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초미의 관심사’는 배우 남연우의 두 번째 장편 연출 영화로서 촬영 중 연인이 된 치타(김은영)의 배우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태원 일대 클럽에서 가수 블루로 활동 중인 순덕에게 어느 날 불쑥 엄마가 찾아온다. 막내 유리가 가게 월세 300만 원을 들고 잠적했다며 같이 찾자고 한다.

이태원은 한때 가수를 꿈꿨으나 순덕을 임신하는 바람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리까지 갖는 바람에 꿈을 포기한 엄마의 고향. 엄마는 실종 신고를 할지, 절도 신고를 할지 헷갈린다며 일단 이태원 지구대로 향한다. 엄마가 경찰에게 ‘우두머리 나와’라고 외치자 춘배가 등장하고 엄마가 아는 체한다.

춘배와 함께 유리의 애인 선우를 찾던 중 한 백인이 게스트 하우스를 묻자 엄마는 춘배에게 그를 태워주라고 한 뒤 순덕과 함께 걸어서 이동한다. 순덕은 흑인이지만 영어 한 마디 못 하는 이태원 토박이 정복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여곡절 끝에 유리의 애인인 마이클을 잡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엄마는 아빠와 혼인 신고조차 안 했을지 모른다. 순덕은 중학교 때 가출해 독립했다. 1년 전 유리를 자신의 집에 데려왔으나 유리는 엄마 돈은 물론 순덕의 비상금까지 챙겨 사라졌다. 순덕의 호적은 아빠에게, 유리는 엄마에게 각각 소속된다. 순덕은 엄마의 남자관계가 문란한 게 불결해 독립했다.

엄마와 언니는 유리에 대해 잘 모른다. 공부는 잘하는지, 친구관계나 이성관계는 어떤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도. 물론 엄마와 순덕 역시 서로를 잘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 않고 그냥 서운하거나 밉거나 경멸한다. 이런 모녀가 생소할까, 익숙할까? 배경이 이태원이다. 편견이 중요한 키워드.

모든 동물은 유전을 통해 자신의 DNA와 경험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후손은 그 유전의 선험성(후성규칙)을 통해 경험에 앞선 지식을 갖추는 한편 자연선택 혹은 자연도태를 통해 진화하고 생존을 이어간다. 그러나 자식이라고 반드시 부모를 닮는 건 아니라 얼마나 유전되느냐의 유전도란 게 있다.

이태원은 대한민국의 이방인의 타운 중 상징적 공간이다. 비교적 선진국의 문물이 넘실대고, 젊은이들의 성적인 문화가 넘치며, 특히 성소수자들의 대표적 성지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태원 자체가 편견이다. 기성세대는 불건전한 데카당스가 넘치는 퇴폐와 환락의 소비 공간으로 인식하기 때문.

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타 공간에 비해 유별날 게 없다. 다소 다를 뿐이다. 성소수자의 부모는 성소수자가 아니라 생식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자신을 닮지 않고 ‘변태’인 데 대해 분노하거나 절망한다. 엄마는 순덕이 자기처럼 실패한 가수, 남자에게 버림받은 미혼모가 될까 봐 두려웠다.

어린 순덕의 눈엔 난잡한 엄마가 천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외로움과 고통은 보이지 않았기에 그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에고가 강했기에 어린 순덕의 마음의 상처는 볼 수 없었다. 제 가수의 꿈을 꺾은 순덕이 서운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모녀의 감정의 골은 접점이 없었다.

엄마는 계단을 오르며 허우적거리는 순덕에게 “넌 나보다 체력이 더 약하니?”라고 핀잔을 던지고 순덕은 “모유를 못 먹고 자라서 그래”라고 응수한다. “넌 이기적이야”라는 엄마에게 순덕은 “누구 딸인데”라고 비아냥댄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던 순덕이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는 엄마의 친절함이다.

그녀는 처음 보는 외국 관광객을 위해 불편함을 자처한다. 순덕은 “오지랖”이라고 투덜대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엄마는 매사에 까칠하고 거칠고 공격적 성향이라 물불 안 가리고 싸우려 든다. 하지만 사실 마음만은 무척 따뜻하고 여리다. 순덕도 유사하지만 세상이 험하기에 나약함을 갈무리한다.

유리가 ‘알바’를 했던 태투샵을 찾은 엄마는 온몸이 문신투성이인 여자 종업원과 강하게 생긴 사장에 도전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사장이 게이란 사실을 알고는 부드럽게 바뀐다. 게다가 여종업원이 싱글맘이라고 하자 떠날 때 만 원짜리 몇 장을 기저귀 값이라고 건넨다. 동병상련은 이타심의 시작이다.

정복은 1990년대 활동한 댄스그룹 잉크의 흑인 멤버 만복이 모델이다. 한국전쟁 참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피부색만 다를 뿐 철저한 한국인이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한국어만 반복하는 정복에게 백인 여자가 당황해 하는 시퀀스는 만복의 경험이 모티프.

이 작품은 엄마와 순덕을 투톱으로 내세운 버디무비고, 유리를 찾는 여정 속에서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자는 사해동포의 메시지를 설파하는 로드무비다. 비록 이태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이동하지만 그건 그네들의 인생 여정의 평균율이다. ‘인생 거기서 거기’라는 의미.

인트로의 일렉트릭 기타의 트레몰로 톤과 메탈 톤, 두 주인공의 ‘걸 크러쉬’, 이태원의 뒷골목 등은 진한 누아르의 느낌을 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크린에는 유머와 인간미가 넘친다. 순덕이 길고양이의 먹이를 챙겨주는 이유가 제 처지와 비슷하기 때문인 것처럼. 피타고라스의 조화평균이 연상된다.

엄마가 재즈광이라며 좋아하는 가수로 조지 클루니를 거론하는 등 아기자기한 유머가 곳곳에 포진돼 따뜻하다. 주주클럽의 주다인과 자우림의 김윤아의 장점을 섞어 재지한 인더그루브를 풍부하게 담은 치타의 공연은 미장아빔의 덤이다. 마지막 신의 엄마의 반창고처럼 치유의 동화다. 2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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