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와 YG가 얻거나 잃은 것 [유진모 칼럼]
블랙핑크와 YG가 얻거나 잃은 것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걸 그룹 블랙핑크의 제니, 지수, 로제, 리사가 각개 전투 중이다. 말이야 'YG엔터테인먼트와 그룹 활동에 대해 재계약을 맺었다.'라고 하지만 사실상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주체가 YG인지, 각 멤버들인지 모르겠지만-사실상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그게 블랙핑크의 엄연한 현실이자 미래이고, 이미 지난해 예고된 수순이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재계약 여부를 놓고 여론은 뜨거웠다. 여기에 각종 루머까지 나돌며 재계약이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으나 연말 '그룹 활동 재계약'이라는 희망적 히든 카드가 발표되며 팬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그 이후 제니, 지수, 리사, 로제 등이 각자의 회사를 차리거나 다른 회사로의 이적을 알리며 그룹 활동이 만만치 않을 것을 시사했다.

논리는 간단하다. 블랙핑크라는 브랜드의 소유권은 YG에 있다. 블랙핑크라는 정체성 위에 각자의 브랜드를 설립한 네 명의 멤버들로서는 블랙핑크를 버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리사는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VVIP이고, 지수는 이미 배우로서의 지평을 열어 놓았으며, 제니는 다방면의 쓰임새에서 경쟁력 최강이고, 로제는 가수로서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블랙핑크로서 존재해 왔기에 블랙핑크와 완전히 결별해 독립하기에는 뭔가 허전한 것이다. K-팝계에는 아이돌 그룹의 유통 기한이 7년이라는 속설이 있다. 10대에 데뷔해 20대 중후반을 거치면 '보이'나 '걸'이라는 호칭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돌 그룹은 자체 음악성보다는 기획사의 프로듀싱 능력에 의해 색깔이 정해지기 마련.

블랙핑크가 바로 7년을 넘겼다. 그렇다면 블랙핑크와 YG는 각자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블랙핑크의 4명은 실속은 챙겼다. 네 명은 각자의 기획사를 차리거나 대형 계약을 맺을 예정이므로 블랙핑크로서 수입을 나누거나 적지 않은 수수료를 YG에 지불하지 않으며, 오로지 솔로로서 수익을 더 많이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행보가 그걸 담보한다.

제니는 tvN 예능 '아파트404'로 솔로로서의 첫 발걸음을 알리고 있다. 블랙핑크 멤버로서보다 솔로 제니로서 '몸값'은 더 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에서 배우로 데뷔한 그녀는 솔로 가수, 배우, 예능인, 광고 모델 등에서 가장 맹렬하게 활동할 전망이다. 이는 지수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지수는 가수보다는 배우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이 유력시된다.

이에 비교해 로제는 가수쪽으로 중심이 기운다. 리사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태국의 국민적 영웅이다. 게다가 프랑스 재벌과의 열애 혹은 결혼 소문이 들려온다. 향후 4명은 각자의 실리는 제대로 챙길 것이다. YG는 블랙핑크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만약 블랙핑크 오리지널 멤버들의 재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다면 주가와 이름값도 지키지 못했을 터.

하지만 양측 모두 잃은 것도 만만치 않다. 블랙핑크는 명분을 잃었다. 제니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데뷔했지만 사실상 참패했다. OST로 가수로서의 명성은 높였을지 몰라도 배우로서는 작품 선택 능력, 연기력, 신비주의 등 다방면에서 손해를 봤다. 가장 큰 리스크는 리사였다. 카바레 쇼 '크레이지 호스'는 분명히 블랙핑크 리사와는 결이 달랐다.

지수는 지난해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의 특별 출연을 알렸지만 블랙핑크라는 이름값에 비교했을 때 '월드 스타'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나마 로제는 현상 유지는 했다. 아무래도 경제적 리스크는 각 멤버들에 비해 YG가 컸다. 블랙핑크는 지난해 봄 기준 26차례의 공연을 통해 1036억 원의 수익을 올리며 스파이스걸스를 뛰어넘는 기록을 올렸다.

지난 수년간 블랙핑크는 그런 월드 투어 강행군을 통해 YG에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려 주었다. 하지만 재계약 후 블랙핑크에 대해서는 잠잠하고 개인 소식만 들려온다. 그런 움직임을 떠나서 향후 YG에 전속되어 있을 때만큼 음반 활동 및 월드 투어를 여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향후 멤버들의 CF 수입 역시 YG와 무관하다.

그렇다고 YG가 아주 많은 것을 손실한 것은 아니다. 일단 YG는 블랙핑크 팬들에게 최대한 봉사했다. YG는 각 멤버들의 솔로 활동을 양보하면서까지 블랙핑크를 지켰다. 1년에 한 번이든, 2년에 한 번이든 멤버들은 블랙핑크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공연을 열 것이다. 그게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므로. 그 공적은 오롯이 YG가 가져가야 마땅하다.

블랙핑크는 YG가 훈련시키고, 그 음악들을 만들게끔 기획했으며, 모든 스케줄을 진횅해 완성한 세계 최고의 걸 그룹이다. 연예 기획사는 연예인의 정체성을 정해 그 캐릭터 혹은 아이덴티티를 완성-지속시킴으로써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당연히 기획사 입장에서는 신비주의와 인간미를 적절하게 섞음으로써 팬들의 최대한의 애정을 도출해 내기 마련이다.

그것은 각 기획사만의 브레인과, 경험으로 쌓은 노하우와, 브랜드 파워 등이 종합적으로 일궈 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엄은 명예를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명예를 누릴 자격을 유지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명분론은 '올바른 기준(名)으로 분별(分)해야 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명목과 그 명목에 합당한 본분을 갖추어야 한다는 용어'이다.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는 게 쉽지 않은 게 세상만사의 이치, 혹은 섭리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실리가 곧 명분 혹은 명예일 수 있다. 하지만 이상주의, 공리주의, 관념론 등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조차 '위버멘시'에 이르면 달라진다. 조용필은 처음부터 조용필로 태어났지만 블랙핑크는 YG가 기획하고, 조련하고, 관리하며, 완성했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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