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체제와 사랑한 남자, 영화 'her' [정다운 칼럼]

정다운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9.04.27l수정2019.04.2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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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녀>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정다운의 영화 들여다보기] 누구나 한번쯤 먼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날아다니는 자동차, 아침 식사를 대신 만들어 내게 대접하는 토스터, 꼭 사람처럼 생겨서 말동무가 되어주는 로봇 친구. 그런 삶은 얼마나 편리할 것이며 또 얼마나 흥미로울까. 지금 당장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게다가 사실 아주 실현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인간과 비슷한 피부와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탑재한 이른바 ‘휴머노이드 로봇’ 이 등장하고 있고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먼 미래에 더 진보한 기술로 인한 상상의 실현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시점에서 영화 <her>은 기술의 무한한 발전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해 고성능의 기계를 만들어내 이것이 사람의 편리한 삶을 돕는데 그치지 않고 감정적 교류까지 나누게 된다면 어떨까. 지난 수 세기 동안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감정’의 영역을 기계와 공유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her>은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미래의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 <her>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제작과 감독을 맡은 영화이다. 2013년 12월 18일에 미국에서 개봉하고 한국에서는 2014년 5월 22일에 개봉했다. 제 8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2014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역시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많은 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던 영화다. 영화는 미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시어도어(호아킨 피닉스) 는 아내와 별거 중이며 도시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운영체제뿐 이며 작은 이어폰에 의존해 이메일 체크, 흥미로운 정보를 찾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자신을 ‘사만다’라 칭하는 더 발전한 인공지능을 탑재한 새 운영체제를 만나 감정을 교류하고 심지어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 영화 <그녀> 스틸 이미지

영화 속 주인공은 현대인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지금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두 손과 스마트 디바이스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웃과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던 ‘품앗이’ 문화는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남의 도움이 크게 필요 없게 되면서 혼자 사는 삶이 늘어나게 되었고 1인 가구를 뜻하는 이른바 ‘싱글족’이 500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실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잡고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영화 <her> 에서는 이것이 조금 더 진화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굳이 손이 아닌 ‘언어’로 기계를 조작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귀에 작은 이어폰을 꽂고 혼자 중얼거리는 풍경은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편리한 삶을 누리지만 공허함과 허전함, 외로움을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재 혹은 미래의 우리 모습과 꽤 많은 부분 겹쳐 보인다. 이러한 이들을 위해 업그레이드 된 운영체제가 등장하고 이들과 대화함으로써 외로움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주인공처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운영체제와의 사랑은 여러 문제를 동반할 것이다. 과연 감정도 없고 실체도 없는 기계와 수많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 사랑할 수 있을까. 기계와의 사랑은 인간 간의 사랑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윤리가 부재한다. 한 번에 단 사람과만 연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은 운영체제에는 적용되기 힘들다. 운영체제는 기본적으로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역량을 보유한 거대 시스템이기 때문에 한 번에 수 천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과 교류할 수 있다.

▲ 영화 <그녀> 스틸 이미지

주인공도 ‘사만사’의 이러한 기능 때문에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냐’ 는 식의 물음을 운영체제는 이해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더 큰 혼란을 겪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기계와 인간이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영화 <아이로봇>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무력으로 지배하는데 영화 <her>과 같은 일이 가능하다면 로봇이 인간을 정신적으로도 지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무력으로 지배당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무서운 일이 될 것이다. 기술의 발달과정에서 인간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영화 <her>은 신선한 내용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영화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주인공 시어도어의 직업이다. 영화 속 시대 배경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주인공은 편지 대필 작가이다. 다른 이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데 내용이 매우 로맨틱하고 진심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영화 <그녀> 스틸 이미지

게다가 기술의 발달이 더해져 주인공은 그저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아 소설을 읽듯 소리 내어 말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사람의 필체로 적어 내려간다. 이는 첨단 기술의 발달로 진심을 전달하는 일이 예전처럼 진실 되지 만은 않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정을 사고파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도 된다. 운영체제에 감정을 추가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파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영화 <her> 속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은 미래이며 어쩌면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상상하고 걱정하는 것은 시간 낭비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영화가 인간이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힘센 로봇이 인간을 강제로 제압하는 영화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지만 이 영화는 인간이 인공 지능 운영체제를 더 필요로 하고 온 감정을 다해 이것과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온전히 득일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다운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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