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쿠엔틴 타란티노의 9번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개봉됐다. 각 관객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맥락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가 컬트에서 최고점을 찍었다는 데 이견은 없을 듯하다.

데이빗 린치 감독에 대해서는 모두 높은 평가를 내리지만 상업적 형식에 익숙한 다수 관객은 그의 영화를 외면한다. 현실과 환상이 뒤죽박죽이고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플롯은 147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경험하고 나면 ‘도대체 뭐가 뭐란 얘기지?’라는 의문이 들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플롯은 불친절한 전반과 비로소 의문이 해소되는 후반의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전반. 교통사고로 기억을 상실한 리타가 한 고급 빌라에 숨는다. 캐나다에서 할리우드 배우를 꿈꾸던 베티는 유명 배우인 이모의 주선으로 오디션 기회를 잡고 촬영으로 비운 이모의 고급 빌라에 머무는 행운을 쥔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친구에서 연인이 되고 베티는 유명 감독 아담의 관심도 무시한 채 리타와 함께 그녀의 정체를 밝히는 데 전력한다. 후반. 여배우 카밀라와 다이앤은 영화에서 알게 된 동성 연인이다. 카밀라는 승승장구하며 유명 감독 아담과 약혼을 발표하지만 다이앤은 여전히 무명이다.

분노한 다이앤은 싸구려 킬러에게 카밀라 살해를 의뢰한다. 집에서 울면서 자위행위를 하던 다이앤은 환각을 보고, 결국 자살한다. 후반은 현실이고, 전반은 그녀가 죽기 직전, 혹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환상, 즉 마지막 남은 의식이 만들어낸 판타지다. 죽은 카밀라도 동참했을 듯하다.

베티는 다이앤이고 리타는 카밀라다. 다이앤은 그렇게 예쁘지도, 연기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지저분한 골초에 남성에게 관심 없는 동성애자인데 반해 카밀라는 세련되고 매력적이다. 양성애자에 계산이 빠르긴 하지만. 전반에 아담은 유력자의 캐스팅 압력을 거부했다 파산하고 집에서 쫓겨난다.

그는 카우보이라는 신비한 킬러를 만난 뒤 마음을 고쳐 마피아의 캐스팅 요구를 받아들인다. 얽히고설킨 연예계의 이권다툼과 방탕한 성생활을 통해 할리우드의 추악한 이면을 비판하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사랑마저도 거짓으로 위장한 채 이권만 추구하는 걸 폭로한다.

이 영화가 혼란스러운 건 감독이 오직 자신의 생각만으로 밀어붙일 뿐 당최 관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라곤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트로는 1960년대쯤으로 보이는 복장의 젊은 남녀 커플들이 지터벅을 추고, 다이앤과 카밀라가 오버랩 된다. 화려한 듯하지만 관능으로 끈적거리는 할리우드.

곧바로 늦은 밤 고급 세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달리는데 갑자기 앞의 남자가 뒷자리의 카밀라에게 총을 겨눈 뒤 내리라고 명령한다. 그 순간 뒤따르던 폭주족의 차가 추돌한다. 유일하게 생존한 카밀라는 숲속을 가로질러 고급 빌라로 들어간다. 곧이어 다이앤이 등장하고 그들은 친구가 된다.

다이앤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카밀라의 정체를 찾아주기 위해 성공의 길도 마다한 채 수사에 앞장선다. 카밀라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곳은 빌라와는 전혀 다른 허름한 아파트. 12호로 갔더니 웬 여자가 자신이 살던 17호와 집을 바꿨다고 한다. 거기 들어가니 오래된 한 여자 시체가 있다.

이건 모두 다이앤이 오르가슴을 느끼며 만든 가상의 세계, 혹은 자살 후 저승으로 가는 길에서 꿈꾸는 환각이다. 현실의 그녀는 전반부의 설정과 모두 정반대다. 다이앤은 짧은 금발에 단정한 스타일이고, 카밀라는 육감적인 긴 흑발이다. 카밀라는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짧은 금발의 가발을 쓴다.

그건 현실에서 카밀라에게 버림받고, 영원히 무명배우인 다이앤의 자격지심이 만든 환상의 세계다. 환각 속에서 카밀라는 한밤에 갑자기 다이앤을 끌어내 신비스러운 공연장에 데리고 간다. 공연의 이름은 사일런스다. 은밀한 할리우드에선 입조심을 하라는 얘기인데 인생도 그렇다는 중첩의 의미.

그런데 공연엔 악단이 없음에도 화려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펼쳐진다. 퇴폐적인 여가수가 찐득거리는 노래를 부르는데 립싱크다. 마술사와 연주자가 등장하지만 그들의 공연은 죄다 눈속임이다. 할리우드의 모든 게 그럴듯한 포장, 부질없는 연기 같은 것이라는, 모두 Smoke고 Acting이라는.

그렇다면 린치 감독은 쉬운 얘기를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그의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독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부터 대표작 ‘블루 벨벳’까지 기괴하다. 실화를 모티프로 한 ‘엘리펀트 맨’이 그의 작품 중 비교적 쉽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게 아닐까?

리타 헤이워드의 매력이 넘실대는 찰스 비더 감독의 고전 ‘길다’ 포스터가 미장센으로 걸린다. 팜 파탈의 대표적 누아르를 차용한 것은 이 영화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암시다. 또 카밀라의 고딕적 파란 열쇠와 다이앤의 빈티지 파란 열쇠의 대비도 그녀들의 뚜렷하게 다른 현실과 운명을 은유한다.

전반의 모든 게 다이앤의 환상이지만 등장인물들은 실제 캐릭터만 다를 뿐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환상 속 빌라의 지배인 코코가 사실은 아담의 어머니인 식이다. 하지만 카우보이만큼은 가공의 인물이다. 그의 “태도가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할리우드 유명인들의 건방진 태도를 비판하는 주제.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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