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아가사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 도일을 떠올리지만 ‘나이브스 아웃’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와 ‘루퍼’의 라이언 존슨 감독이 각본까지 맡은 독창적인 추리 영화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로 떼돈을 번 작가 할런이 85살 생일 파티를 치른 다음날 자살한 채 발견된다.

할런의 노모, 딸 린다와 사위 리처드와 그들의 아들 랜섬(크리스 에반스), 며느리 조니와 그녀의 딸 메그, 아들 월트와 그의 아들 제이콥, 간병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 가정부 프랜 등이 모두 용의자. 일주일 뒤 지역 경찰과 주 경찰이 유명 탐정 블랑(다니엘 크레이그)과 함께 집을 방문한다.

이 사건을 타살이라 확신하는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고용된 블랑은 수사를 도와 진실을 밝히겠다며 용의자를 한 명씩 불러 신문하는 데 동석한다. 모든 식구들은 무능해서 할런의 돈과 명성에 의지해 살아왔다. 파티 당일 할런은 리처드를 불러 바람피운 증거를 제시하며 딸에게 밝히라고 압박했다.

할런의 이름 덕에 승승장구하는 출판사에서 근무해온 월터는 아버지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고, 랜섬도 돈 문제로 할런과 크게 다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할런의 아들과 사별한 조니는 그동안 할런에게 모든 생활비와 메그의 학비를 받아왔는데 이중으로 받아온 게 드러나 지급 중단을 통보받았다.

메그와 친분이 깊은 마르타는 파라과이 출신 이민자로 엄마는 불법 체류자다. 할런이 직접 고용했던 만큼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침 블랑은 형사였던 아버지와 고인이 생전에 친했던 인연이 있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수사를 하며 마르타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고인은 죽기 일주일 전 갑자기 유언장의 내용을 바꿨다. 변호사가 그 내용을 밝히자 모든 가족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블랑은 마르타의 증언으로 용의자 일부의 알리바이의 내막을 차근차근 밝혀나가는 와중에 그녀에게서도 미심쩍은 정황들을 감지하고, 랜섬은 갑자기 그녀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식물이 생존을 위해 유해 물질을 분비하면 채식동물이 그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거나 다른 묘책을 고안해내듯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작가와 감독의 아이디어도 더욱 기발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 꼭대기에 올랐다. 우선 크레이그와 아르마스의 연기력이 스릴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다.

크레이그는 이젠 누가 뭐래도 ‘007’의 흥행 파괴력이나 제임스 본드의 존재감이란 배경 없이 연기력만으로도 한몫 단단히 해내는 배우다. 내년에 개봉될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그와 만나는 아르마스 역시 ‘블레이드 러너 2049’와는 확연히 다른 배우로서의 자존감을 뿜으며 제 역할을 해낸다.

할런의 대저택 겉모습이나 내부 인테리어,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분히 영국적이다. 자본주의와 보수주의를 비웃는 방식은 통렬하고 영악하다. 할런은 성공했지만 ‘자식농사’는 실패했다. ‘손주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랜섬은 망나니고, 16살의 제이콥은 보수적이다 못해 나치즘 신봉자다.

무기력한 그들은 할런에게 빌붙어 지금까지 안락한 생활을 영위해왔다. 할런은 마르타를 직접 고용했는데 간병인보다 친구가 더 절실했다고 그 이유를 댄다. 프랜은 남이지만 누구보다 할런을 인간적으로 대했다. 즉 할런은 성공한 미국이고, 그 자식들은 ‘아메리칸드림’에 도취한 미국인이다.

‘개는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할 줄 안다’며 현대인의 표리부동한 면모를 꼬집고, ‘왜 남자는 본능적으로 낙하산의 실밥을 잡아당길까?’라며 남자의 어리석음을 힐난한다. 할런은 아예 대놓고 “내가 준 돈이 자식들의 성장을 막았다”고 후회한다. 또 “나처럼 어리석은 놈”이라며 안타까워한다.

파라과이 출신의 마르타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을 환유한다. 범죄자나 ‘루저’도 꽤 포함됐던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그녀를 폄하하고 겁박하며 회유하는 시퀀스에 대표적인 영국 출신의 크레이그를 최고의 사립탐정으로 내세워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세우는 플롯은 그래서 노골적이다.

마르타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하는 특이 체질이다. 16세기 스페인의 피사로가 불과 200명도 안 되는 군대를 이끌고 인구 1000만 명에 8만 명 군대의 잉카 제국을 손쉽게 멸절시킨 역사의 비유. 태양신 군대의 도래를 믿은 잉카인은 처음 보는 말과 총으로 무장한 스페인 군대를 신으로 여겼다.

코르테스도 침략의 논리로 순수한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제국주의는 일격필살을 주문했지만 아즈텍 군대는 적을 포로로 잡기 위해 살생을 하지 않아 패했다. 셜록 홈스가 연상되는 블랑은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나는 마르타의 체질을 이용해 가족들의 숨겨진 진실을 하나하나 파헤쳐 간다.

블랑은 흰색이자 중세~근대 프랑스의 화폐다. 그는 스스로 ‘별로 탐정답지 못한 탐정’이라고 고백한다. 깨끗한 진실(흰색)과 자본주의(화폐)는 공존이 가능한 걸까? 저택 외부는 을씨년스럽고 내부의 인형과 마스크 등 장식물들은 그로테스크하다. 특히 수없이 많은 단검들로 구성된 조형물은 섬뜩하다.

‘발검’이란 제목은 우리의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라는 속담에 ‘살의와 분노 등의 폭발’까지 포함한다. ‘증거는 한 입으로 두말한다’와 ‘예외가 있어야 법칙’이라는 대사는 세상만사는 아이러니컬하다는 의미. 마트료시카와 카논을 환유하는 도넛을 거론한 것도 마찬가지. 내달 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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