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버',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하는 해탈 [유진모 칼럼]
'리볼버',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하는 해탈 [유진모 칼럼]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가이 리치 감독은 열혈적인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을 만큼 완성도와 깊이를 지닌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상업적으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흥생사이다. 그런 그에게도 '망작'은 있으니 '킹 아서: 제왕의 검'(2017, 41만 명), 그리고 '젠틀맨'(2020, 8.1만 명)을 들을 수 있다. 여기에 그의 단순한 팬들은 '리볼버'(2020, 1597명)를 '흑역사'의 절정으로 손꼽는다.

그러나 리치의 마니아 중 일부는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다. 평론가들조차 극과 극의 평가를 했다. 그린(제이슨 스타젬)은 부당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돼 7년 만에 나온다. 그의 양 옆 방에는 당대 최고의 사기꾼과 체스 챔피언이 복역 중이었고, 그래서 그는 최고의 트릭 실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밀실 공포증이 생겨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다.

그를 감옥에 보낸 장본인은 권력에 굶주린 카지노 주인 마카(레이 리오타). 그린은 형 빌리와 함께 마카의 카지노에 등장해 트릭을 써서 마카의 돈을 따 부도 얻고 복수도 한다. 그러나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고, 3일 밖에 못 사는 희귀병 진단을 받는다. 마카의 부하들의 무차별 공격 때문에 위험에 처한 그의 앞에 고리대금업자 아비와 잭이 나타나 구해준다.

'리볼버',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하는 해탈 [유진모 칼럼]
'리볼버',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하는 해탈 [유진모 칼럼]

아비는 자신의 보호를 받는 대신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고 그린은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그린은 아비의 조직원이 되어 고리대금업 전면에 나서지만 양심 때문에 채무자들에게 모질게 하지 못해 매번 아비와 갈등한다. 마카는 정체불명의 무서운 범죄 조직 두목 골드와의 코카인 거래를 중개하는데 아비와 그린의 활약에 의해 코카인을 빼앗겨 위기에 처한다.

골드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마카는 거액을 주고 삼합회의 코카인을 사들여 골드에게 건네기로 한다. 그러나 아비와 그린은 삼합회마저 물리치고 코카인을 접수한다. 사면초가에 몰린 마카는 복수심에 불타 빌리의 집에 부하들을 보낸다. 그런데 마카에게 고용된 킬러 소터는 빌리의 딸을 보는 순간 갑자기 변심해 딸을 구하려다 죽고, 딸은 납치당한다.

한편 아비와 잭은 그린에게 받은 모든 돈을 마차 이름으로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데. 전개가 빠르고 편집이 복잡한 구조여서 사실상 재미를 느끼기 쉽지 않은 플롯이다. 스토리 역시 매우 복잡하다. 혹평이 나온 게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지적인 유희를 즐기고자 하는 관객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철학적 작품이다. 여러 번 관람할수록 재미있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세계는 크게 자아 내부의 선과 악, 그리고 세계관 속의 차안과 피안으로 나뉜다. 그린의 내면에는 그린, 골드, 아비와 잭이라는 세 개의 인격이 있다. 골드는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악마이다. 아비와 잭은 겉으로는 골드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린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자, 살고자 아등바등하는 생존의 몸부림이자, 내면의 선과 악의 중재자이다.

'리볼버',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하는 해탈 [유진모 칼럼]
'리볼버',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하는 해탈 [유진모 칼럼]

그린은 수감 생활 당시 두 사기꾼으로부터 '모든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필수 공식'이라는 트릭을 배웠다고 한다. 두 사기꾼은 함께 탈옥하자더니 자기들만 탈옥한 뒤 그린의 집에 가서 전 재산을 빼돌렸다. 어떻게 감옥에서 연기처럼 사라졌을까? 그린은 14년의 단체방과 7년의 독방 생활 중 독방을 선택해 폐소공포증과 싸우며 독학으로 트릭을 익힌 것이다.

또한 골드가 그토록 극악무도하고 신출귀몰한 신비의 악당 두목이라는 것은 그린의 인격 중 하나가 그만큼 악마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사람이었다. 탐욕을 위해 물불 안 가리지만 내면의 또 다른 한 쪽에는 양심이라는 게 엄존하고 있었다. 악마가 돌출되면 될수록 이면의 천사는 반발하면서 악마를 제어하려 했다. 그렇게 그는 차안의 세계에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전 재산을 원수인 마카의 이름으로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불치병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사과를 받는다. 이것은 소터의 개과천선과 마카의 뜻밖의 결말과 일맥상통한다. 소터는 프리랜서 킬러로서 마카에게 고용되어 그린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린의 질녀를 구해 주고, 자신은 죽는다.

'리볼버',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하는 해탈 [유진모 칼럼]
'리볼버', 차안에서 피안으로 향하는 해탈 [유진모 칼럼]

그린은 마카를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존경의 표시를 한 뒤 총을 거둔다. 그러자 마카는 황급히 총을 챙겨 그의 뒤를 쫓아 총구를 겨눈다. 조금 전과 역전된 상황에서 그린은 마카와 달리 매우 평온한 표정과 태도를 보인다. 그건 기부를 통해 병을 극복한 뒤 진정한 자아를 정립한 이후 비로소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사를 초월했다는 의미이다.

이 작품은 감독이 불교에 심취해 만든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워쇼스키 남매가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 푹 빠져 만든 '매트릭스' 트릴로지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으며 평단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이 작품은 복제라는 소재 외에도 다양한 철학을 비롯해 신화, 종교, 역사 등을 녹여 그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거대한 서사를 완성했다.

이에 비하면 '리볼버'는 매우 국지적이다. '매트릭스'처럼 트리니티(삼위일체), 오라클(신탁), 쿠키 등으로 의도롤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될 법한 메시지를 지나치게 은유적, 혹은 암시적으로 은폐, 엄폐했다는 게 조금 아쉽다. 그러나 끝에 가면 모든 궁금증, 혹은 머리 지끈거림이 사라진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타뎀보다 리오타의 연기력 덕분이다.

결국 이 영화가 뒤에 가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인내와 용서이다. 대사에도 나오듯 우리는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게 아니라 내부의 자아와 싸우고 있다. 적인 듯한 타인에 대한 불만을 참을 줄 알고, 더 나아가 관면할 줄 아는 자비심. 그러면 내부의 모든 갈등과 혼돈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내면의 다중 인격을 정리하는 자아 찾기!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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