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부자들'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내부자들’(2015)은 75억 원을 쓴 배급사 쇼박스와 전작 ‘파괴된 사나이’와 ‘간첩’에서 100만 관객을 간신히 넘긴 우민호 감독에게 잊지 못할 작품이겠지만 당시 백척간두의 위기에 내몰렸던 이병헌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터닝포인트일 것이다. 관객에겐 1년 후 드러난 국정농단의 기시감일 터.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700만 명의 관객을 넘어섰으며,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라는 무려 3시간 분량의 디렉터스 컷이 동시에 개봉되는 한국영화 초유의 기록이 가능했다는 점에선 한국영화 역사에 기록될 만하다. ‘친구’(곽경택 감독, 2001)와 ‘신세계’(박훈정 감독, 2012)도 엿보인다.

전라남도 건달 안상구(이병헌)는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를 만나 형님으로 섬기면서 출세의 엘리베이터를 타기 시작한다. 강희가 모시는 자동차 재벌 오 회장의 노조탄압 작전에 투입되는가 하면 그들과 작당한 여당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를 돕는 정치깡패로 활약하며 승승장구한다.

결국 그는 거대 연예기획사의 사장 자리에 앉을 정도로 성공한다. 하지만 오 회장을 배신하려다 강희의 밀고로 오 회장의 심복에게 잡혀 오른손을 절단 당한다. 연고가 약해 번번이 승진에서 제외된 서울지검 우장훈(조승우) 검사는 부장으로부터 장필우만 잡으면 출세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는다.

▲ '신세계'

그는 오 회장과 장필우의 커넥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구를 만나게 되고, 그 악연은 복수와 출세라는 서로의 다른 연유지만 장필우 파괴라는 공통의 목적 때문에 인연이 돼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무모하고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강희를 통해 보수 언론사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나는 게 변별력.

‘신세계’. 경찰청 수사기획과 강 과장(최민식)은 국내 최대 범죄 조직인 골드문이 기업형 조직으로 그 세력을 점점 확장하자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잠입 수사를 명한다. 중국 출신의 여수 건달 정청(황정민)은 죽이 잘 맞는 자성과 각별한 우정을 쌓으며 성장해 골드문의 2인자 자리에 오른다.

골드문 회장이 돌연 사망하자, 강 과장은 후계자 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작전을 설계하고, 자성은 잠입 수사의 기한에 대한 약속을 자꾸 어기는 강 과장에 대한 신뢰가 점점 무너지는 가운데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다. 정청은 자성의 정체를 파악하지만 다른 잠복 경찰을 살해하며 우회 경고한다.

‘친구’. 아버지가 부산 폭력조직의 두목인 준석(유오성)과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인 동수(장동건)는 죽마고우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짱’을 다투며 라이벌의식을 갖게 된다. 졸업 후 준석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조직의 행동대장이 되지만 동수는 그에게 등을 돌려 상대 조직의 행동대장으로 간다.

▲ '내부자들'

준석은 라이벌을 떠나 옛 친구로서 다정하게 대하려 하지만 주먹에 대해 예전부터 준석에게 콤플렉스가 있던 동수는 사사건건 그를 도발하며 신경전을 벌인다. 결국 준석은 동수에게 잠시 외국에 나가있으라고 마지막 기회를 주지만 외면하자 조직의 압박에 밀려 살인을 교사한 뒤 재판정에 선다.

세 작품 모두 누아르라는 장르적 장치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선 전편에 걸쳐 흐르는 분위기가 암울하거나 장중하다. 그런데 스케일과 메시지 면에선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내부자들’이 잘 짜인 푸가라면, ‘신세계’는 화려한 랩소디고, 긴 여운이 남는 ‘친구’는 우울한 레퀴엠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겠다.

폭력조직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나 조직폭력배가 주인공이란 점은 일치한다. 권선징악 혹은 해피엔딩으로 귀결하는 전형적인 상업영화적 논법과 조금씩 다르다는 점 역시 엇비슷하다. ‘친구’는 사실 대단한 메시지는 없다. 오히려 준석의 동수 살인교사마저도 미화 혹은 신비화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동수의 자격지심은 이해는 되지만 안하무인격의 일방통행적인 인물로 과장한 건 다소 억지스럽다. 조폭이란 캐릭터를 강하게 전면에 배치하되 결국 우정을 웅변한다는 점은 바람직하지만 말미에 준석이 ‘건달이니까(쪽팔리진 말아야지)’라고 마무리한 건 조폭 미화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 '신세계'

‘신세계’도 권력과 그 체계의 양면성을 비판하면서도 조폭을 정당화하는 점이 없지 않다. 강 과장에게 제 자리로 돌려달라고 부탁 혹은 협박하던 자성은 경찰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하자 진짜 건달이 된다. 스톡홀름 신드롬과 더불어 정부 조직이 조직원을 소비재로만 본다는 날카로운 매스이긴 하다.

그럼에도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해 생존함으로써 잘 먹고 잘산다는 논제는 께름칙하다. ‘내부자들’의 언론이 재벌의 투자를 받아 정치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시나리오는 낯익어서 더욱 소름 끼친다. 이 위험하고 천인공노할 카르텔을 힘없는 일개 검사와 깡패 단 두 사람이 깨뜨리려 덤비니 재미있다.

이들이 정의감에 불타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게 포인트다. 검사는 출세를, 깡패는 복수를 위해서다. 이 얼마나 단순하지만 인간적이고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인 거창한 대의명분 대신 생활밀착형 이슈로 포장한 이 영화는 사이즈는 장대하지만 존대한 겉멋을 부리려 하지 않아 친근하다.

인간은 본능 안의 동물적 욕망 때문에 굳이 전쟁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상구와 장훈에게선 불로써 전쟁을 찬양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스파르타의 호전성, 그리고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가 보인다. “딱 죽기 좋은 날이네”의 ‘신세계’와 “고마 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의 ‘친구’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