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친절한 금자 씨’의 오수희로 데뷔한 라미란은 어느새 감초로 자리매김하더니 ‘걸캅스’(2018)로 당당하게 주연을 꿰찼지만 흥행 성적으로 보나 활약상으로 보나 살짝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정직한 후보’(장유정 감독)는 그녀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한 코미디를 극대화했기에 그 아쉬움을 달랠 만하다.

여당의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은 이번에 4선에 성공하면 대권에 도전할 계획. 정치에 문외한이었던 그녀는 엄마 같은 할머니 옥희(나문희)의 권유로 입문해 멀쩡한 그녀를 사망으로 위장한 뒤 ‘꼼수’ 약관으로 소비자를 울린 보험사와 싸워 승리한 전사 코스프레로 당선된 후 오늘에 이르렀다.

그녀의 강력한 경쟁자는 기호 3번 신지선(조수향)과 4번 남용성(조한철). 그런데 당의 김 대표가 용성을 포섭해 술자리에 불러낸 뒤 상숙을 불러 담합에 성공한다. 상숙의 남편 만식(윤경호)은 김치 담그는 데 빠지지 않고 달려가고, 마음에도 없는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 등의 외조에 온 힘을 쏟는다.

상숙에겐 정치 입문 때부터 지금까지 오른팔 노릇을 해온 보좌관 희철(김무열)이 큰 힘이 돼주고 있다. 전 재산이라곤 20평 아파트가 전부라지만 사실은 호화 단독주택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그녀의 모든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옥희의 신분을 세탁해 자신의 할머니로 호적까지 바꿨을 정도다.

상숙의 가장 큰 무기는 거짓말이다.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거짓말일 만큼 가식적인 그녀다.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깊은 산에서 은거 중인 옥희가 부르자 상숙은 희철과 함께 달려간다. 할머니가 무탈한 것을 확인하고 하산하다 소원 돌탑에 벼락이 내리치는 걸 본 뒤 돌연 정직해진다.

유세, 인터뷰, TV 토론 등에서 연일 자신의 잘못과 가식을 폭로하는 진실의 입을 주체할 수 없게 된 상숙은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이에 희철은 뛰어난 전략가 운학을 영입한다. 운학은 진실하게 체질이 변한 상숙을 활용해 ‘정직한 후보’라는 컨셉트로 바꾼 뒤 전세를 뒤집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갑자기 옥희재단의 비리가 부각되고 지역방송사 기자가 상숙의 비리를 밀착 취재하는 데 성공하며 옥희가 세상을 뜬다. 상숙의 진면목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운학과 김 대표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용성과 손잡는다. 김 대표와 용성은 장례식장에 나타나 상숙에게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데.

우리에겐 낯선 동명의 브라질 영화가 원작이지만 전체 플롯부터 디테일까지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바로 우리의 현실인 듯 기시감마저 준다. 상숙, 김 대표, 용성은 정답이 나와있는 비리 정치인의 전형. 상숙은 20평 아파트로 퇴근하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호화스러운 진짜 집으로 옮겨 만찬을 즐긴다.

방송에서 용성을 주식 부자라고 비난했던 상숙은 사실 각 기업들로부터 주식 정보를 캐내 이익을 챙겨온 진짜 ‘고수’다. 그 주식 정보로 김 대표와 용성을 포섭하는가 하면 외아들의 병역을 피하려 원정 출산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렇듯 온통 구린내투성이인 그녀는 정말 누군가를 닮았다.

상숙이 갑자기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는 발단과, 다시 거짓말‘도’ 할 줄 알게 되는 터닝 포인트는 벼락이란 매개체를 통해 판타지로 설정되는데 여기엔 자식을 아끼는 모성애가 근간이 된다. 옥희의 사망 조작은 모든 부모와 조부모는 자식과 손주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희생정신을 갖췄다는 환유다.

상숙은 원래 정직했다. 희철이 그녀만 보고 지금까지 달려온 이유는 신인 때 잔다르크 같은 면모를 봤기 때문일 만큼. 옥희가 그녀를 정치판에 내보낸 이유도 그런 이유일 듯. 산전수전 다 겪은 옥희로선 상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대쪽 같다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당선된 시작부터 잘못됐다.

보험사와 싸워 이긴 국민적 영웅이 되기 위해 멀쩡한 할머니가 죽었다고 조작하며 유권자를 기만한 정치인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식적이고 이기적이며 후안무치한 정치인의 전형을 죄다 드러낸다. 제목은 역설적이다. 정직한 정치인이 그만큼 드물다는 뜻.

일단 권력을 쥐자 상숙은 철저하게 ‘정직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 원래 잔다르크였던 그녀는 권력의 맛을 본 뒤 돈의 맛에 흠뻑 빠져들며 블러디 메리가 됐다. 옥희재단이 운영하는 신흥 명문대학의 장학생 1명이 자살을 시도해 뇌사상태에 빠진다. 정경유착을 폭로하는 사학 비리의 한 사례다.

이 학교는 장학금으로 수재들을 유인해 단기간에 명문으로 자리잡은 뒤 1인당 10억 원씩의 기부입학금으로 부잣집 자식들을 대거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높은 성적을 준다. 자연스레 성적이 뒤처진 원래의 장학생들에게 학칙을 근거로 장학금의 환불을 요구하고, 학교는 그렇게 1500억 원을 벌었다.

가볍게 즐기기에 썩 좋은 코미디이면서도 메시지는 매우 묵직하다. 총선을 코앞에 둔 내달 12일의 개봉 시기도 절묘하다. 사실 정치인의 실상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예인만큼 자주, 오래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겉포장이 심하고 정치인은 속을 심하게 포장한다.

“말이 뇌가 아닌 장에서 나와”, “꼬리가 발에 밟히면 꼬리를 자르지 발을 자르냐?” 등의 대사가 촌철살인이다. 특히 상숙이 승차한 택시 기사의 “그런데 어디로 가세요”라는 질문이 큰 울림을 준다. 과연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투표 잘 하자는 뜻? ‘부라더’의 감독이 크게 괄목상대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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