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시리아 아랍 공화국 약칭 시리아(수리야)의 수도는 다마스쿠스이다. 북쪽은 터키, 동쪽은 이라크, 남쪽은 요르단 및 이스라엘, 서쪽은 레바논과 국경을 접하며 서쪽은 지중해와 경계를 이룬다. 골란 고원은 국제적으로 시리아의 영토로 인정되었으나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남북길이는 500km, 동서길이는 470km에 이른다.

유럽과 아시아 중간 요충지 시리아는 서부에서 동부까지 지리적으로 연안지대, 산악지대, 사막지대로 나뉜다. 터키와 레바논 사이의 연안지대는 남북으로 180km, 너비는 북쪽 3km, 남쪽 19km인데, 많은 샘과 지하수로 집약농경이 이루어져 인구밀도가 높다. 산악지대는 해안과 평행한 600∼900m정도인 북서부 지역 안누사이리야(알라위테) 산맥과 고도가 1,800∼2,100m인 남서부의 앗샤르키(안티레바논) 산맥이 있다. 최고봉은 남서부 헤르몬 산이다. 산악지대의 오른테스 강은 안누사이리야 산맥 동쪽의 가브 저지를 통과해 북쪽으로 흐른다. 사막 지대는 중동부 바위와 자갈의 스텝 지대와 남쪽 끝의 두루즈 산과 시리아 사막으로 구성된다. 동부를 가로질러 이라크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은 중요한 수원이며 배가 다니는 유일한 강으로, 북쪽의 유프라테스 댐 등 관개공사로 강변에 목화, 곡물, 과일을 경작한다. 스텝 지대에 산사나무가 드물게 있고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는 대추야자나무,  레몬나무와 오렌지나무가 있다.

시리아 기후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비가 많은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로 해안평야는 강수량이 많고 여름에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동쪽의 중심부로 갈수록 건조한 내륙성 기후로 밤낮의 온도차가 크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 고온, 건조한 사막기후다. 고지대는 겨울에 눈이 가끔 내린다. 서부지역 평균기온은 1월 13℃ 8월 27℃며, 동부지역은 5∼40℃다. 연간 강우량은 서부 760∼1,270㎜, 스텝 지대 500㎜, 남동부 125㎜로 다양하다. 먼지, 모래폭풍 등과 같은 자연재해가 나타난다.

주요 도시로는 남서부의 다마스쿠스, 북부의 알레포와 홈스가 있다. 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지중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최초 시리아 거주민은 B.C 10000년경 수렵채집민인 나투피아인들로 추정된다. 아카드의 사르곤 1세 시대(B.C 2334∼2279)에 아카드 문명이 나타났으나 B.C 2000∼1800년경 유목민족인 아모리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B.C 16∼15세기에는 이집트인들과 후리안인들이 이 지역을 놓고 싸웠다. B.C 14~12세기 히타이트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B.C 8세기에 아시리아에 종속되었다. B.C 7세기 바빌로니아 속국이 아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렸으나 B.C 538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정복했다. B.C 333년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B.C 301년부터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그리고 B.C 164년부터 파르티아인과 나바테아인에게 점령되었다.

B.C 64년 로마 폼페이우스가 안티오키아를 점령하며 로마 제국에 귀속되었다. 로마의 가장 부유한 주였던 시리아는 AD 300년 비잔티움으로 넘어갔다. 비잔티움 시대는 634년 이슬람교도들의 침략 전까지 시리아의 황금기였다. 877년 이집트 툴룬 왕조에 병합되어 6세기 이상 지배를 받았다. 1260년 몽골에 점령되었으나 바이바르스가 이들을 몰아내며 맘무크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1516년부터 시리아는 오스만 투르크에게 300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게 점령되었고 전쟁 후 1920년 시리아 아랍왕국을 선언하였으나 몇 개월 뒤 마이살룬 전투 패배로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았다. 1925년 인민당이 결성되어 시리아의 독립과 민족의 단결을 위해 애썼다.

1936년 조약으로 알라위테파와 드루즈파의 영토를 포함한 시리아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한 독립쟁취를 못하고 비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곧이어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시리아를 점령했으며 1941년 독립이 선포되었지만 1944년 프랑스로부터 실질적 독립을 했고, 1946년 프랑스는 철수했다. 1943년 선거로 슈카리 알 쿠와틀리가 대통령이 됐지만 1949년 무혈 쿠데타로 무너졌다. 쿠데타 세력 역시 1954년 쿠데타로 무너졌는데, 이 새로운 정권은 1958년 이집트와 아랍연합 공화국을 결성했지만 견해가 커 1961년 바트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랍연합 공화국에서 탈퇴했고, 1964년 바트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됐다.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참여했지만 골란 고원을 빼앗겼다. 알라위파(시아파) 출신 하피즈 알 아사드 장군이 1970년 쿠테타로 총리가 된 후 197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0년대 중반 시리아는 내전 레바논의 질서를 위해 군대 약 2만 명을 파견했다. 1982년 수니파의 봉기가 일어나자 그는 수니파 근거지 하마를 유혈 진압해 8만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그는 2000년까지 재임하다 죽었고,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가 바트당과 군부의 지지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초기 민주주의의 실현과 국가 개혁을 선언하여 "다마스커스의 봄"이라는 정치적 해금을 낳았다.

하지만 정치발전은 없었고, 2007년 단독 후보로 대통령에 재선되어 현재까지 재임한다. 이들 부자의 장기 집권은 강력한 반대를 촉발했다. 2011년 3월 시위가 발생하며 내전이 진행됐고, 군대가 유혈 진압하며 무장 반군의 폭동으로 발전했다. 초기 내전이 집권 세력인 시아파와 다수의 수니파 대립 양상이 되자, 이들을 지원하는 인근 국가들의 대리전으로 확대됐다. 다마스쿠스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고, 군부의 이탈도 시작되었다. 내전으로 시리아 경제는 파탄을 맞았고 이슬람 무장단체도 유입됐다. 내전은 시리아 내의 유적지들도 파괴했고 전쟁 난민은 2013년 말까지 1천만명 이상이다.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가 2014년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의 북부를 점령한 후 이슬람국가(IS)를 자처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개입하며 내전은 복잡해졌다. 2016년 내전 중심지 북부 알레포에서 러시아 지원으로 정부군이 반군을 축출하고 연말에 반군이 휴전에 합의하며 내전은 종식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2017년 반군이 반격하며 휴전은 무산됐다. 반군 지역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7년말 IS의 근거지인 라카를 점령하며 IS는 거의 소멸됐다. 2018년 초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이 알려졌고, 4월 미국, 영국과 프랑스는 시리아의 관련 시설을 폭격했다. 시리아는 아직도 불안정하다.

내전으로 경제는 피폐했고, 정부의 장악력이 떨어져 경제에 대한 공식 통계는 2014년 이후 없다. 2016년 GDP는 217억 달러, 1인당 GDP는 1,331달러로 추정된다. 시리아는 농업, 무역, 광업, 제조업에 바탕을 둔 혼합경제체제이다. 민간부문이 농업, 소매업, 일부 경공업의 중심을 이루는 반면 대부분 경제부문은 정부서 관리한다. 농업은 GNP의 1/4 차지 및 노동력의 1/3을 고용한다. 경작지는 지중해 연안과 오론테스,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집중되며 생산량은 강우량 변화에 편차가 크다. 경작지는 전국토의 24.8%, 농경지는 4.5%(2005년)이다. 북동부의 알자지라, 호란 지방이 주요 농경지대다. 환금작물은 외환수입원인 면화, 사탕무, 담배이며 주요 작물은 밀, 보리이다. 토지의 2/3를 차지하는 목초지에서 양, 염소와 기타 가축들을 기른다. 많은 양의 우유, 고기, 계란을 수입에 의존한다.

1959년 석유산업이 국유화되고 1968년부터 석유를 생산했다. 러시아 지원의 중앙석유기구가 석유 탐사 및 생산을 관리한다. 주 유전지대는 수웨이디야, 콰라취, 루매얀, 다이르 앗 자우르, 태옘이다. 이 유전지대는 이라크의 모술과 키르쿠크 유전지대와 이어져있다. 석유는 1974년 이후 주요 수출 자원인데, 내전 발생 후 석유 생산량도 1/30로 줄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적다. 천연가스는 1940년 제베사에서 첫 발견되었다. 석유는 매장량이 적고, 천연 가스, 철광석, 아스팔트, 인회암, 석회암이 있다. 광업을 포함한 제조업은 GNP의 1/8을 차지하며 노동력 중 1/7을 고용한다. 1958∼65년에 여러 중공업부문이 국유화되었으나 1970년 이후 개인투자를 장려한다. 주요 공산품은 직물, 밀가루, 시멘트, 신발, 냉장고 등이며 상당 양의 인산 비료를 생산한다. 전력은 석유로 생산하며 2/5는 수력발전으로 충당한다. 해외 국민들의 송금이 주요 외환수입원이다. 고질적 무역역조를 겪으며 주요 교역대상국은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란 등이다. 수출품은 원유, 천연 가스, 화학제품, 섬유, 의류, 가죽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기계, 설비, 화학제품, 식품이다.

시리아는 대통령 중심 민주공화국이다. 무제한 재선이 가능한 7년 임기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며 2명의 부통령과 수상, 각료 등을 임명한다. 대통령은 군총사령관, 시리아 바트당 총서기, 바트당과 다른 정당들을 포함하는 정치조직인 국민진보전선 의장을 겸한다. 내각은 총리가 이끈다. 입법권은 단원제인 인민회의에 있는데 바트당의 통치기구로서, 임기 4년에 직접 선출되는 195명 의원으로 이루어진다. 최고 사법권은 고등헌법재판소에 있다. 사법부는 대통령이 장인 대법원, 대통령이 임명하는 4년 임기의 법관으로 구성되는 헌법재판소, 폐기법정, 탄원법정, 지방법정, 특별법정이 있다.

남자는 군대에 가는 징병제를 실시하며, 복무 기간은 36개월이었으나 현재는 30개월이다. 군대를 회피하고 싶으면 30만 시리아 파운드(한화 약 6000만원)를 내면 면제를 받는다.

사회복지제도의 범위와 수준은 생계유지에 한정된다. 법으로 노령, 장애, 산재, 유족 연금을 주며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료 의료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2011년 내전 이후 정상적 사회복지제도는 유지되지 않는다. 위생상태는 대체로 나쁘며, 농촌지역은 의료 서비스, 하수처리시설, 음료수 등의 부족이 전염병 발생의 원인이 된다.

6년제 공립 초등학교는 의무 무료교육을 실시한다. 초등학교와 6년제 중등학교 모두 학생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다마스쿠스대학교(1923)와 같은 기관들에게 직업교육, 교원양성교육, 대학교육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주요 인종은 아랍인으로 국민의 90%를 차지하며, 소수 인종은 쿠르드족(9%), 아르메니아인, 투르크인, 체르케스인, 아시리아인이 있다. 내전으로 터전을 잃은 시리아인들 절반이 난민 생활을 한다. 2018년 기준 시리아 인구는 1,828만명이고, 인구의 80%가 도시에 집중되어있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랍어가 아닌 시리아어를 모국어로 쓰기도 한다.  외국어로는 영어가 많이 쓰이며, 프랑스어도 사용되며 기타 쿠르드어, 아르메니아 등도 사용된다.

종교는 이슬람교도가 90%인데, 쿠르드인 포함 이슬람 수니파가 74%, 알라위파 등 이슬람교 시아파가 13%, 드루즈교가 3%, 기독교가 10%이다. 기독교인들은 시리아의 기독교도 지역인 밥투마 지역에 많이 산다. 헌법상 국교를 정하지 않았으나, 대통령은 이슬람교도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아랍의 요충지 ‘시리아(Syria)’는 어디서 유래된 말일까?

‘Syria’는 ‘Assyria’와 동의어인 아카드어 ‘Aššur/ Assur’가 고대 그리스어 ‘Suria(Syria)’가 됐다. 이 말이 라틴어 ‘Syria’가 된 후 최종 정착을 했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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