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2014)는 인생을 달관한 자세를 보였던 ‘라라랜드’(2016)에 비하면 다소 거칠긴 하지만 삶의 목적은 반드시 성공은 아니라는 주제의식 하나만큼은 교훈적이다. 드럼 천재 앤드류는 음악대학에 입학해 최고의 실력자면서 최악의 폭군인 플레처 교수의 밴드에 들어간다.

플레처의 교육 방식은 지독하기로 악명이 높다. 잔인할 정도로 경쟁을 시키는 건 기본이고 인격 모독, 인종차별, 인신공격 등의 폭언과 폭행이 다반사다. 그는 메인 드러머 자리를 놓고 앤드류를 포함해 3명을 경합시킨다. 중요한 경연대회가 있던 날 앤드류는 스틱을 차에 놓고 내린 채 지각을 한다.

플레처는 분노하며 다른 드러머에게 연주를 맡기려 하고 앤드류는 그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며 달려 나간 뒤 자신이 탔던 렌터카를 다시 몰고 경연장에 오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는 악착같이 일어나 가까스로 제 시각에 도착해 스틱을 잡지만 부상한 몸이라 공연을 망친다.

플레처는 그 즉시 앤드류의 퇴출을 선언하고 분노한 앤드류는 플레처에게 대들었다가 징계위에 회부된다. 교장은 전부터 플레처의 파행을 알고 있었다며 앤드류에게 그를 해고할 증언을 요구하지만 그는 그런 일 없었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퇴학당한다. 그는 식당 ‘알바’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재즈 바의 플레처 출연 광고를 보고 들어가 그를 만난다. 앤드류는 자신을 학대한 게 자극을 줘 최고의 드러머로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는 플레처의 말을 듣고 쌓였던 감정을 푼다. 플레처는 곧 있을 프로 재즈밴드 경연대회에 자신의 밴드의 드러머로 참여해달라고 제안하는데.

영화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 곡의 제목인 위플래쉬는 중간에 드럼의 ‘더블 타임 스윙’ 주법 독주가 마스터피스로 꼽힌다. 또한 플레처의 교육방식인 채찍질이라는 원뜻도 동시에 담겼다. 학생들에게 플레처는 거의 악마 같은 존재지만 그의 학대를 견뎌내고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성공을 위해서.

일부 학생들은 폭군 같은 그의 겉모습과 달리 사실 내면은 따뜻하다고도 말한다. 학생들을 강하게 키워 훌륭한 아티스트로 올려놓기 위한 교육방식일 따름이라는 것. 어느 날 그는 평소와 달리 부드러운 태도로 음악을 들려준다. 아끼던 실력파 제자의 연주인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며 눈물까지 보인다.

외면은 재즈 영화다. 그것도 드럼에 집중한다. 여기에 더해 성공을 향한 앤드류의 집념에 집중한 드라마가 있다. 더불어 과연 플레처의 진면목은 무엇인지 살짝 미스터리 요소까지 가미됐다. 앞부분에 ‘Rififi’(1955)가 등장하는 건 숙명적 실존주의를 다룬 프랑스의 동명의 걸작 범죄 영화에 대한 오마주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치는 현란한 편집이다. 다소 거칠 수도 있지만 드럼의 능동적인 관능미와 잘 어우러지는 데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빛나는 플레처 역의 J. K. 시몬스의 열연이 더해져 완성도를 높였다. 천재는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진부한 주제를 세련되게 다듬었다.

플레처가 집안에 음악인이 있는지 묻자 앤드류는 엄마는 어릴 때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작가를 희망하지만 평범한 고교 교사라고 말한다. 앤드류는 어릴 때부터 소질을 보였던 자신의 천재성과 플레처가 그걸 잘 다듬어 줄 것을 철석같이 믿는다. 플레처는 16세기 종교개혁 이전까지의 귀족주의자다.

찰리 파커(1920~55)는 알토색소폰을 적당히 잘 연주하는 미국의 재즈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적당히’에 분노한 드러머가 심벌을 날리자 자극을 받아 1년간 피나는 연습을 거쳐 일류 뮤지션이 돼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비밥을 창시한다. 플레처는 틈만 나면 이 사례로 앤드류를 자극한다.

또 그는 뚱보, 땅딸보, 유대인, 아일랜드인 등 외모와 인종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귀족주의자인 동시에 완벽주의자다. 그의 독재는 전체주의다. 앤드류는 최고가 되기 위해 착하고 겸손한데 미모까지 갖춘 여자 친구 니콜에게 이별을 고한다. 보수적 출세지향주의에 철저하게 세뇌된 것.

그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촌이 미식축구 선수가 된 걸 자랑하자 ‘고작 3부 리그’라고 폄훼하고, 사촌은 “어떻게 음악으로 우열을 가려?”라고 응수한다. 앤드류는 플레처에게 “꿈을 이루려고 왔다”고, 니콜에게 “일류가 되고 싶으니 헤어지자”고 말한다. 음악에 우월과 열등을 어떻게 나눌까?

앤드류가 플레처의 눈에 들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메인 드러머가 보조인 그에게 맡긴 악보를 한눈팔다 잃어버려서다. 메인은 악보를 못 외웠지만 앤드류는 악착같이 외웠기 때문. 그는 ‘재능 없으면 록밴드 멤버나 되겠지’라는 편견을 플레처와 분유한다. 록과 재즈의 우열의 기준은 뭘까?

플레처는 “바보한테 계산기를 주면 리모컨인 줄 안다.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말이 제일 나빠. 주법보다 템포가 중요해”라고 말한다. 원칙주의는 바람직하지만 고정관념은 곤란하다. 내내 플레처와 앤드류 사이를 왕복하는 가운데 플레처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막판뒤집기를 하는 반전이 섬뜩하다.

과연 1등만 필요할까? 꼭 1등만이 성공하는 걸까?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할 뿐 결과는 차후 문제’라는 감독의 주제의식은 2년 뒤 ‘라라랜드’에도 등장할 만큼 또렷이 빛난다. 재즈 자체가 형식보다 즉흥의 ‘인 더 그루브’가 중요한 음악 아닌가? 관악기의 침 흘리는 것까지 디테일도 완벽한 수작!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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