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파바로티’는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론 하워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너라고 평가받는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를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오페라 팬이라면 록 팬들의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보석이 될 것이고, 오페라를 몰랐다면 이를 계기로 푹 빠질 것이다.

파바로티 혹은 지인들이 캠코더로 찍은 1995년 브라질의 아마존부터 시작되며 100년 전 엔리코 카로스가 노래했던 무대에 그가 서게 되는 감격을 보고한다. 전처 및 그녀와의 사이에 낳은 세 딸을 비롯해 복수의 매니저 등 업무상 측근들, 그리고 U2의 보노까지의 인터뷰를 통해 그를 회상한다.

20세기 초에 엔리코 카루소가 오페라의 황금시대를 개막했다면 파바로티는 오페라의 대중화와 테너의 신격화의 역사를 썼다. 그는 퀸, U2, 스티비 원더, 엘튼 존, 스팅, 본 조비, 에릭 클랩튼, 셀린 디옹, 나탈리 콜, 딥 퍼플, 머라이어 캐리 등 팝계의 내로라하는 72팀의 슈퍼스타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그건 그가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을 다 모을 만큼의 영향력과 지명도를 갖췄다는 증거다. 그는 제빵사면서 뛰어난 테너 가수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음악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1961년 4월 29일 레조 에밀리아 극장에서 ‘라 보엠’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파바로티의 음악 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악보를 볼 줄 몰랐고 연기력도 별로인 데다가 대본까지 잘 외우지 못했다. 그러나 절대음감을 가졌고 목으로 정확한 음을 낼 줄 알았다. 무엇보다 ‘가슴에서 나오는 가장 높은 도’라는 ‘하이 C’ 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매우 특별한 가창력을 지녔기에 ‘하이 C의 제왕’이라 불렸다.

이 작품이 빛나는 건 파바로티라는 걸출한 가수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더욱더 대중적인 팝스타들과 만든 ‘파바로티와 친구들’과 당대 최고의 3대 테너라 불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쓰리 테너’라는 각별한 기획 상품을 만든 걸 보여준 라이브를 방불케 하는 시퀀스다.

‘쓰리 테너’에 대해 고루한 사람들은 TV에 중계된 이유를 들어 클래식의 품위를 깨뜨렸다는 혹평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성공한 이유는 그런 자유로운 상상력과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방식을 탁월한 홍보력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무비 스타를 방불케 했다.

하얀 손수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다. 미국에 진출할 당시 그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해했고, 매니저의 조언을 받아 손수건으로 그걸 해소한 뒤 시그니처가 됐다. 몸매에서 보듯 그는 먹는 걸 좋아했다. 미국의 TV에 출연해 스파게티를 만드는 ‘먹방’을 했으니 클래식계가 싫어할 만도.

1980년대 소프라노 메들린 르네와 스캔들이 있었고 2003년 12월에 개인비서인 35살 연하의 니콜레타 만토바니와 재혼했다. 니콜레타는 남녀 쌍둥이를 임신했으나 딸 알리체만 살아남고 아들이 사산하는 아픔도 겪는다. 2007년 9월 6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의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눈을 감았다.

니콜레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파바로티에게 알리체를 위해 뭔가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는 “자유를 주기 위해 어떤 것도 주입하기 싫다”며 거부한다. 그는 대중적인 스타였지만 하얀 손수건의 에피소드에서 보듯 대중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해 공연 전 항상 죽으러 간다고 엄살을 부렸다.

여성 편력은 이력에 오점일 수 있겠지만 순수했거나 사회성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데카레코드 전속인 그는 아내 명의로 음반사를 설립하고 녹음을 했다. 데카를 인수한 폴리그램에서 깜짝 놀라 그에 대해 항의했더니 그게 계약 위반인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 계산이란 걸 해본 적이 없을 테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번 그는 기부와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한 행사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또 다이애나 왕세자비와의 각별한 우정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00년 후 오페라를 친근하게 만든 사람, 용감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희망했다. 특히 그는 사람을 잘 믿는 것으로 유명했다.

1년 내내 세계 각국을 떠돌며 공연을 다녔던 그는 가족과 떨어져 있기에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늘 유쾌하고 행복한 듯했지만 혼자 있는 걸 진저리칠 만큼 싫어했기에 고독과 싸웠다는 게 스크린 한 구석에서 버퍼링처럼 흐른다. 그는 예술가이자 예술로 대중을 즐겁게 해준 엔터테이너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라는 게 애초부터 재미가 목적이 아니라 기록이 우선이다. 또 감독의 의도에 따라 선전과 계몽이 개입한다. 이 작품에서 파바로티를 미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스타라는 걸 떠나서 열심히 제 인생을 살다 간 하나의 사람으로 기준했을 때 연민과 감동이 느껴지는 건 맞다.

이 작품은 극장에서 오페라를 즐기고, 공연장의 콘서트를 만끽하는 듯한 황홀경이 장점이라면 경건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클래식의 거장이 여성 편력으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35살 차이의 비서와 재혼한 도덕적 문제에 논란의 여지도 있다. 과연 그는 자기애를 실현한 걸까, 자아가 추락한 걸까?

위선이 가두판매대를 점령했고, 편협한 매스미디어가 개념을 진두지휘하는 이 세상에서 파바로티의 삶은 실존을 추구한 차라투스트라의 위버멘시를 향한 의지의 궁극일까, 명성과 부를 이용한 늙은 여우의 황홀경의 추구일까? 예술은 보이되 권력에의 의지는 없는 그의 삶이다. 내년 1월 1일 개봉.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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