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라이프’, 인터스텔라에서 인류의 미래 묻는 SF아트버스터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19.10.22l수정2019.10.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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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누벨바그를 잇는 아티스트 클레어 드니는 ‘하이 라이프’를 통해 다윈(‘종의 기원’), 스탠리 큐브릭(‘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솔라리스’) 등과의 반대편에서 종의 종착역을 묻는다. 정부는 몬테(로버트 패틴슨), 딥스(줄리엣 비노쉬) 박사 등 사형수들을 태양계 밖으로 보낸다.

딥스는 자식과 남편을 죽였고, 몬테는 자신의 애완견을 죽인 여동생을 죽였다. 그들의 임무는 우주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블랙홀로 가 에너지를 채취해 귀환하는 것. 딥스는 남자 승무원들의 정액을 적출하고 암에 걸린 찬드라는 딥스의 몸을 탐낸다.

우주선의 지도자는 딥스다. 폐경기를 지난 그녀는 젊은 여자들의 임신을 계속 시도하고, 자신은 자위의 방에서 성욕을 충족한다. 우주선에서의 성관계는 금지돼있다. 다른 남자들도 자위의 방을 수시로 이용하지만 몬테는 욕망을 거부하는데 어느 날 딥스가 그의 정액을 채취해 보이스에게 주입한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은 감돌았지만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는 듯했던 내부의 기류가 한밤의 강간미수 사건으로 돌변한다. 한 남자가 보이스를 강간하려다 다른 여자들에게 들키고 그가 흑인 여자를 죽이자 내부에 폭동이 일어난다. 과연 우주선 안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자연법칙이 중요하다.

리들리 스콧은 인류의 기원을 찾아 먼 우주로 날아가서 에이리언의 진화만 확인했다(‘프로메테우스’)면 드니는 인터스텔라와 우주선의 모든 클리셰를 무시한 채 인류의 미래를 엿본다. 다윈은 자연선택(혹은 자연도태)으로 ‘종의 기원’을 밝히고, 에드워드 윌슨은 후성규칙으로 진화론을 뒷받침했다.

이에 비해 드니는 철저하게 종의 내일을 묻는다. 우주선은 지구와 같은 하나의 세계다. 딥스 같은 학자도, 몬테 같은 정의로운 인물도, 보이스 같은 순결한 여자도 모두 죄인이다. 즉, 인류는 모두 죄인이다. 에덴동산의 뱀이자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같은 딥스는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는 이단이다.

그녀는 과할 정도로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행위를 즐긴다. 머리는 권위의식을 상징한다. 배에 수술 자국이 있는 건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스신화의 3대 마녀로 불리는 메데이아의 상징이다. 남자를 위해 아버지를 배신하더니 그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을 잔인하게 살해한.

그래서 그녀는 “난 내 죄와 함께 혼자 산다”라고 뇌까린다. 에덴동산에 뱀은 한 마리였고 판도라 역시 한 명이었다. 딥스는 자는 여자들의 팔을 침대에 묶어놓는다. 여자 지도자가 여자에게 더 폭압적인 설정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우스갯소리와 딱 들어맞는다. 몰래 보이스를 임신시키는 것도.

보이스는 성모 마리아다. 육체적인 관계 없이 윌로를 잉태하고 출산한다. 우주선이 한바탕 난리를 겪고 난 뒤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던 몬테는 이제 자신과 함께 생존한 윌로와 살아나가기 위해 제일 먼저 동료들의 장례식을 치러준다. 시신들은 여느 SF물과 달리 부유하는 게 아니라 가라앉는다.

그건 속세에서 얻은 모든 가시떨기를 털어버리고 창조주가 만든 궁창으로 되돌아가는 의식에 가깝다. 보이스가 스스로 불잉걸 같은 파괴의 공간으로 뛰어드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 본인이 원치 않았던 임신과 출산이지만 어쨌든 그녀는 인류에게 희망을 안겼다. 역할을 끝낸 그녀의 선택은 희생이다.

태양계 밖을 떠도는 몬테의 우주선은 7호. 어느 날 9호를 발견한다. 그들보다 나중에 발사된 우주선이다. 그 안엔 늑대처럼 사나워진 개, 강아지, 그리고 개의 사체들만 있다.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디스토피아의 극대화다. 몬테는 개에게 자랐다고 말한다. 인간이 개만도 못해지는 세상이 온다.

이 작품이 펼치는 삶, 죽음, 그리고 시간에 관한 인식론에서 몬테가 거론하는 펜로즈 과정은 중요하다. 흔히 모든 걸 빨아들인다고 알려진 블랙홀이 에너지 같은 걸 내줄 수도 있다는 게 로저 펜로즈의 이론이다. 7호, 9호 등 우주선이 계속 태양계 밖으로 발사되는 이유는 ‘인터스텔라’와 유사한 것.

지구의 에너지는 고갈됐고, 환경 파괴로 출산율이 현저하게 낮아져 인류에게 위기가 닥쳤다. 블랙홀을 이용해 발전소를 구축해야 하고, 지구보다 환경이 나은 행성으로 사람들을 이주시켜 인류의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몬테 등이 힘들 때면 인공정원을 찾는 게 지구의 생명이 다된 걸 암시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과거 일의 현재는 기억, 현재 일의 현재는 직관, 미래 일의 현재는 기대’, ‘시간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로부터 와서, 연장을 가지지 않는 현재를 거쳐,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로 들어가 버린다’고 했다. 수십 년 전 지구에서 보낸 필름을 보는 윌로가 그렇다.

그녀는 특별한 교육도 안 받고 초경을 할 만큼 성장했다. 기도하는 그녀에게 몬테는 “어느 신에게 기도하는 거니? 기도할 신이나 아니?”라고 묻는다. 그녀는 신을 느끼려고 기도한 게 아니라 지구인들이 뭐가 절실해 기도를 하고, 기도를 통해 뭘 느끼는지 알고 싶어 기도한 것이다. 시공간의 초월.

몬테는 “앞으로 가는데 뒤로 가는 듯하고, 멀어지는데 가까워지는 듯하다”고 말한다.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는 ‘우릴 위한 모래톱(안식처, 서식지)이 이 우주에 있을까?’라고 묻는다. 부녀는 ‘우린 표류할 운명, 이제 갈까?’라며 ‘새’ 길을 떠난다. 심오한 만큼 여운도 길다. 3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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