해 수사를 하고 재판을 통해 죄가 가려지고 그에 합당(?)한 형량이 선고되는 게 합법이고, 합리이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법은 사람이 만들었고, 판결 역시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론은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숱하게 등장했다. 대표적인 게 '왓치맨'이다. 슈퍼 히어로로 구성된 자경단은 공권력과 별개로 범죄자들을 처단하지만 정부는 그들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국가 권력에 대한 반역으로 판단했다. 그 다음의 메시지는 종교와 자유이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칸다크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자유이다. 종교나 정치는 그 다음이다.

'블랙 아담', 자유 갈구하는 영웅의 운명론 [유진모 칼럼]
'블랙 아담', 자유 갈구하는 영웅의 운명론 [유진모 칼럼]

마지막으로 운명론이다. "인간은 신이 창조했는데 매번 신을 묻는 건 인간이다."라는 말은 절대적 존재인 신을 섬기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운명론에 대한 변론에 가깝다. 이는 "살고 죽는 건 우리 소관이 아니라 운명의 영역이다.", "죽음이 삶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라는 대사와 이어진다. 우리는 인생을 개척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죽음마저 관장할 수는 없다.

이건 절대적 진리이다. 태어날 때 각자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세상에 피투되었듯, 저세상으로 가는 시기 역시 우리 마음대로 조절하기는 힘들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의 연장은 가능하다. 하지만 거북이처럼 오래 살 수는 없다. 다만 사는 동안 우리의 피투성(수동성)을 기투성(능동성)으로 변화시켜 보다 더 활력 있고, 보람 있는 알찬 삶으로 바꿀 수는 있다.

그러한 기투적 삶은 바로 자유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는 논리로 회귀한다. 아담과 후르트가 죽음을 불사해 가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자유가 진정 인간다운 삶의 기초 전제이므로. 칸다크는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이집트가 모델이다. 폭군 아크톤은 아크나톤에서 빌린 듯하다. 한때 최고의 문명과 군사력을 자랑했던 이집트에 대한 애정일까, 동정심일까?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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