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설 연휴 극장가의 승자는 단연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감독)이었다. 320만 관객을 훌쩍 넘기며 2위인 ‘히트맨’의 147만 명의 2배가 넘는 스코어를 올렸다. 이 영화는 소재는 무겁고, 주제는 진지하다. 그림의 톤도 어둡다. 유머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고른 계층이 찾고 있다.

이병헌은 “시나리오가 정치적이었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 감독은 “흥분하지 않고 냉철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고자 했다.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가명을 부여했고,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다루지만 주인공들의 내면과 감정에 집중했다”라고 인터뷰에서 각각 이 영화가 정치적 색깔이 거의 없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하 당시)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을 암살한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40일을 담아낸다. 논픽션 서적을 원작으로 하고,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지만 가명을 쓴다. 정치적 색깔을 빼기 위함이다.

또 현실의 전두환인 전두혁(서현우) 보안사령관의 내면은 배제했다. 심지어 말미에 김재규가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켰음에도 다시 전두환이 쿠데타로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내용도 자막으로 간단하게 처리한다. 인터뷰에서 우 감독은 “전두환의 내면은 다루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는데 이 말 속에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 어쨌든 정치색을 빼고자 하는 의도만큼은 확실했다.

이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의 방식과 시선은 다양할 것이지만 영화적 측면에서 봤을 때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심리 누아르 정도 되겠다. 관람한 사람들은 홍콩 누아르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비장미만큼은 고전 누아르 그 어느 명작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고 찬사를 보낸다.

주인공은 김규평(이병헌) 중정부장, 박통(이성민), 곽상천(이희준) 경호실장, 박용각(곽도원) 전 중정부장이다. 용각이 미국에서 박통의 실체를 까발리는 회고록 출간을 선언하자 규평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다. 나름대로 박통을 위해 충성을 다 바쳤다고는 하나 실패하고 상천과의 충성심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그러자 규평은 2인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친구인 용각을 암살한다. 이때부터 서늘한 분위기의 누아르 색채는 빛을 더욱 발한다. 규평과 상천의 박통을 향한 존경심인지 충성심인지 모를 경쟁이 불꽃을 튀길수록 세 사람의 심리전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라앉아 치열하게 속고 속이면서 다툰다.

서초동 집회와 광화문 집회에서 보듯 현재 우리나라의 국론은 건국 이래 가장 치열하게 극단에서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근거할 때 이 영화는 자칫 조금만 기울면 한쪽에선 찬성을, 다른 쪽에선 반대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역사 왜곡이라든가, 정치적 편향이라든가 하는 논란이 거의 없다. 관객들도 담담하게 그냥 영화로서 즐기는 분위기다.

그 비결은 일단 가명을 쓴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요즘 세대에겐 역사책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실명을 피한 게 그런 역사적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또 다른 비결은 첫째 주인공인 규평을 비롯해 두 번째인 박통과 상천 그 누구도 시대적 영웅이나, 극악무도한 악당 등의 극단의 캐릭터로 그리지 않고 그들의 인간미에 비교적 균형을 맞췄다는 데 있다고 풀이된다.

역사적으로 김재규는 최악의 대통령과 그 정권을 무너뜨린 국가적, 국민적 영웅이다. 그런데 군사 재판부는 정권욕에 눈이 먼 또 다른 ‘박정희’로 규정, 사형으로 처단했다. 이 영화는 규평이 영웅이냐, 야심가냐를 규정짓지 않고 절대 권력자의 눈 밖에 나는 것, 그래서 권력에서 소외되는 것이 두려운 한 남자의 심리상태에 집중한다.

또한 김재규가 법정에서 증언한 자신의 진정한 혁명의 의지도 도외시하지 않는다. 그가 거사를 벌이기 전에 부하들에게 국가론을 강조하는 시퀀스다.

박정희는 최악의 독재자다. 그러나 영화에선 그런 면을 부각하는 패착을 범하지 않는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우 감독은 정치적 작가가 되기보다는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영화감독의 노선을 선택했다.

외려 영화 속 박통에게선 언젠가는 스스로 정권에서 내려왔어야 했는데 그 때를 놓쳐 고뇌하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그렇다면 상천이 악역을 맡아야 영화의 구도가 완성된다. 물론 상천은 충분히 악하고, 다혈질이며, 무모하다. 박통에 대한 충성심에서 한밤에 탱크를 몰고 청와대 앞을 질주하는 시퀀스는 군사정권의 무식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게다가 상천은 서열을 떠나 군대 직계 선배인 규평에게 대놓고 하극상을 한다. 하지만 그 수준일 뿐 지나치게 비열한 캐릭터를 부여하는 클리셰의 실수는 범하지 않는다. 상천도 규평처럼 살아남고 싶었고, 2인자 자리를 확고히 하고 싶었을 뿐인 것으로 그려진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누아르라고 하면 홍콩 누아르가 친숙하다. 비교적 최근 인기를 끈 홍콩 누아르는 ‘무간도’ 3부작이다. 범죄 조직에 침투한 경찰과 경찰에 침투한 범죄 조직원이란 설정. 조직원이 된 경찰은 하루빨리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지만 경찰이 된 범죄 조직원은 진짜 경찰이 되고자 한다.

그 배경은 정체성과 생존이란 키워드다. 누아르건, 스릴러건 액션과 연관된 거의 모든 장르 영화의 키워드는 생존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그 생존과 살해가 역사적 사실이란 현실과 맞물려 영리한 시나리오 및 연출로 포장돼 흥행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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