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웅산묘소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9.03.21l수정2019.03.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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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KTV 화면 캡처

고위 공직자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웅산묘소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사의 고비는 몇 번이나 넘길까.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려곡절을 겪으며 여러 번 사선을 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못해 졸지에 목숨을 잃는 불운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태어난 사람을 ‘피닉스’(불사조)라고 한다. 이기백 전 합참의장도 피닉스로 통한다. 아웅산묘소 폭탄테러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그렇다. 그를 통해 당시 아웅산묘소의 참사현장을 생생하게 들여다보자.

1983년 10월9일 미얀마의 수도 랑군(현 양곤). 그늘에서조차 섭씨 30도를 웃돌 만큼 찌는 듯한 무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평소때 같으면 한산하기만 했던 일요일이었지만 이 날 만큼 랑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사원 세다콘탑 부근을 중심으로 이른 아침부터 배치된 대규모의 경찰과 경호병력들로 술렁거렸다. 이 곳을 지나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도로변에 서 있는 경찰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10시가 조금 지나 마침내 세다콘탑에서 얼마 안 떨어진 아웅산 순국선열묘소로 향하는 일단의 차량행렬을 보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 일행 등이 미얀마를 방문한 관례에 따라 아웅산묘소를 참배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기백 합참의장은 숙소인 인야레이크호텔에서 7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한 후 아웅산묘소로 떠날 준비를 했다. 출발 예정시간은 10시10분이었다.

당초 묘소참배계획에는 공식수행원만 포함돼 있었으나 이 합참의장이 외무부 의전팀에 확인한 결과, 전속 부관은 수행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전속부관 전임범 중위한테 같이 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일렀다.(전인범은 1981년 초임지인 30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 중 1군단장 이기백 중장에게 발탁되어 대한민국 육군 최초로 중위 계급을 달고 3성 장군인 군단장 전속부관을 맡게 됐다.1983년 10월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당시 이기백 장군의 전속부관으로서 아웅 산 묘소 참배에 동행했다. 당시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 된 묘역에서 추가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그는 중상을 입은 이기백 장군을 구출해내어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훈하였다. 이후 9사단 29연대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부 전작권 전환 추진단장, 27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특수전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2016년 7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는 동안 여러 일화를 남겼다.)

▲ 사진=KTV 화면 캡처

출발준비를 끝낸 이 합참의장은 곧장 호텔현관으로 내려갔다. 입구에는 미얀마 무장군인들이 경계를 펴고 있었으나 보기에는 경계태세가 허술하고 무질서하기 짝이 없었다. 경계병들의 복장이 단정치 못한데다 순찰간부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한가로이 담배까지 피우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0시가 조금 지나자 이 합참의장 일행은 호텔을 출발해 세다콘탑을 지나 묘소로 향했다.

이 합참의장은 과거 수도군단참모장 재직시 외국정상들이 방한할 때 경호업무를 여러번 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경험으로 볼 때 무성한 숲으로 덮여 있는 도로망이 경호상 문제점이 많을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호텔을 출발한 지 약 15분 뒤 이 합참의장 일행은 묘소에 도착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묘소는 서울 동대문구장 정도의 크기였다. 차에서 내린 이 합참의장은 서석준(徐錫俊)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과 기념촬영을 한 뒤 행사장에 도열해 잠시 후 도착할 전두환 대통령을 기다렸다.

아웅산묘소는 미얀마 사람들의 독립정신이 깃든 성역으로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다. 아웅산 장군이 여러 명의 참모들과 그 곳에서 회의도중 폭탄테러에 의해 숨진 곳으로 아웅산 장군의 이름을 따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바로 이 시각(10시20분) 우산유 대통령의 영빈관에 머물고 있던 전 대통령은 아웅산묘소까지 안내할 우칠항 외무장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시간이 지났어도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옆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미얀마 주재 이계철(李啓哲) 한국대사는 행사준비를 점검하기 위해 미얀마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먼저 출발했다.

미얀마 군악대 행사시간보다 앞서 진혼곡 연주

▲ 사진=KTV 화면 캡처

아웅산묘소에서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공식수행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행사장 바로 옆으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李範錫) 외무장관, 김동휘(金東輝) 상공부장관, 서상철(徐相喆) 동자부장관, 함병춘(咸秉春) 청와대비서실장, 심상우(沈相宇) 민정당총재비서실장, 그리고 이 합참의장 등이 일선에 도열해 있었고 그 뒤에 차관급과 수석비서관 등이 서 있었다. 그리고 미얀마의 각료들과 고위 공직자들, 한국과 미얀마의 TV중계팀 및 기자들이 지정석에 앉아 있었다. 이 합참의장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시계를 보았다. 10시2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때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미얀마 경찰과 경호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계철 대사가 탄 리무진이 양국 국기를 펄럭이며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이 대사는 행사장으로 걸어와 서상철 동자부장관과 함병춘 청와대비서실장 사이에 섰다.

그런데 이 때 미리 대기해 있던 미얀마의 군악대가 진혼곡을 연주했다. 이 합참의장은 속으로 ‘아직 전 대통령이 도착하지 않았는데’라며 군악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번쩍이는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이와 동시에 고막을 찢는 굉음이 천지를 진동했고 행사장은 비명소리와 함께 천장이 내려앉는 등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모든 상황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이 때가 10월9일 10시27분이었으며 한국시간으로는 정확히 12시 57분이었다.

한편 전 대통령은 이 대사가 막 묘소에 도착할 쯤에야 비로소 미얀마 외무장관의 안내를 받으며 영빈관을 출발했다. 행사시간이 조금 늦은 관계로 차는 거의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그런데 묘소에 도착하기 1킬로미터 전에 전 대통령과 함께 타고 있던 박상범(朴相範) 청와대 경호과장은 ‘꽝’하는 폭발음을 들었고 반사적으로 차를 세우게 한 뒤 무전기에 귀를 기울였다. 묘소로부터 긴급 무전연락을 받았다. 호출내용은 ‘코드1’이었다. 가장 위급한 순간을 알리는 암호였다. 전 대통령을 태운 리무진은 핸들을 돌려 전속력으로 다시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수행부관의 민첩한 행동으로 살아나

▲ 사진=KTV 화면 캡처

당시 합참의장을 수행한 전속부관 전인범 중위는 폭파 직전 행사장과는 조금 떨어진 한국측 수행원들이 있는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전 중위는 합참의장이 일행과 악수하는 사진을 찍고는 필름이 다 떨어져 주차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가 이 합참의장이 타고 온 차에서 막 필름을 꺼내려는 순간, 커다란 폭발음을 들었다.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수행비서관들은 공포에 질려 반사적으로 대피해 있었다. 현역 군인인 전 중위는 그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잠시 서 있었다. 언제 어디서 다시 폭발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와 동시에 전 중위는 어차피 하늘에 맡긴 목숨이 아니냐며 참사현장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우선 자신의 상관인 이 합참의장부터 찾았다.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린 서까래에 깔려 이 합참의장은 옴짝달싹 못하고 신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머리의 피부가 반쯤 찢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전 중위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 합참의장의 머리를 감싼 채 서까래더미에서 잡아끌었다. 합참의장의 온몸은 피로 얼룩진 상태에 겉옷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고 오른쪽 발가락은 뼈도 없이 피부만 남아 있었다. 가슴에 달고 있던 휘장까지 파편이 박혀 있었다. 결국 이 합참의장은 용감했던 전속부관전 중위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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