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여성 주도 미래 혁명의 서막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19.10.23l수정2019.10.2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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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팀 밀러 감독)는 재미와 철학을 동시에 갖춘 SF액션의 기념비적인 ‘터미네이터’(1984)의 6번째 얘기다. 1편에선 미래에서 온 카일 리스가 사라 코너를 구한 뒤 미래의 지도자 존을 잉태하게 하고, 2편에선 터미네이터 T-800 모델이 존과 사라를 T-1000로부터 구해줬다.

스토리는 리부트돼 1998년 과테말라 해변으로 돌아간다. 존과 함께 이곳으로 도망쳐 온 사라. 그러나 101 모델이 존을 제거하는 걸 눈앞에서 목도한다. 22년 후 멕시코시티. 대니(나탈리아 레이즈)는 남동생 디에고와 함께 공장에 출근한다. 조금 전에 봤던 아버지가 도시락을 두고 갔다며 나타난다.

그는 미래에서 온 최첨단 터미네이터 Rev-9. 위기의 순간 미래 저항군의 강화 전사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가 나타나 Rev-9을 일시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든 뒤 남매를 데리고 도망가지만 다리 위에서 붙잡힌다. 그 순간 사라가 나타나 그들을 돕고, 그레이스는 사라의 차에 대니를 태워 도망간다.

신진대사를 단시간에 폭발시킨 그레이스는 갑자기 무기력해진다. 둘은 마을 약국으로 들어가 항경련제 등 약품을 챙겨 나오고, 뒤따라온 사라와 조우한다. 그레이스는 어떻게 그 다리를 정확히 알았냐고 묻고는 자신을 돕는 이와 사라에게 정보를 주는 이가 동일 인물임을 깨닫고 함께 그를 찾아간다.

제임스 캐머런이 연출한 1, 2편이 흥행에 성공하고 평단에서도 극찬을 받았다면 후속작들은 기대치의 아래를 배회했다. 캐머런이 제작자로 복귀한 이번 작품은 1, 2편의 소스와 내러티브를 잇고 4편(‘미래 전쟁의 시작’)의 누아르 분위기를 차용하며 동양 무술의 아이디어를 가미해 재미를 보강했다.

Rev-9은 나노 터미네이터 T-3000보다 한층 강화됐는데 자아를 갖춘 전 모델을 넘어서 도덕성까지 갖췄다. 임무를 위해 무조건 파괴와 살상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목표물만 노린다. 사과할 줄 알고, 약자를 보호할 줄도 안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내골격과 외형을 분리하는 자기복제 기술이다.

이는 중국 무협지의 기문둔갑을 넘는 분신술의 일종인데 손오공의 머리카락 분신술이 눈속임이라면 Rev-9의 그것은 진짜 전투력인 과학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시퀀스는 인공지능이 거의 인간과 같은 단계로 진화한 만큼 인간 역시 기계와의 적당한 타협을 통해 기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그레이스는 ‘공각기동대’의 메이저로 가는 과정에 있다. 아직 전뇌 이식까지는 안 갔지만 각종 강화 수술을 통해 사이보그에 가까운 신체를 지닌 슈퍼 솔저로 진화했다. 사람은 혈액순환과 호흡을 통해 산다. 그녀도 유사하지만 사람과 다른 점은 ‘동력원’이 따로 있다는 데서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렇듯 개체의 인류애를 부각하면서도 육체적 기계성으로 이동했다면 기계에겐 인간미를 부여했다는 게 큰 특징이다. 사라의 맹활약으로 스카이넷의 명령은 무용지물이 됐지만 101은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지령을 완수하려고 존을 제거, 사라의 가슴에 상처를 줌으로써 터미네이터 킬러로 만들었다.

그 후 그에겐 양심 ‘같은’ 게 생겼다. 그래서 인간다워지기 위해 무던히도 학습을 했다. 아직 눈물이 안 흐르고, 사랑이 뭔지 확실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들었고, 그를 지켜야 한다는 애착은 생겼다. 지난 세월 인간의 탈을 쓰고 살면서 인간이 어떤 존재자인지 웬만큼 깨달았다.

3편이 어설프게 섹시한 ‘여성’ 터미네이터를 내세워 혹평만 받았다면 이 작품은 나름대로 인상 깊은 여성 주도 작품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레이스는 극강의 전투력을 갖춘 전사이긴 하지만 Rev-9을 이길 순 없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과장하지 않고 여성적 한계를 인정하는 페미니즘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평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인권에 대한 현명한 시각이다. 남자들은 성모 마리아 숭배사상과 마돈나 신드롬의 이중성을 동시에 지니기 마련이다. 사라는 전형적인 남성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외경심과 남성우월주의의 산물이다. 자신이 될 수 없는 영웅을 바라는 심리적 대상화다.

자신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바라는 구원자나 선지자는 반드시 남성이어야 하고 그 지도자를 낳을 순결하고 고귀한 어머니가 필요한 것. 적어도 1~2편은 그랬다. 나약했던 사라는 카일을 만나 T-800와 사투를 치르면서 여전사로 거듭났다. 대니 역시 유사하지만 차원을 더 넘어선다는 게 돋보인다.

미래의 그레이스와 현재의 대니는 서로의 스승이자 상대적 거울이다. Rev-9에게 아버지와 동생이 희생되자 시신도 수습 못했다며 징징 짜는 대니에게 그레이스는 “장례식은 망자들에게, 작별인사는 네게 각각 도움이 안 돼”라고 충고한다. 대니는 후에 “미래엔 관심 없어, 오직 현재”라고 깨닫는다.

그레이스는 대니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린다. 칭얼대던 대니는 어느새 자립적 여성상을 보여준다. “더 이상 숨을 생각 없다”며 Rev-9과의 정면대결을 선언하는 것. 그건 여성의 적극적 사회 참여에 대한 테제다. 그녀들은 “운명은 없다. 개척하는 것”이라며 여성에 의한 혁명을 외친다.

시간의 어그러짐이란 시리즈 특유의 철학이 살아있고, 그 중심에 선 멋있게 늙은 린다 해밀턴과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복귀가 반갑다. 시리즈 중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2편의 빌런 T-1000를 추억하게 만드는 Rev-9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단 제목처럼 인류의 운명은 어둡다. 128분. 3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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