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 = 네온정형외과 박진영 원장 칼럼]

▲ 사진=픽사베이 제공

도핑의 역사
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MLB)의 화려한 얼굴 뒤에는 부끄러운 ‘흑역사’가 감춰져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 금지약물 복용의 느슨한 규제로 인한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의 광범위한 사용은 선수들의 폭발적인 경기력 향상과 기록의 인플레이션을 야기하였다. 이른바 ‘스테로이드 시대(The Steroids Era)’ 이다. 1999년 MLB 전체 타점 10위권 내의 선수들 중, 카를로스 델가도, 켄 그리피 주니어, 블라미디르 게레로 등 3명을 제외한 7명의 선수가 공식적으로 경기력 향상 약물(Perfomance Enhancing Drugs, PED) 사용이 적발되었거나 의혹을 풀지 못하였다.

이렇게 사태의 심각성이 커지던 중, 2007년 12월 13일, 미국의 전 상원의원 조지 J. 미첼이 발표한 4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미첼 리포트’는 여러 팀 트레이너 및 선수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20개월간의 독립조사를 통해 당대 최고의 MLB 슈퍼스타들의 도핑 현황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전 세계의 야구팬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하였다. 당시 리포트에 연루된 유명스타들을 꼽아 보자면, 게리 셰필드, 배리 본즈, 새미 소사, 로저 클레멘스, 케빈 브라운, 후안 곤잘레스, 마크 맥과이어 등 하나같이 당대 최고의 몸값을 뽐내며 흥행을 이끌고 있는 슈퍼스타들이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MLB의 흑역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2013년 제2의 미첼 리포트라고 불리는 ‘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을 통해 슈퍼스타의 교과서라 칭송받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PED 파문에 휩싸여 2014년 정규시즌 전경기 출장금지를 선고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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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이란 무엇일까?
‘도핑(Doping)’이란 말의 어원을 살펴보자면, 식민지 시대 네덜란드에 노예로 끌려온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종교행사에서 흥분제로 사용한 독한 술(dop)이 그 시작이며, ‘도핑 테스트’란 용어는 도박성 경마 경기에서 경주마에게 아편과 마약류의 혼합물(doping)을 복용시켜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이후 말의 배설물을 받아 검사를 하던 제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1960년 로마 하계 올림픽에서 덴마크의 ‘크누드 에네마르크 옌센’이라는 사이클 선수가 경기 도중 넘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검시관들은 그가 암페타민과 니코티닐 알코올을 복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듬해 사인이 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더운 날씨에 의한 것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되며 고인과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게 된 일화가 있다. 여하튼 옌센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67년 도핑에 관한 의무분과위원회를 설립하고, 1968년 프랑스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 최초로 도핑 테스트가 정례화가 되었다. IOC에 의하면, 도핑의 정의는 ‘1) 선수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있고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물질이나 방법의 사용 또는 2) 금지 물질의 선수 신체 내 존재나 사용에 대한 증거, 3) 금지 방법의 사용에 대한 증거’이다.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 Doping Agent, WADA)에 의하면 대표적인 상시 금지약물 및 경기 기간 중 금지 약물로는 동화 작용제, 성장호르몬 및 관련 약물, 호르몬 길항제 및 변조제, 이뇨제, 흥분제, 마약류 등이 있다. 대표적으로 동화작용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우리 몸에 주입 시 근육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피로를 빠르게 회복시켜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게 되며, 장기간 복용 시 고환 위축과 발기 부전, 심혈관 장애를 일으켜 선수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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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핑을 할까?
‘스포츠(sports)’란 용어는 고대 영어의 ‘흥겹게 놀다(disport)’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래는 흥겹게 노는 행위를 통해 삶의 활력을 돋우고, 인간성과 사회성을 키우는 활동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스포츠는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단순히 승리의 기쁨이나 국위 선양의 명예 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성공만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행해질 우려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태초에 에덴의 뱀의 유혹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먹고 영원히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처럼, 초월적인 힘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지극히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욕구이며, ‘도핑(doping)’을 향한 유혹은 이렇게 오래 전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하면 억지일까? 1988년 서울올림픽 100미터 단거리에서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손에 쥐었으나 3일만에 도핑이 적발되었던 비운의 육상스타 벤 존슨은 2015년 일본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치 또는 매니저가 “걱정 말고 뛰기만 해라”며 약물을 권하면, 선수의 입장에서는 유혹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한, “물론 선수가 ‘싫다’고 거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그리고 반드시 우승하고 싶다면 "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한 바 있다.

2016~2017년 3월까지 PED를 사용하여 적발된 메이저리거는 9명, 같은 기간에 적발된 마이너리거는 놀랍게도 73명이라고 한다. 마이너리거들은 천문학적인 메이저리거의 수입에 비해 턱없이 적은 박봉을 받으며 빈곤층의 삶을 살고 있다. 문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우고 있는 선수들에게, 금단의 열매의 유혹은 몹시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당한 스포츠 정신을 훼손시키고 선수 본인과 타인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도핑을 찬성할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고, 필자 또한 선수들의 PED 사용에 대해 옹호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맹목적인 승리만을 쫒는 현재의 스포츠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을 해보고, 선수들이 유혹에 약해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열악한 처우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 박진영 네온정형외과 박진영 원장

[박진영 원장]
(현)박진영 네온정형외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학박사
KBO팀닥터 협의회 초대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rean Olympic Committee) 의무위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팀닥터
대한야구협회(Korea Baseball Organization) 실행위원
세계견주관절학회 이사​ (IBSES)
대한정형외과초음파학회 회장
대한견-주관절학회, 회장 역임
대한스포츠학회 상근부회장 역임
미국 견-주관절학회, 국제회원
제13차 세계견주관학술대회 조직위원장
제 4차 아시아 견관절학회 조직위원회 학술위원장
건국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역임​
EBS ‘명의’ 2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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