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이장’(정승오 감독)은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인 ‘옛날엔 말야’에 정면으로 ‘돌직구’를 날리는 남존여비 타파의 통쾌한 ‘활명수’다. 각종 영화제 수상 소식은 듬직한 메시지가 보증수표라는 증거고, 독립영화 특유의 공간에 담아내는 통시적 상념의 여유가 돋보이며, 연기력까지 빛난다.

홀로 아들 동민을 키우는 혜영(장리우), 믿을 건 돈밖에 없다는 금옥(이선희), 결혼을 앞둔 금희(공민정), 10년째 대학에 다니며 진보 운동에 앞장선 혜연(윤금선아), 그리고 외아들 승락(곽민규)의 5남매는 부모를 일찍 여읜 후 각자 독립했다. 아버지 묘의 이장 때문에 백부 관택의 호출을 받는다.

승락과 연락이 안 되자 혜영은 동민과 여동생들만 태우고 섬에 사는 관택에게 간다. 하지만 관택은 장남 없이 어떻게 이장 문제를 해결하느냐며 데려오라고 호통을 치고, 혜영은 동민을 그 집에 놔둔 채 동생들과 서둘러 섬을 빠져나온다. 그녀들은 SNS를 통해 승락의 연인 윤화(송희준)를 찾아낸다.

윤화를 통해 승락의 거처를 알아낸 4자매는 문을 두들기지만 응답이 없다. 어떤 이유에선지 승락이 윤화를 피하는 것이다. 그렇게 난감한 채 밖에서 서성대던 혜영에게 백모의 전화가 걸려온다. 동민이 없어졌다는 것. 화가 치민 혜영은 승락 숙소의 창문을 깨뜨리고 당황해하는 그와 맞닥뜨리는데.

외형적으로는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권리를 갖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하는 가부장제의 해체를 외친다. 중국의 영향이 강한 우리의 전통적인 관습 중 대표적으로 비현실적인 남존여비에 대한 종말을 고하는 것. 승락은 분명히 막내인데 관택은 4명의 누나들을 죽은 동생의 제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할머니들은 남자 식구들과 겸상을 못 한 채 홀로 부뚜막에서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게 불과 50여 년 전까지의 풍속도였다. 제사 때 여자들은 열외였다. 여자와 남자가 다른 건 맞지만 인권까지 다를 리 없건만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남존여비 사상으로 여자를 홀대해왔다.

이 영화는 그런 구시대적인 보수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꼰대’들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관택은 매장을, 자매들은 화장을 각각 주장한다. 그 사이에서 방황하던 승락은 백부에게로 기운다. 젊은 남자도 남자는 남자라는 이 무서운 ‘조선’의 전통! 유치원 교사에게 ‘씨발’이라 욕하는 동민도 마찬가지다.

철학이 생긴 이래로 내내 부닥쳐온 관념론과 유물론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관택은 “어떻게 장남 없이 무덤을 파?”라며 이장이라는 중차대한 일에 제주를 뺄 수 있냐고 반발한다. 또 “땅에 있어야 살아있는 것”이라며 매장을 주장한다. 승락 역시 “자식 된 도리” 운운하며 어느새 관택 편으로 기운다.

관택은 “집구석에서 살림만 하는 게 뭐 힘들다고. 계집들이 말이 많아”라고 호통치고, 백모 옥남은 임신했다는 윤화에게 “그래서 내가 구렁이 태몽을 꿨구나. 구렁이는 아들이야. 승락이 장하다. 엄마 소원 풀어줬네”라고 반색한다. 혜연은 “그게 엄마 소원이에요? 할아버지 소원이지“라고 반발한다.

관택은 “여자는 아들 낳는 게 임무”라고 주장하고 혜연은 “고추가 벼슬이에요?”라고 맞선다. 관택은 남존여비를 주장하는 가부장적인 우리네 조상들의 전형적인 편협함을 보여준다. 혜연은 승락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성폭행이라며 폭력을 휘두른다. 정신과 물질, 의식과 행위의 이원론.

공동묘지 직원이 고인을 309호라고 표현하자 관택은 백철택이란 이름이 있다고 정정한다. 대화가 안 통하는 질녀들과 갈등하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군불을 때운다. 무의식중에 어른들에 의해 그릇된 관념론을 주입받아왔지만 삶의 근본은 역시 죽은 자가 아닌 산 자 위주여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

동생의 화장을 반대하며 ‘시신이라도 땅에 있어야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유물론이나 유명론에 철저하게 반하는 관념론적 사고방식을 지녔지만 어느새 질녀들과 아내에 의해 현실적으로 바뀌게 된다. 옥남은 남편에게 질문하지만 무심한 관택은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아 그녀를 서운하게 한다.

처음엔 관택의 편에 섰던 옥남은 이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서늘한 공식을 깨고 냉철한 유물론을 갖고 질녀들의 입장에 선다. 그녀는 “그냥 쟤네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 따지고 보면 우리 새끼들도 아닌데”라며 남편을 설득하고 조카들에겐 “부모 기일에 만나서 함께 밥 먹어”라고 당부한다.

관택과 질녀들의 갈등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와 저서로 유명한 셸리 케이건을 생각하게 만든다. 케이건은 플라톤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 선배 철학자들의 영혼불멸설을 통쾌하게 전면 부정한다. 그에 의하면 영혼은 없고 불멸은 더더욱 없다. 영혼은 육체와 한 몸인 정신, 의지, 생각이다.

이렇게 혜영 등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철저하게 해체하고 실존주의를 외친다. 승락만 편애한 부모에게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성장했는지 설움을 토해내는 시퀀스는 문화 선진국이라는 우리 국민의 생활 구석구석에 아직도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구습이 잔재했는지 절감하게끔 만든다.

주인공들에게 뜻밖의 사연들이 있는 게 복선이자 반전이다. 동민은 말썽꾸러기지만 의외로 일찍 철이 들었고, 혜영은 그에게 숨기는 게 많다. 금옥과 금희는 남편 때문에 말 못 할 고민이 있다. 인생은 홀로 망망대해를 달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마지막 신이 긴 여운을 남긴다. 3월 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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